나는 이 말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처음 봤다 (그런데 한자를 보니 뜻이 조금 다르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유홍준씨가 좀 심하게 의역을 한 것이었다. 원문은 아는 것(知)이 먼저인데, 유씨는 도리어 아끼는 것(愛)을 앞에 세웠다. 이래도 되는 거야?...). 그 책의 구체적인 내용이 기억 속에서 아슴해진 지는 오래되었으나, 저 말은 아직도 선명하게 살아 남아 있다. 그만큼 깊이 공감되는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기도 그랬다. 거기에 재미를 붙여갈수록, 관심을 높여갈수록, 그 안에 미처 알지 못했던 깊고 넓은 세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좋아서(愛) 먼저 달린 것일까, 아니면 무작정 달리다 보니까 뭔가를 먼저 알게(知) 된 것일까? 좀 헷갈리지만 전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달리기를 일상의 하나로 굳혀갈수록 점점 더 재미(愛)가 붙었고,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았다. 내가 달리기의 세계를 알아가는 통로는 개인 트레이너나 TV 프로그램, 혹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책이었다. 달리기와 관련된 이런저런 책을 혹은 통독하고, 혹은 발췌독하면서 조금씩 더 깊이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달리기를 만나기 전까지, 실용서는 내 관심 밖이었다. 성공하는 사람의 몇 가지 습관이라거나 좋은 매니저가 되는 길, 일주일만 무엇무엇을 하면 아무개만큼 된다, 1년만에 1억 벌기, 라는 식의 매뉴얼, 자기 학습서, 경영서 따위는 거의 멸시하다시피 해온 나였다. 그러나 이래저래 달리기 실용서들을 접하게 되면서 그런 편견을 상당 부분 덜어낼 수 있었다. 물론 실용서 부문에 유독 더 거품이 많고, 거짓과 과장이 더 심하며, 과학과 사실에 근거하기보다 신화와 선전에 기댄 책들이 더 많다는 내 믿음 - 편견? -은 여전하다.
아래 책들은 혹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더러는 직접 사서 보고 괜찮다고 생각한 것들이다. 도서관에서 빌려본 뒤 내용이 마음에 들어 직접 구매한 경우도 있다. 도서관의 책들을 보면서, 이 세상에는 기본 없고 양식없는 잡것들이 얼마나 많은가도 새삼 깨달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바탕이 돼야 할 기본 예의를 모르는 종자들. 자기 책이라도 되는 양 주요 페이지마다 꼭꼭 접어서 다시 펴도 그 자국이 그대로 남는 경우, 핵심 내용들에 밑줄을 죽죽 그어놓은 경우를 만날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하류 인간이 이곳에도 너무나 많다.
각설하고, 여기에 소개한 책들이 막 달리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분들께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여기에 소개된 순서가 책의 감동 순위는 아니다.
실용서가 독자로부터 신뢰를 얻으려면 일단 지은이 그 분야의 전문가라는 점이 확실히 각인돼야 한다. 그 점에서 이 책은 확실한 '진본'이다. 루이스 마하람 박사는 오랫동안 수많은 육상 선수들의 전문의 노릇을 해왔고, 본인도 달리기가 취미다. 따라서 달리기의 모든 것을 꿰는 것은 물론 그와 연관된 여러 부상에 대해서도 전문가다. 지은이는 그간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그런 부상을 예방할 수 있는지, 어떤 회복 기법이 있는지 알기 쉽게 설명한다. 어떤 종류의 음식을 언제 얼마나 섭취해야 하는지, 운동 전과 후에는 어떤 운동이나 활동이 적절한지도 명료하게 조언한다.
그러면서도 내 의견만이 다 옳다는 식의 도그마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최근에 발표된 여러 건강 관련 지식도 적절히 더해, 규형잡힌 시각을 보여준다. 한 번 보고 말 것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다시 보고 또 봐야 할, 달림이들의 필독서다.
달리기 트레이닝에서 '패러다임의 혁명'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변화를 몰고 온 화제작이다. 이 책의 지은이들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퍼먼대 부설 '퍼먼 달리기 및 과학적 훈련 연구소'(Furman Institute of Running and Scientific Training, 줄여서 'FIRST'라고 부른다)의 멤버들이다. 이들이 창안한 훈련법도 'FIRST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3Plus2'라는 말로 집약된다. 앞의 3은 달리기 횟수, 뒤의 2는 크로스트레이닝의 횟수다. 일주일 중 하루는 반드시 쉬고, 나머지 하루는 쉬거나, 크로스트레이닝을 할 수도 있다. 이 훈련법이 획기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달리기 횟수를 세 번으로 줄인 데 있다. 심각한 달림이들 사이에서 일주일에 세 번만 달린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네 번, 흔히 다섯 번이나 여섯 번, 심지어 일주일 내내 뛰는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일주일에 세 번만 뛰어도 충분히 그만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난 5년여의 자료가 그를 뒷받침한다. FIRST 프로그램을 거친 사람들이 모두 20~30분 이상의 기록 단축 효과를 얻었다 (선수도 아닌 보통 사람들이 마라톤에서 이 정도로 시간을 줄인다는 것은 실로 획기적이다). 문제는 세 번의 내용이다. 그냥 뛰는 게 아니라 굉장히 힘든 훈련법을 요구하는, 이른바 '퀄리티 런'이기 때문이다. 세 번중 한 번은 800미터, 1000미터, 혹은 1600미터(1마일)를 경주 속도로 빠르게 달리고 중간중간에 호흡을 가다듬는 휴식 타이밍을 갖는 '인터벌 런', 또 한 번은 2, 3마일을 경주 속도보다 다소 느리지만 일반 훈련 속도보다는 빠르게 꾸준히 달리는 '템포 런', 그리고 나머지 한 번은 13~20마일 (약 20km~32km)을 달리는 '장거리 달리기'다. 크로스트레이닝은 사이클링이나 수영 같은, 달리기와는 다른 근육을 쓰는 운동을 하는 것이지만, 그 초점은 언제까지나 달리기의 효율과 기록을 높이는 데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훈련법에 깊이 경도되어 있다. 몇몇 훈련법을 메모해 적용하려 애쓰고 있고, 올해 4월에 나오는 개정판을 아마존에 주문해 놓았다.
달리기의 백과사전. 달리기의 생리학, 적절한 트레이닝 방법, 달리기와 관련된 부상, 예방 및 치료법 등 달리기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이 한 권에 담겨 있다. 1,000페이지 가까운 분량에 일단 압도당할 만한데, 그 내용의 충실성 때문에 이 분야에서 거의 만장일치의 지지를 받는 달리기 분야의 바이블이다. 2002년에 출간되었으니 5판이 곧 나올 만도 한데 잠잠하다. 이 책도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한 권 집안에 들이기로 했다.
마라톤 훈련 요령을 알려주는 지침서 중 베스트셀러 겸 스테디셀러다.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마라톤 훈련법을 담은 책이라는 평도 받고 있다. 지은이 할 힉든 자신이 100회 이상 마라톤에 참가한 경력이 있는 베테랑 마라토너다. 그만큼 마라톤 경주의 생리를 속속들이 꿰고 있다. 그 경주를 뛰는 주자들의 심리, 신체상의 변화, 육체적 도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힉든 마라톤 지침서는 구체적인 훈련법을 시시콜콜하게 다루기보다, 마라톤 훈련과 경주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시나리오를 경험에 기반해 소개하면서, 적절한 대비법, 대처법을 알려준다. 그래서 종종 훈련 요령을 배우기보다는 힉든이나 다른 유명 마라토너들의 경험담을 듣는 듯한 착각을 준다. 그것은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마라톤 훈련법을 기대한 사람에게는 미흡하다는 느낌을 주기 쉽다. 일종의 비사 같은 마라톤 경험담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흥미로운 논픽션처럼 읽힐 수도 있다.
지은이의 웹사이트 (halhigdon.com)는 다양한 거리의 경주에 대비한 10주~18주 훈련 일정을 짜놓고, 주자의 수준 (초보, 중급, 고급)에 따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유익하다.
대니 앱샤이어도 달리기 분야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유명 선수들을 코치하기도 했고, 부상한 선수들의 발에 맞는 신발을 설계하기도 했다. 지금은 Newton Running이라는 신발 제조사까지 만들어,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와 메카닉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신발을 디자인하는 데 진력하고 있다.
이 책은 자연스러운 달리기의 자세에 대한 지침서이다. 책의 표지가 보여주듯이 발 뒤꿈치가 아니라 앞꿈치 (발가락 바로 아래의 도톰한 부분)부터 바닥에 닿는 형태의 주법이 몸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속도도 높일 수 있는 최적의 자세라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상체와 엉덩이 부분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고, 팔은 어떤 각도와 자세로 유지해야 하는지, 머리는 어때야 하는지, 시선은 어디에 둬야 하는지 등 달리기의 기본, 혹은 달리기의 도를 설파한 책이다. 그런 자세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여러 운동법도 담았다.
아래 비디오는 대니 앱샤이어의 뉴턴 러닝에서 만든 비디오 신발 광고가 뒤에 나오기는 하지만 바른 달리기 자세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맨발뛰기 (barefoot running), 혹은 그 변종들에 대한 일대 호기심과 붐을 불러일으킨 화제작이다. 웬만큼 달리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읽어봤을 것이라고 여겨질 정도.
스스로도 달리기에 열정을 가진 저자는 자신의 잦은 부상에 의문을 갖고 도대체 달리기의 어디가 문제인지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우연히 멕시코의 코퍼 캐년에 숨어사는 신비의 부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맨발로 뛰면서도 부상을 모르는 초인족. 도대체 이들이 그토록 뛰어난 달리기 능력을 가진 연원은 무엇일까?
이들의 비밀을 따라가는 지은이의 족적을 좇다 보면 독자도 문득 달리기를 해보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 이 책에 대한 좀더 긴 독후감은 여기에 있다.
캐나다판 Runner's World. 하지만 Runner's World와는 무관한 잡지다. 보통 휴게소에 진열된 잡지는 구독료에 견주어 너무 비싸서 안사보는데, 몇달전 한 권을 무려 7달런가 주고 샀다 (1년 구독료는 그 세 배 정도밖에 안한다).
의외로 좋은 내용이 많았다. 친숙한 캐나다 얘기가 많다는 점도 매력. 지난 12월에 구독을 신청했는데 아직도 잡지가 올 줄을 모른다. 보통 구독 신청을 하면 처리하는 데 3, 4주 걸린다더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이 잡지 또한, 굳이 정기구독을 할 필요까지는 없다. 웹사이트에 웬만한 내용이 다 올라와 있고, 잡지의 내용도 한 달쯤 지나면 다 웹사이트에 반영되니까 조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래도 굳이 구독하는 이유는 아무때나 아무데서나 보고 싶을 때 마음대로 펴보고 접을 수 있는 종이잡지의 매력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