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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

장영주 ‘신동껍질’벗고 훨훨 난다 (NEWS+ 1997년 3월27일치)

* 장영주는 여전히 세계 정상급 연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저 1, 2년 '신동'이나 '스타' 소리 듣다 사라지는 연주자들이 판을 치는 현실에서,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저 아래 음반 제목을 '심플리 새러'라고 - 장영주의 영어 이름에 대한 한국식 표기가 '사라 장'임에도 불구하고 - 한 이유는 어감과, 아마도 그 안에 든 숨은 메시지(?) 때문이다. '심플리 사라'. 한글로 풀면 '(잔말 말고, 딴 생각 말고) 그냥 사라'가 될 수도 있으니까...하하.

몬트리올심포니와 내한 협연, 완숙한 기교로 연일 만원사례 - 
‘흥행 보증수표’명성 재확인

    장영주(16)는 EMI의 보물단지다. 지금까지 5장의 음반을 냈고 모두 베스트셀러가 됐다.

    최근 한국에서 가장 먼저 발매한 「심플리 새러」 (Simply Sarah · EMI)는 초판으로만 2만5천장을 찍었다. 전례로 본다면 10만장 선은 어렵잖게 넘을 전망이다.

    클래식 음반계에서 「10만」이라는 단위는 거의 「꿈의 숫자」다. 팝 음반계의 100만장에 버금간다. 아니 그 이상이다. 그런데도 장영주는 이 벽을 어렵잖게 넘어선다.

    음반만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만으로도 2000∼ 3000석의 관객을 가득 채울 수 있는 「흥행의 보증수표」다. 그녀만한 연주자는 제법 많다. 그러나 그녀만큼 흥행성을 보장하는 연주자는 많지 않다.

    바이올리니스트를 꼽는다면 안네­소피 무터, 길 샤함, 막심 벤게로프, 바딤 레핀, 조슈아 벨 등이 고작이다.

    3월13일 장영주가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섰다. 이번에는 샤를 뒤트와와 몬트리올심포니가 짝이었다. 그녀는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협주곡을 연주했다. 늘 그래왔다는 듯 그녀는 여유만만했다. 바이올린을 켜지 않고 서 있을 때는 차라리 한가로워 보일 지경이었다.

    객석을 꽉 메운 4000여 청중도, 시벨리우스가 요구하는 어려운 기교도 그녀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놀라운 집중력, ­타고난 스타기질도 ‘정상의 비결’
 
    수많은 청중과 「라이브」 (Live)는 적어도 그녀의 말에 따른다면, 도리어 그녀를 더욱 즐겁게 하는 조건이다. 『나는 스튜디오 레코딩보다 라이브가 더 좋아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팽팽한 긴장감, 나를 지켜보는 수천명의 관객… 그런 느낌이 무척 좋아요』 『배짱이 있는 거죠』 곁에 있던 어머니가 거든다.

    장영주는 그녀에 대한 외국 비평가와 언론의 찬탄이 국내로 역수입되어 유명해진 첫 연주자다. 이를테면 「거품」 없이 제대로 알려졌다는 얘기다. 그녀는 콩쿠르도 거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9세에 음반을 녹음해 이 분야의 「세계 최연소」 기록을 세웠고 (실제 출시된 것은 11세 때), 그라모폰상 신인상을 받은 첫 한국인이 됐다.

    뉴욕필 런던심포니 빈필 베를린필 등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들을 섭렵했다. 주빈 메타, 샤를 뒤트와, 콜린 데이비스 등 내로라 하는 「거장」급 지휘자들이 앞다퉈 그녀의 후견인을 자처한다. 그녀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연주자는 굉장히 강해야 할 것 같아요』 그녀의 얘기다. 「굉장히」에 액센트가 실렸다. 곧이어 「Strong」이라는 단어를 한번 더 쓴다 (그녀는 우리말보다 영어에 더 익숙하다).

    계속되는 장영주의 얘기. ㄴ『평소에는 엄마 아빠가 잘 보살펴주시지만 무대에 선 순간에는 오직 혼자죠. 혼자서 다 해야 돼요. 굉장히 강하지 않으면 안되죠. 배짱이 두둑해야 해요』

    그녀의 「타고난 스타기질」도 빠뜨릴 수 없다. 『장영주의 무대 매너나 연주할 때의 표정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이일후씨 (음악평론가)는 말한다. 『그녀의 놀라운 집중력과 세련된 연주 스타일, 나이를 잊게 만드는 성숙한 표정 등은 청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워낙 어린 나이에 초일류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것도 그녀가 화제의 중심에 놓이게 된 한 요인이다. 그녀는 이미 다섯살 때부터 「고향」인 필라델피아시 근처의 지역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하기 시작했다. 뉴욕필과 협연했을 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여덟살이었다.

    그녀에게 연주 기교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음악적 정서」를 불어넣는 것, 자기 나름의 감정과 해석을 더하는 것이 어려움이다.

    『어려운 테크닉은 혼자 연습하거나 선생님께 배우면 되죠. 하지만 음악적인 감정을 느끼고 불어넣는 것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요. 앞으로 좀 더 많은 경험을 쌓고, 공부해야겠지요』

    장영주는 16세다. 신동의 껍질을 깨고 비상(飛翔)해야 할 때다. 가장 어려운 시기다. 수많은 신동들이 이 즈음에 좌절했고,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비상을 시작한 듯하다.

    「심플리 새러」에서 들려주는 연주 기교와 음악적 해석은 더없이 안정감 있다.

    『앨범을 만드는게 무척 재미있어요. 앞으로도 해마다 한두 장씩 내놓을 생각이에요』 그녀의 7장째 음반은 베를린필과 협연한 시벨리우스의 작품. 내년 1월 출시될 예정이다. <김 상 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