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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

DNA를 아스피린처럼 먹어봐?(NEWS+ 1997년 4월10일치)

미국 생명공학회사‘먹는 DNA’개발 - 빠르면 내년부터 실용화 

    『암이라구요? 에이즈에 감염됐다구요? 하루 한 알, DNA제제(製劑)를 드십시오.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DNA를 아스피린처럼 먹는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몇십년 뒤에나 가능할법한 허황한 시나리오도 아니다. 2~3년 뒤, 빠르면 내년부터 「실제 상황」이 될지도 모르는 이야기다.

    『의학계의 신기원이 멀지 않았다』고 하이브리던의 앤드루스 그린스테드 사장은 말한다. 하이브리던은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생명공학 기업. DNA약으로 쓸 수 있는, 이른바 「상보(相補) 유전인자」(Antisense·앤티센스)를 연구 중이다. 현재 임상실험에 들어가 있는 앤티센스 약품 13종 가운데 3종이 하이브리던의 「작품」이다.

    지난 2월말, 또 다른 생명공학기업인 아이시스제약사가 귀가 번쩍 띌만한 소식을 전했다. 자사에서 개발한 DNA약이 1차 임상실험에서 뛰어난 효능을 보였다는 것.

    아이시스에 따르면 이 약의 처방을 받은 크론병(Crohn's Disease·국한성 회장염(回腸炎) 환자들 중 47%가 한달 뒤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에 견주어 위약(僞藥) 처방을 받은 환자들은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DNA약, 혹은 앤티센스 기술의 배경에는 눈부시게 발전해온 분자생물학이 있다. 그것이 없었다면 질병을 분자 단위로 쪼개어 분석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했을 터이다.

DNA약 투여후 크론병 환자 47% 상태 좋아져

    사실상 모든 질병은 단백질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다시 말해 단백질이 부적당하게(너무 적거나 너무 많이) 만들어지거나 작동하기 때문에 질병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암 같은 숙주성(宿主性) 질병은 물론 에이즈 같은 감염성 질병에도 해당된다. 지금까지 나온 약들은 이미 만들어진 비정상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러나 앤티센스는 DNA에서 「전령RNA」(mRNA), 리보솜 등으로 이어지는 단백질의 제조공정에 끼어든다. 단백질의 생산을 아예 「원천봉쇄」해 버리는 것이다.

    생명공학 분석가인 캘버트 크레어리씨는 앤티센스 기술이 「매우 구체적으로」 적용되고 있으며, 그에 따른 결실을 볼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의 전망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아이시스의 스탠리 크루크 대표이사는 『내년 상반기부터 앤티센스 제제를 시중에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세포확대 바이러스」에 의해 유발되는 망막염을 치료하기 위한 것으로, 몇년 전부터 임상실험을 거듭해 왔다.

    모든 세포의 핵에는 DNA라고 하는 이중나선 분자가 들어있다. 생명체의 기본 정보를 지닌 「청사진」이다. DNA는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등 네개의 염기들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반드시 A-T, G-C짝으로만 결합한다. 한 사람의 DNA 나선에는 대략 30억개의 염기쌍이 들어있다. 이는 다시 10만여개의 유전자 조각으로 분리된다.

    세포들은 끊임없이 온갖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대부분 생명체에 꼭 필요한 것들이지만 암이나 에이즈처럼 생명에 유해한 단백질도 있다.

    DNA는 모든 단백질에 대한 정보를 관리한다. 그렇지만 DNA는 세포의 「관제탑」인 핵 안에 있고, 단백질을 만드는 「리보솜」이라는 세포 공장은 그 바깥에 있다.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이 바로 전령RNA이다.

    전령RNA는 특정 단백질의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 특정지점의 DNA가 풀리면서 만들어진다. 특정DNA 부분의 복사품인 셈이다. DNA의 특정 정보를 옮겨 베낀 (이를 「전사」(轉寫)라고 한다) 전령RNA는 리보솜에 그 내용을 전달하게 된다.

    이 한 가닥을 흔히 「센스」(Sense)라고 부른다. 「앤티센스」는 이에 대응하는 가닥을 가리킨다. DNA의 이중나선은 오직 두가지 형태로밖에 결합하지 않으므로 반쪽에 대한 정보(전령RNA)만 알면 나머지 반쪽(앤티센스)은 쉽게 알아낼 수 있다.

    DNA약에 대한 이러한 발상은 이미 20년쯤 전에 하버드 대학 연구팀에서 나왔다. 78년, 하버드의대의 폴 재머츠닉 박사는 거의 모든 세포들에서 일어나는 이 「단순한」 메커니즘에 주목, 앤티센스 이론을 내놓았다. 그는 이 공로를 뒤늦게 인정받아 지난해 앨버트 래스커상을 받았다.

    재머츠닉 박사팀의 이론은 퍽 단순하면서도 획기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의학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처럼 보였다. 수많은 논문이 나왔고, 그만큼이나 많은 연구와 실험이 진행됐다. 그러나 실제는 이론이 주는 기대만큼 화려하지 못했다. 온갖 문제점과 기술적 어려움이 길을 가로막았다.

    적잖은 연구자들은 아직도 앤티센스 약의 즉각적인 응용 가능성에 대해 고개를 젓는다. 생유기화학자인 마크 매튜치 박사(질레드 과학연구소)는 『지금 실험 중인 13종의 DNA약들이 진짜 앤티센스 제제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한다.

    『앤티센스는, 이론만 보면 더없이 단순하고 명료해서 누구나 흥미를 가질만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나 많다』 미 국립 알레르기 및 감염성질병 연구소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쓸 수 있을 만한 앤티센스 약은 3~5년 뒤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에이즈환자에 눈약 주사약 형태로 임상실험도

    DNA약을 개발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DNA 조각들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약을 구성하는 분자가 클수록 이를 몸속에 투여하기도 어렵고 세포 단계까지 침투시키기도 어렵다.

    예컨대 아스피린처럼 구성 분자가 작은 약은 알약 형태로 만들어 손쉽게 먹을 수 있어서 소화기관을 따라 자연스럽게 몸속으로 침투시킬 수 있다. 분자가 웬만큼 큰 경우라면 정맥내 주사로 투여할 수도 있지만 어떤 약은 그럴 수도 없을 만큼 큰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더욱이 구성 분자가 클수록 이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도 올라간다. 그래서 앤티센스 제제를 개발해온 기업들은 이 분자의 크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 왔다.

    앤티센스 분자는 무작정 작아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세포 속으로 침투시킬 수 있을 만큼 작으면서도 RNA와 결합해 이를 기능정지시킬 만큼은 커야 한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DNA로부터 풀려나오는 RNA가 한두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분자 크기를 줄이기 위해 지나치게 짧은 DNA 서열구조만으로 약을 만들 경우 엉뚱한 RNA와 결합할지도 모른다. 때로는 그것이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단백질의 정보를 지녔을 수도 있다.

    『표적 RNA에 단단히 결합하면서도 다른 유익한 단백질 정보를 지닌 RNA에는 붙지 않는 앤티센스를 개발하는 것이 핵심과제』라고 매튜치 박사는 말한다. 그래서 그의 연구팀은 약품을 개발하기에 앞서 앤티센스 분자를 가능한한 더 작게 줄이는데 힘을 쏟고 있다.

    저매츠닉 박사는 그러나 『매튜치 박사의 접근방법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우리가 이미 유전학적으로 완벽한 앤티센스 약을 개발했음에도 그들은 늘 「앞으로 몇년 더 기다려야 한다」고만 말한다』 그가 설립한 하이브리던은 현재 에이즈 환자들에게 3종의 앤티센스 제제를 임상 실험하고 있다.

    하나는 눈약 형태이고, 다른 두가지는 정맥주사로 투여하는 형태이다. 아스피린처럼 먹는 형태의 약도 개발 중인데, 하나는 에이즈 바이러스에, 또다른 하나는 결장암(結腸癌)에 적용되는 것이다.

    아이시스 제약사도 먹는 형태의 앤티센스 제제를 실험하고 있다. 정맥주사로 투여되는 크론병 치료제는 환자 300명을 대상으로 4월부터 임상실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우리는 결코 허튼 소리를 하는 과학자들이 아니다. 앤티센스 제제는 엄연한 현실이다』 아이시스의 연구자들은 자신감에 차 있다.

    한편 오는 5월1~2일에는 미국 케임브리지에서 「앤티센스97」 학술대회가 열린다. 하이브리던과 아이시스를 비롯해 세계 최대의 제약사 노바티스 등이 후원하는 첫 행사다. 이 분야의 새로운 지평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 상 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