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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눈의 공포 - 열흘 째 내리는 이 눈은 대체 언제나 그칠까?

집 뒤뜰은 눈에 파묻혔다. 지붕도 가관이다.



눈이 내린다. 내리고 내리고 또 내린다. 

지난 1월7일 금요일, 한국 방문을 마치고 캐나다로 돌아온 날부터 지금까지, 눈은 그치는가 하면 떨어지고, 자는가 하면 또 날리고, 이제 됐나 싶으면 또 시작한다. 풀풀 날리는 눈발은 종종 과자 부스러기 같다. 때로는, 좀 지저분하기는 하지만, 비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눈은 신의 비듬? 

눈을 치웠다. 치우고 치우고 또 치웠다. 그렇게 치운 눈이 집 차고로 통하는 도로 (드라이브웨이) 양얖으로 쌓이고 또 쌓여 어느새 내 어깨 높이에 이르렀다. 공원과 집을 구분 지은 담장은 이제 거의 눈에 파묻혔다. 

집이 막다른 골목 ('컬드삭', 혹은 이곳 교포 발음으로 '굴데삭'이라고 한다. Cul-de-sac ^^)에 있어서 시 당국의 눈 치우는 순위에서도 뒤로 밀린다. 그래서 때로는 눈이 종아리 높이까지 쌓일 때까지도 제설차가 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가 이웃들은 다 차를 두세 대씩 가지고 있는데, 그중 한 대는 반드시 4륜 구동의 트럭이거나, 이른바 '올 휠 드라이브' (All Wheel Drive, AWD)의 SUV (스포츠 유틸리티 비클)이다 (4륜 구동과 AWD는 그 메카닉이 사뭇 다르다). 우리 집엔 차가 달랑 한 대뿐이지만 '이렇게 춥고 눈 잦은 곳에서는 꼭 AWD인 차를 사야 한다'라는 생각에서 도요타 시에나 AWD를 구입해, 웬만큼 눈이 쌓인 경우에도 드나들다 눈에 빠져 허우적댈 걱정은 별로 없다.

제설차가 눈을 가장자리로 밀고 있다. 집이 맨 끝자락이어서 바로 앞에 눈 산이 하나 생겼다.



그러더니 일요일인 어제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대형 제설차와 로더가 내가 사는 누추한 골목에까지 들어와 눈을 싹 밀어 주었다. 우리 집이 막다른 골목중에서도 맨 끝집이어서 그 앞으로 제설차가 밀어놓은 눈으로 더 큰 산이 하나 생겼다. 지금이야 드나들기에 크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공간이 나오지만 이런 식으로 눈이 계속 내리다 보면 집앞까지 그 산이 밀려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월요일 아침, 눈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눈발 자체는 그리 거세지 않은데 쉼없이 내리고 또 내리니 그게 더 무섭다. 잠깐 쏴아 하고 쏟아져버리는 소나기보다, 하루 종일, 혹은 이틀 쉬지 않고 찔끔거리며 내리는 가랑비가 더 무서운 것과 마찬가지다. 부스러기 떨어지듯 부슬부슬 내린 눈이 한 주를 지나 2주에 더 근접하면서, 온 사방이 눈 천지이고, 곳곳이 치워둔 눈의 둑이고 언덕이고 산이다. 

토론토의 폭설. 2008년 3월. 물기 머금은 눈은 눈사람을 만들거나 눈싸움 하기엔 제격이지만 치우기엔 정말 고역이다.



2001년 온타리오주 토론토로 이민 온 이후, 이렇게 많은 눈은 처음이다. 언제 그칠지 기약조차 없이, 계속해서 내리는 눈을 만나보기도 처음이다. 그나마 눈에 물기가 없어서, 넉가래로 크게 힘들이지 않고 밀어낼 수 있는 게 다행이다. 이 눈에 물기가 들어가면 눈 치우는 일은 그야말로 고역이고 죽음이다. 병약한 노인에겐 심장마비를, 건강한 청장년층에도 욱신거리는 허리와 팔다리를 선사하기 십상이다. 

무섭다. 이렇게 내리고 또 내리는 눈을 보면서,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온갖 첨단 기술과 과학으로 무장하고 있는 21세기의 인간도, 돌연 하얗게 지워지는 것 같다. 사소하고 미약한 자연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과 만난다. 

이 눈은 언제 그칠까? 제발 하루빨리 누그러들기를 바란다. 설령 다시 오더라도, 그 사이에 따뜻한 영상의 기온이 며칠이라도 이어져서, 위태롭게 쌓인 지붕 위의 눈을 얼마간 녹여주기 바란다. 

지난 며칠새, 내 머릿속에 머물고 있는 단어는 눈, 눈의 공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