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사전을 찾아보니 재미딱지 하나도 없게시리 그냥 '북미산 흑고니'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영어로 된 보통 이름은 트럼피터 스완, 말 그대로 트럼펫을 부는 고니, 혹은 트럼펫 소리를 내는 고니라는 뜻입니다. 그 우는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는다면 누구라도 아하~ 할 겁니다.
지난 주말 토론토에서 북쪽으로 300km쯤 떨어진 그런디 호수(Grundy Lake)로 캠핑을 갔다가 이 트럼펫 고니를 만났습니다. 혹시? 하면서도 그 생김새가 하도 와와(야생 거위)와 흡사해서, 캐나다 거위(Canada Geese)가 아닌가 했습니다. 그러나 그 유별나게 우렁차고 공명이 긴 울음소리가 계속 마음 한 구석에 '혹시?' 하는 의심을 끝내 남겨두었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E. B. White 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영작문의 고전으로 꼽히는 Element of Style로 불멸의 이름이 된 이 작가는 샬럿의 거미줄 (Charlotte's Web), 스튜어트 리틀 같은 동화책을 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런 책 가운데 제가 아주 흥미롭게 읽은 것이 '고니의 트럼펫' (The Trumpet of the Swan)입니다. 짝짓기에 요긴한, 따라서 생존의 필수 요소인 '트럼펫 울음'을 울 수 없는 주인공 고니가 진짜 트럼펫을 이용해 크게 성공한다는 기발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 때문에 트럼펫 고니의 이미지는 제 머릿속에 유난히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우리를 향해 정면으로 돌진하는 (혹은 돌진하는 척하는) 트럼펫 고니.
그리고 잔뜩 몸을 부풀려 키우며 우리 앞에서 시위하는 몸짓을 연출하는 고니.
그래도 동준이는 아랑곳없이 물에 몰두. 고니도, 그려, 알았어. 계속 놀아...
트럼펫 고니는 본래 온타리오주 토종이랍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곳에서는 거의 사라진 것으로 여겨진 이 고니를 복원하기 위해 정부와 관련 단체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니가 돌아오게 되었고, 공교롭게도 그들이 선택한 곳이 우리가 캠핑을 간 그런디 호수였던 것입니다.
제가 크게 실수한 것은 그 새가 무척 자기 영역에 대한 집착과 주장이 강해서, 그 영역 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을 동반한 경우 특히 조심하라는 공원의 안내 책자를 너무 늦게 읽었다는 점입니다. 참으로 어리석게도, 그리고 돌이켜보면 모골이 다 송연할 지경으로, 그 두마리 고니 중 하나 - 아마도 수컷이었던 듯 -가 우리 쪽으로, 특히 물을 튀기며 노는 동준이를 정면으로 겨냥해 날아들어서, 불과 수십cm 옆으로 지나치며 물보라를 일으 키던 - 그것도 두 번이나 - 와중에도 저는 그 놈 참 겁도 없네, 하고 넘겼을 뿐입니다. 사실은 진작에 동준이를 뒤로 물렸어야 했겠지요.
고니가 그렇게 물보라를 튀기며 위협을 시도한 뒤, 호숫가 진흙밭 위를 시위하듯 걸을 때에도, 저는 미처 눈치를 채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아니, 아마도, 우리보다 그 트럼펫 연주자들이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듯합니다. 다음에 혹시 트럼펫 고니들을 만나면 좀더 조심스럽게 대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