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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03HD 뮤직 서버 사용기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올리브 뮤직 서버 (Olive Music Server) 03HD가 어제 도착했다. 1천불 넘게 주고 산 것이니 사기 전에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많았다. 맥북 에어를 살까 하다가 이미 쓰고 있는 델 PC와 맥북 둘다 아직 정정하셔서, 바닥에 흘린 침 깨끗이 닦고 뮤직 서버로 선회했다. 

올리브 뮤직서버 03HD. 흰색과 검정색이 있는데, 나는 다른 오디오 컴포넌트와 맞추느라고 검정색을 샀다.


뮤직 서버라는 게 별게 아니고 CD를 디지털 파일로 옮기는 (ripping) 기능, 디지털 파일을 다시 CD로 구워주는 (burning) 기능, 기왕에 아이팟이나 컴퓨터에 모아놓은 디지털 음악을 재생하거나 저장해두는 기능 등을 갖춘, 말 그대로 서버이다. 음악적 기능에 특화된 미우직 서버. 따라서 그 안에 하드디스크를 내장하고 있다. 그리고 네트워크 기능을 갖춘 것도 있고, (영국에서 파는 브레넌 (Brennan)처럼) 갖추지 않은 것도 있다 (이 경우, 대체로 서버라는 말대신 하드드라이브라는 말을 쓴다). 

간단한 뒷 모습. On/off 스위치, 앰프 연결단자. 음악 파일을 전송하기 위한 USB 포트 하나. 네트워크용 랜 단자 하나. 무선 기능은 없다.


올리브 03HD의 사양 - 그리고 관련 잡설도 - 을 잠깐 살펴보자 (올리브에서 나오는 뮤직 서버들의 비교는 여기를 참조).

  • 하드디스크 500GB. 미흡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이곳에서 나오는 뮤직 서버중 값으로는 이것밖에 (어렵사리) 만만한 게 없어서 그냥 가기로 했다. 2TB 짜리가 04HD인데, 값이 2,500불 대로 껑충 뛴다. 앓느니 죽자. 하나 좋은 건 '무쟈게 조용하다' (ultra quiet)라는 주장이 별로 틀리지 않게 하드디스크 돌아가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점.

  • 네트워크 기능: 유선. 하지만 무선 기능이 없다. 마침 집에 있는 USB 무선 수신기를 달아 잠시 시험해 봤는데 바로 코앞에 뻔히 있는 무선 송신기를 인식하지 못했다. 무선 인터넷 없다, 라는 메시지를 띄웠다. 그래서 오디오들을 다 랜 선이 닿는 곳으로 옮기는 대공사 진행. 

  • CD리핑 기능: 해보니 생각보다 느린 것도 같고 빠른 것도 같다. 아마 랜을 이용해 노트북에 담긴 200GB 정도 분량의 음악을 서버로 옮기는 작업이 함께 진행중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CD를 넣기가 무섭게 리핑을 끝내곤 했다. 리핑해 전환하는 디지털 파일 포맷으로는 고품질의 24비트/192kHz를 지원한다. 물론 FLAC, 무손실 WAV 포맷, 320kbps MP3, 128kbps MP3 등으로 뽑아내는 것도 가능하다.

    아이튠즈에서 돈 주고 내려받은 정품인데도 작곡가와 작품이 다 미상이란다.

  • 인터넷 라디오: 미리 장르별로, 언어별로, 국가별로, 심지어 송출되는 음질 (30kbps부터 256kbps까지) 별로 주요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들을 다 잡아놨다. 마음에 드는 것만 선택하면 된다. 목록에 없는 것은 따로 추가하면 된다. 음질과 음악 선곡 면에서는 네덜란드의 AVRO 방송국 서비스들이 단연 쵝오. 보스턴에서 나오는 WGBH도 좋다. 한국의 KBS 제1 FM을 혹시 들을 수 있을까 기대했다가 없어서 실망. 한국의 인터넷 방송국들도 몇 개 보이는데 이름만으로 봐서는 썩 끌리지 않는다.

    로열콘서트게바우 오케스트라의 실황을 들려주는 인터넷 라디오. 음질이 아주 좋다.

  • 인터페이스: 터치 스크린, 리모콘, 또는 아이폰/아이팻 앱으로 조정할 수 있다, 라고 돼 있다. 그런데 이 놈의 터치 스크린이 되지를 않았다. 전혀 안됐다. 스크린에 아예 터치 감지 기능을 넣는 것을 까먹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 정말 그런 것 같다. 그러니 반편이를 산 느낌도 드는데, 다른 기능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꼭 그렇다고 보기도...

    리모콘으로 쓸 수 있는 올리브 미디어의 아이폰/아이팻 앱.

    미국 샌프란시스코 본사로 어렵사리 전화를 걸었으나, 저쪽에서 해줄 수 있는 말이란 다 예상한 대로... 전원 다 빼고 껐다가, 한 2, 30분 뒤에 다시 시도해 보라는...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 전에, 화면을 잠재우고 - '슬립' 모드 - 나서 네 귀퉁이를 '마사지' 해줘 보라는 주문이었다. 이젠 기계가 정말 사람처럼 돼가는 증거인가? 아니면 내가 기계에 더 가까워지는 증거? 아무려나, 애정을 담아 열심히 마사지하고 애무해 줬으나 결과는 마찬가지. 그러면 다시 페덱스로 부쳐달란 얘기. 그러면 환품해주겠다는... 당연히 그래얄 것 같은데 문제는 내 안의 '귀차니즘'이 맹위를 떨쳐, 에이 그냥 리모콘으로도 잘 되는데 그냥 쓰지 뭐, 로 낙착을 봤다는 것. 

    특히 아이팻용 앱을 설치해 리모콘 대용으로 써보곤, 오우, 바로 이거야, 하고, 터치 스크린 기능 안되면 또 어때, 로 갔다는 것. 실제 리모콘을 쓸 때는 뮤직 서버 앞에 가서, 4.3인치짜리 컬러 스크린을 보면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아래나 위로 조정해야만 한다. 멀리선 안보이니까... 그런데 이 아이폰/아이팻 앱은 멀리서도 그 화면을 보면서 선곡하고, 방송국 고르고 할 수 있으니 몇 배나 더 편리하다. 물론 앱을 내려받고 나서, 뮤직 서버를 인식할 수 있도록 서버의 IP 주소를 입력하는 게 필수.

    중뿔나게 인터페이스가 예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록된 음악 작품의 제목이나 내용을 편집해 바로잡을 수 없다는 게 단점이지만, 그래도 기기 코앞에 가서 작은 화면을 보며 리모콘 버튼을 꾹꾹 눌러대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나아 보인다. 터치 스크린이 안되면서 생긴 또 한 가지 문제는 아이폰/아이팻 앱으로 조작하다가 다시 본 화면을 '터치'해 쓰거나 진짜 리모콘을 쓰려면, 현재 내가 아는 바로는 기기를 완전히 껐다가 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화면 메시지에는 '지금 아이폰/아이팻 앱으로 조작되는 것을 취소하려면 터치 스크린 아무데나 누르시오'라고 돼 있지만 터치 스크린이 먹통이니 도무지 방법이 없다. 이런 제길!

다른 오디오들과 연결. 지금은 랩탑에 담긴 200GB 정도 분량의 디지털 음악 파일을 랜을 이용해 뮤직 서버로 옮기는 중이다. 꽤 오래 걸렸다. 한편 왼쪽 아래 뮤직 서버에 표시된 22%는 집어넣은 CD를 리핑한 정도를 나타낸다.

총평
- 달랑 하루 써보고 뭘 얼마나 알겠는가마는 이번 올리브 03HD 구입은 '절반의 성공' - 혹은 '절반의 실패' - 같다. 처음 주문했을 때는 이것 하나 있으면 앞으로 집안 곳곳에 널린 CD들을 박스에 담아 바리바리 차에 싣고 이사 다닐 필요, 다시는 없으리...할렐루야!, 하는 기대였는데, 막상 써보니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정품 CD를 넣어도 제목 말고는 작곡가나 지휘자 이름을 인식 못해 '미상'(Unknown)으로 표시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하이팅크와 시카고 심포니의 최신 말러 2번 앨범을 넣었더니 두 장중 첫 번째 CD를 난데없이 '헨젤과 그레텔'로 인식했다. 저쪽 시카고 심포니에서 메타데이터 (Metadata)를 잘못 넣은 건가? 

사실 디지털 파일을 관리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메타데이터, 혹은 메타 태그 (Meta tag)이다. 해당 파일이나 작품의 성격과 성분을 알려주는 이 '메타 정보'가 틀리거나 제대로 입력되어 있지 앟으면 수천 수만 장의 CD를 디지털 파일로 바꿔봐야 말짱 도루묵이다. 파일을 손쉽게 찾아내주는 기능 (findability)이 없는데 어떻게 그 많은 파일을 원할 때 재빨리 찾아낼 수 있겠는가? 

CD를 리핑한 파일의 음질에도 약간 아쉬움이 남는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겨울나그네를 FLAC 포맷으로 리핑한 뒤 이를 들어보고, 원본 CD를 NAD CD 플레이어에 걸고 비교 감상해 봤다. 누가 들어도 CD로 듣는 게 더 좋게 들린다. 음색도 더 진하고 풍요로우며 임장감도 더 낫다. 내 CD 플레이어가 이렇게 좋았나 싶을 정도... 

일단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인터넷 라디오 기능이다. 특히 AVRO에서 내보내는 256kbps의 소리는 정말 기막히게 좋다. 앞으로 아이팻/아이폰 리모콘을 써서 요모조모 더 들어볼 생각이다. 

지금까지 감상해본 바로는 별 다섯 개중 세개 반 정도는 줄 수 있겠다. 터치 스크린 대목에 이르면 별 하나도 넘치지만, 순수하게 음악을 주고받고 감상하는 기능에 눈길을 줬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본전 뽑자면 정말 열심히 써줘야 할듯.

올리브 뮤직 서버의 윗모습. 음악의 온갖 장르를 적어넣은 장식이다. 그럴듯하긴 한데, 나는 그 위에 다른 (하지만 무겁지는 않은) 오디오를 올려놨으니 장식을 낸 효과가 없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