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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

우리가 만든 음악 ‘우리 이름표’달자 (NEWS+ 1997년 4월3일치)

‘樂’ ‘난장’ ‘볼트’ 등 토종 레이블 음반 잇따라 출사표 - “록 클래식 한국화 실험” 포부도

  우리 얼굴을 가진 음반을 만들자.

    순수 토종 레이블 (Label·상표)들이 잇따라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열린 장르, 젊은 레이블」을 내세운 「악」 (樂)이 1월말 명창 안숙선의 즉흥 시나위 「웨스트 엔드」 (West End)로 신고식을 마쳤으며, 「난장ㄴ」은 최근 뉴에이지풍의 피아노 앨범 「푸른 자전거」로 지각 출발했다.

    「아름다운 소리」가 첼리스트 정명화의 「恨, 꿈, 그리움」으로 첫발을 떼었고, LG소프트도 저예산 음반에 초점을 맞춘 「인디스」와 헤비메털, 하드록 등을 주로 만드는 「볼트」를 최근 선보였다.

    「악」은 이들 중 가장 활발한 발걸음을 보여주는 선두주자다. 삼성영상사업단이라는 거대 기업을 등에 업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장점이다. 이미 석장의 앨범을 선보였으며 이달중에 김덕수와 레드선의 협연 음반을 낼 예정이다.

    원일 임동창 이생강 등의 연주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새 연주자 발굴­육성 전문성확보 등이 숙제

    『앞으로 10장 이상 나오게 되면 누구나 「아, 악에서 나온 음반이구나」하고 알 정도로 특유의 개성과 색깔을 갖게 될 것』이라고 권은경씨 (악 레이블 담당자) 는 말한다. 그녀의 말이 아니더라도 악은 단순하고 소박해보이는 담채화풍의 재킷 그림을 통해 이미지의 통일을 꾀하고 있다.

    악이 주목하는 곳은 국악과 민속음악, 재즈, 그리고 이들의 융합 (크로스오버)이다. 국악은 그중 최우선 순위에 놓인다. 권씨는 『20∼30대 젊은층의 큰 호응을 얻은 안숙선­ 김덕수의 공연에서 국악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면서 『국악을 더욱 젊게 만들고 그 밑바탕을 넓히는데 힘을 보탤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소리 찾기」에 관한한 난장을 빼놓을 수 없다. 이미 지난해 3월에 음반팀이 꾸려졌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제 몫을 해내지 못했다. 이번에 선보인 「푸른 자전거」도 유통망을 뚫지 못해 몇 달 동안 표류하다 웅진뮤직의 배급망을 타고 살아남은 것이다.

    『돈 문제가 가장 크지만 다양한 음악장르를 수용하지 못하고 댄스뮤직 일변도로 흐르는 국내 분위기도 문제』라고 우현정씨 (난장 음반기획실장)는 말한다.

    난장은 「한국의 소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정부분 악과 겹친다. 실제로 난장은 레퍼토리에 따라 삼성의 배급망을 이용하기도 한다. 김덕수의 연주가 그런 경우다. 그러나 난장은 악보다 좀더 실험적이다. 예컨대 푸른 자전거는 「한국적 뉴에이지」에 대한 실험보고서다. 신동일이 작품을 썼고 한정희가 연주했다. 담박한 수채화를 떠올리는 가편 (佳篇)이다.

    난장은 오는 9월 2장짜리 「야심작」을 내놓는다. 김덕수의 음악인생 40년을 갈무리하는 작품이다. 신해철 김민기 김광민 레드선 등 국-양악을 아우르는 일대 「음악의 난장」이 될 듯하다.

    「아름다운 소리」는 지난해 11월 공연기획사인 CMI가 만든 클래식 전문 레이블이다. 「한국화한 서양음악」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첫 작품인 「恨, 꿈, 그리움」은 정명화의 첼로를 주조 (主調)로 삼고 여기에 해금 거문고 같은 우리 악기의 선율을 융합했다.

    서로 다른 두 세계의 소리는 뜻밖에도 버걱거리지 않는다. 매끄럽게 어울린다. 『앞으로 우리 연주가와 우리 작품을 발굴하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CMI측은 밝혔다.

    LG소프트는 「인디스」와 「볼트」로 팝 음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레이블의 이미지를 드러낼만한 「작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삐삐롱스타킹, 유앤미블루 등을 통해 록의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송스튜디오도 주목할만한 「토종 레이블」이다. 한국적 록을 일궈간다는 긍지가 대단하다.

    레이블은 음반의 얼굴이다. 더 나아가 음악의 얼굴이 될 수도 있다. DG (도이치 그라모폰)라고 하면 곧바로 노란 튤립 마크와 정통 클래식음악을 떠올리는 것이 그 예다. DG가 그러한 이미지를 갖기까지는 100년 가까운 역사와 수많은 스타 연주가들이 필요했다.

    끊임없이 새 아티스트를 발굴, 육성하는 일과 전문성을 쌓는 일. 이제 막 돛을 올린 토종 레이블들의 숙제다.<김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