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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오직 한 권의 책만 존재하는 당신들의 '디지털 유토피아'...그러나 내겐 디지털의 지옥

먼저 '디지털 휴머니즘' (You are not a gadget)에 나오는 한 대목을 보자.

케빈 켈리과거 특정 작가들이 정연한 책으로 엮어내곤 했던 모든 아이디어와 세목(細目) 들이 이제는 단 하나의, 전지구적인 책으로 통합될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작가가 필요치 않다고 말한다. 잡지 「와이어드」의 편집자인 크리스 앤더슨과학계가 더 이상 과학자들 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제안한다. 어쨌든 ‘디지털 클라우드'가 그 이론을 더 잘 이해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전략)...2006년 존 업다이크와 케빈 켈리가 저술의 문제를 놓고 논쟁할 때 유례없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케빈은 전세계의 모든 책이 스캔되어 클라우드 컴퓨팅에 저장됨으로써 언제든 검색 가능하고, 마음대로 뒤섞을 수 있게 되어 사실상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일 뿐 아니라 ‘윤리적 당위'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업다이크는 개별 저자들간의 경계 혹은 차이를 명백히 보여주기 위해 ‘우위'와 ‘테두리'라는 뜻을 동시에 지닌 ‘엣지'(edge)라는 단어를 비유로 들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교조적인 웹 2.0 열광자들은 업다이크가 구닥다리 기술에 감상적으로 매달린다고만 몰아부쳤다. 

더이상 작가가 필요치 않다며 최근 '테크놀로지가 원하는 것'을 쓴 댁은 대체 누구슈? 그리고 후리Free가 미래의 경제이고 미래 경제의 갈길이라면서 책을 돈 받고 파는 댁은 또 누구쇼?? <-- 혼잣생각.

번역하면서도 정말로 이 사람들이, 이른바 '디지털 엘리트'이자 '디지털 전도사'인 이들이 이런 말을 했을까 의구심을 가졌다. 그만큼 내게는 턱도 없는 주장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웹 2.0, 혹은 '소셜 웹'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군중의 지혜', 혹은 '집단 지성' 현상을 보노라면, 그게 지은이인 레이니어가 억지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님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내가 굳이 위의 인용문을 들고 나온 이유는 과거의 IT 담당 기자 경력에다, 지금도 여전히 버릴 수 없는 이 분야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마존닷컴에서 만난 아래의 두 장면 때문이다. 앞에서 특정한 작가나 필자의 견해와 주장이 들어간 책의 불필요성을 소리높이 외친 이들이 정작 각자의 이름을 깃발처럼 내걸고 책을 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러 판형의 책들에 대한 가격 때문이기도 하다. 먼저 아래 그림을 보자.

케빈 켈리의 신간 '테크놀로지가 원하는 것'. 하드커버 종이책보다 전자책이 더 비싸다. 이게 뭥미?



크리스 앤더슨의 Free. 물론 책은 '훠리'가 아니다. 종이책보다 전자책이 더 비싼 기현상도 마찬가지. 다시, 이게 뭥미?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은 물론 저자들의 책임이 아니라 출판사의 책임이고, 더 나아가 왜곡된 출판 시장 탓이라고 돌리자.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짚고 싶은 것은, 앞으로 다가올 '한 권의 책' 세상에 대한 방향과 이들의 '책 장사'가, 내 눈에는 어긋나 보인다는 점이다. 당신들이 그토록 칭송해 마지 않는 군중의 지혜, 집단 지성의 이익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 책의 판매 수익을 그 부문에다 쾌척하실 건가? 당신들은 그 벌집형 집단심리 컴퓨팅 (Hive mind)을 그토록 칭송하고 광고하면서도, 왜 당신 자신들은 정작 그 세계에 봉사하는 한 마리 벌이기를 주저하는가? 

나는 여기에서도 또 하나의 설익은 이데올로기, 그 실상은 또다른 상업주의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 어쭙잖은 유토피아론을 본다. 개인, 개성, 자율성, 다양성, 개개인의 이익 추구와 자아 실현 같은, 초등학교 - 유치원? - 시절에 배운 미덕을 무시하거나 무화한 이데올로기, 사상, 철학, 이론은 - 그걸 뭐라 부르든 - 필연적으로 공허할 수밖에 없다. 허당일 수밖에 없다. 배울 만큼 배웠고, 읽을 만큼 읽었고, 생각할 만큼 생각했을, 이른바 지식인 중에서도 상당히 윗대가리에 놓일 게 분명한 이들이 저처럼 눈먼 낙관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저처럼 비현실적일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아니, 허탈하다. 

다시 레이니어의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그만하련다. 입맛이 쓰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이후에 일어날 일이다. 클라우드에 저장된 책들이, 각 출처의 맥락과 저술을 모호하게 하면서 온갖 조각들의 뒤범벅(매쉬업)을 부추기는 이용자 환경을 통해 접근되고 이용된다면, 정말 오직 책 한 권 만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는 이미 오늘날 수많은 컨텐츠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한 기사에서 나온 인용 구절의 출처가 어디인지, 누가 논평을 썼는지, 혹은 누가 비디오를 찍었는지 종종 알 도리가 없다. 지금과 같은 흐름이 계속되면 우리는 다양한 중세의 종교 제국들처럼 되거나, 딱 한 권의 책만 가진 사회, 북한처럼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뭉뚱그려진 하나의 총체적인 책은, 개인의 책을 모아 놓은 도서관과는 절대로 같을 수가 없다.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 이도 있지만,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재앙에 가까울 정도로 끔찍할 것이라 믿는다. 영화 '침묵의 소리 (Inherit the Wind)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 “성서는 책입니다. … 하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책은 아니지요” 처럼 말이다. 유일하고 독점적인 책은, 심지어 클라우드에서 축적된 총체적 책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유일한 책이라면 잔혹한 책이 될 것이다.

관련 블로그 (블루고비) - 이 잡설을 쓰게 된 동깃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