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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 콘로이의 감동적인 독서 편력 - '나의 독서 인생'

책 제목: 나의 독서 인생 (My Reading Life)
지은이: 팻 콘로이 (Pat Conroy)
판형: 하드커버
분량: 352쪽
출판사: 낸 A. 탈리즈 (Nan A. Talese | Doubleday)
출간일: 2010년 11월2일

팻 콘로이는 그저 이름만 바람결에 들어 어렴풋이 눈에 익은 수준이었으므로 이 책의 존재에는 깜깜했다. 그럼에도 선뜻 집어든 것은 유독 예쁘게 보였던 표지 때문이었다. 에드먼튼 도서관에 책을 돌려주려 들렀다가 나오는 길이었다. 누가 
책을 표지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했던가. 이 책은 실로 다행스럽게도 그 표지로부터 받은 인상이 속 내용으로도 고스란히 증명되는 양서였다. 아니, 책 표지를 뛰어넘는 기름지고 감명 깊은 내용으로 꽉 찬 가작, 아름다운 책이었다.

내가 '바람결에' 들은 내용도 그랬거니와, 이 책에 실린 촌평들도 하나같이 팻 콘로이의 빼어난 문장력, 적확하기 그지 없는 어휘 선택, 절묘한 리듬감과 잘 계산된 호흡을 꼽고 있다. 이 자서전적 독서 편력을 읽으면서, 그 칭찬과 감탄이 조금도 지나친 것이 아님을, 처음부터 끝까지, 확인하고 또 확인할 수 있었다.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각 단어가 얼마나 적확하게 배치됐고, 그 단어들로 짜여진 문장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잘 연결돼 있는지를 제대로 확인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으나, 그럼에도 마치 시를 읽는 듯, 혹은 잔잔하고 나긋나긋하게 일렁이는 호수 위의 튜브나 보트에 앉은 듯한 편안한 리듬감을 느끼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다. 

그는 여기에서 수많은 책을 열거하지 않는다. 한국의 수능 대비용 잡지나, 국내외의 온갖 매체들이 봄이나 여름, 가을 때마다 이런 책이 좋다더라며 5선, 10선 하듯 목록을 만들어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런 면에서, '북미 문단에서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팻 콘로이가 어떤 책을 권했을까?' 하고 궁금해 한다면 다소 실망할 공산도 없지 않다. 제대로 언급된 책 제목으로만 본다면 채 10권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리어 이 책은 '책'이라는 단서로 시작된, 또는 '책'이라는 고리로 엮어가는, 팻 콘로이 자신과 그 가족, 잊지 못할 스승과 친구에 대한 헌사이다. 그를 포함해 무려 여덟 명이나 되는 자녀를 건사하는 한 편, 공군 파일럿인 남편의 직업 때문에 곳곳을 떠돌아야 했던 팻 콘로이의 어머니는, 그러나 한시도 손에서 책을 뗀 적이 없고, 아이들을 잠 재우기 전에 책을 읽어주지 않은 적이 없는, 실로 경이롭고 감탄할 만한 영웅적 인물이었다.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는 열등감을 치열한 독서와 공부로 만회했을 뿐 아니라, 팻 콘로이가 평생 책을 가까이하고, 미국을 대표하는 한 작가로 성장하게 한 밑거름을 제공했다.

팻 콘로이의 웹사이트에서 퍼온 이미지. http://www.patconroy.com/


그런가 하면 그의 글쓰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고교 시절의 은사 진 노리스에 대한 이야기가 또한 심금을 울린다. 그의 독특한 교육 방식, 학생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느끼게 하는 한 장은, 그 자체로 '내 마음속의 스승' 수기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감동의 스토리다. 일부러 '스토리'라고 했다. 그가 병으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팻 콘로이와 이야기를 시작할 때 늘 한 말이 바로 '네 이야기를 해봐' (Tell me your story)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팻 콘로이는 그 말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표현 중 하나라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생래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며, 생래적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읽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을 읽으면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팻 콘로이에게, 그 어머니에게, 그리고 미국 남부 사람들에게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갖는지 실로 명징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의미를 설파하는 데, 미국 남부 문학의 대표격인 팻 콘로이보다 더 적격일 인물도 달리 없을 듯싶다. 또 탐 울프 (Tom Wolfe), J.R.R. 톨킨, 톨스토이, 제임스 디키 등이 팻 콘로이의 독서 인생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흥미진진한 개인사와 더불어 확인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주관적인, 이보다 더 인간적이고 애정이 묻어나는, 이보다 더 내밀하면서도 진실된, 이보다 더 미려하고 달변인, 그러면서도 한 사람의 독후감이 수많은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이런 독서 편력기도 달리 찾아보기 어려울 듯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별 다섯에 다섯. 아래 그림을 클릭하면 이 책에 대한 그의 인터뷰 내용을 들을 수 있다 (아마존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