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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

“왠지 끌려”이성 꾀는 향수 나왔다 (NEWS+ 1997년 3월20일치)

미 과학자 호르몬‘페로몬’상품화 - 냄새 맡으면 자기도 모르게 가슴‘벌렁’

    지난 2월14일, 초콜릿에 날개가 돋쳤다. 이른바 「발렌타인데이」였던 까닭이다. 3월14일은 「화이트데이」. 이제 사탕이 동날 때다.

    언론의 질타와 기성세대의 우려에도 아랑곳없이 두 「데이」는 공공연한 「짝짓기의 날」로 자리잡았다.

    왜 하필이면 초콜릿이나 사탕일까? 남녀를 서로 끌어당기는 것은, 그들을 사랑에 빠뜨리는 것은, 오직 「신비한」 감정만의 작용일까? 혹시 과학적인 설명이 끼여들 여지는 없을까?

    「페로몬」(Pheromone)이라는 화학물질에 새삼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성(異性)을 유혹한다고 알려진 물질이다.

    과학자들은 페로몬이 큐피드의 화살 노릇을 한다고 주장하는 쪽과 그런 것은 사람에게 아예 있지도 않다고 반박하는 쪽으로 나뉜다.

    「에록스」사(Erox Corp)의 데이비드 벌리너 박사는 앞의 주장을 지지하며, 그 분야에서 가장 앞서있다. 그는 두 종류의 페로몬을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왕국」(Realm)으로 명명한 페로몬 향수를 팔기 위해 에록스사를 세웠다. 벌리너 박사의 연구는 1960년대, 유타대에서 피부의 화학적 특성을 연구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우연히」 놀라운 변화를 알아챘다. 실험실에서 피부세포의 추출물이 담긴 플라스크를 열어놓으면 성미 까다롭던 과학자들이 유쾌하고 화기애애한 팀으로 변해 브리지게임을 즐기며 떠들썩하게 굴었던 것이다.

    그러나 플라스크를 막아버리면 곧바로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예의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가 서로 관심도 두지 않는 것이었다.

전립선암 치료제 등 의약품 개발에도 활용

곤충들은 몇 km떨어진 곳에서도 이성의 페로몬을 감지한다.

    벌리너 박사는 그 뒤 20년 동안 이 사실을 비밀에 부쳤다. 좀더 큰 시장이 형성되기를 기다린 것이다. 80년대 들어 문제의 피부 추출물을 본격 분석한 그는 한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사람의 페로몬」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에록스사의 향수 「왕국」은, 그러나 소란스러운 매미나방의 경우처럼 숱한 이성을 끌어들이지는 않는다.

    『왕국은 단지 이용자의 기분을 좋게 할 뿐』이라고 벌리너 박사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남성용 향수는 여성의 피부에서 채취한 페로몬을, 여성용 향수는 남성의 그것을 함유하고 있다. 「왕국」의 효능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벌리너 박사의 맞은편에, 그의 「왕국」이 모래위의 성에 불과하다며 반박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사람의 코 부위에 VNO(Vomeronasal Organ)가 있다는 가설부터 의심한다.
  

VNO는 다른 동물이 페로몬을 감지할 때 쓴다고 알려진 기관이다(그림 참조). 80년대에 사람의 코 부위에서 작은 구멍들이 발견되면서 페로몬 이론이 새삼 힘을 얻기는 했지만 그것이 진짜 VNO인지는 알 수 없다는 주장이다.

    미 필라델피아에 있는 모넬연구소의 신경과학자 찰스 와이소키는 『최근 증거에 따르면 사람의 VNO는 잠시 발달하다가 태아 단계에서 사라져버린다』고 주장한다.

    만약 사람에게 VNO가 있다면 사람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에도 있어야 한다. 와이소키는 그러나 『(꼬리있는)원숭이, 타마린 등 신대륙의 영장류에는 VNO가 있는 반면 (꼬리없는)원숭이, 침팬지 같은 구대륙의 영장류에는 없다』고 말한다.

    사람은 진화학적으로 구대륙의 영장류에 더 가깝다는 것이 정설이다. 따라서 이 논리대로라면 사람에게는 VNO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벌리너 박사의 「원대한」 계획은 멈출줄 모른다. 사실 그의 더 큰 계획은 향수보다 의약품에 있다. 그는 「페린」사(Pherin Corp)라는 또다른 기업을 차렸다.

    그와 동료들이 동정(同定)해낸 30~35가지 페로몬의 의학적 적용 가능성을 연구하는 기업이다. 이 페로몬들은, 엄밀히 말하면 대부분 사람의 페로몬과 구조적으로 비슷한 합성물이다.

등붉은거미 수컷은 교미후 그보다 50배쯤 더 큰 암컷의 먹이가 된다.

    벌리너 박사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선뜻 털어놓지 않는다. 다른 경쟁기업에 유출될 것을 염려해서다. 그러나 그 중 한 합성물은 유타대에서 「월경전 증후군」에 대한 치료제로서 실험중이라고 밝힌다.

    그는 페로몬을 이용한 의약품이 호르몬 관련 질병에 특히 효험을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 예컨대 남성호르몬의 하나인 테스토스테론의 수위를 낮춰주는 페로몬은 전립선암 치료제로 쓰일 수 있다는 얘기다. 산아제한이나 다른 내분비성 질병 치료에도 적용될 수 있다.

    벌리너 박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페로몬은 혈압조절은 물론 대표적인 두가지 생식호르몬, 곧 「난포(卵胞) 자극 호르몬」과 「황체(黃體) 형성 호르몬」의 분비속도를 조절한다.

    『페로몬의 가장 큰 장점은 반응속도가 빠르다는 점』이라고 벌리너 박사는 말한다. 일반적인 약은 혈류를 따라 이동하는데 드는 시간만큼 반응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그러나 페로몬은 VNO(코 근처)에 두기만 하면 된다. 페로몬을 감지한 VNO는 「즉각」 그 메시지를 시상하부(視床下部)로 전달한다. 시상하부는 감정과 체온 따위를 통제하는 뇌의 한 부위다.

    『반응이 빠른만큼 갑작스런 공황이나 고통에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페로몬 냄새맡는 기관 없다”반박하기도

뱀의 혀는 먹이는 물론 이성의 페로몬을 찾는데 필수적이다.

    페로몬의 두번째 장점은 극히 적은 양으로도 퍽 효과적이며 안전하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원천적으로 VNO 과용이 불가능하다.

    VNO수용체는 냄새를 맡는 수용체와 비슷해서, 같은 자극을 계속 받을 경우 포화상태에 이르러 이를 더 이상 감지할 수 없게 된다.

    페로몬과 냄새는 여러가지 공통점이 있다. 둘다 공기로 운반되는 화학물질이고, 코에 있는 특정한 신경세포에 의해 감지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를 감지하는 신경세포는 각기 다르다.

    냄새를 맡는 기관은 코에 있는 「후각상피」(Olfactory Epithelium)이며 페로몬을 감지하는 것은 VNO이다. 냄새의 종류는 페로몬보다 훨씬 더 다양하다.

    예컨대 쥐의 VNO에는 약 30종류의 분자 수용체가 들어 있지만 후각상피에는 그보다 10배쯤 더 많은 수용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의 냄새감각은 의식적인 층위에서 일어난다. 자동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우리는 고무 타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러나 페로몬에 대한 감각은, 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무의식적인 층위에서 일어난다. 페로몬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인간과 가까운 침팬지는 페로몬과 이를 감지하는 VNO가 없다.

    벌리너 박사의 폐쇄적인 연구방식도 논란을 부추긴다. 그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여러해 동안, 그는 자신이 발견한 화학물질의 내용을 숨겨왔다. 그에 대한 정보 없이는 다른 누구도 그의 결과를 본뜨거나 검증할 수 없다. 그것이 다른 과학자들의 신경을 건드린다.

    그러나 벌리너 박사는 『우리에게는 엄연히 특허권이 있다』고 주장한다. 사람에게 페로몬이 있든 없든, 인류가 그동안 매우 성공적인 짝짓기를 해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60억이 넘는 인구가 좋은 증거다.

    그렇다면 초콜릿은 연인들 사이에서 어떤 구실을 하는 것일까?

    미시건대의 애덤 드루노프스키 박사에 따르면 초콜릿에는 뇌의 화학작용에 관여하는 특별한 기능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뇌에서 마취성 화학물질을 분비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샌디에이고 신경과학연구소 대니얼 피오멜리 박사도 비슷한 연구결과를 얻었다. 초콜릿이 마리화나 수용체를 활성화하는 뇌 화학물질의 파괴를 늦춘다는 것.

    그에 따른다면, 사랑과 초콜릿은 퍽 긴밀하게 얽혀있는 것이 분명하다. 둘다 사람을 「혼미」하게 만드니까 말이다. <김 상 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