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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Bullshit

불쉿 (bullshit)은 (특히 미국에서) 욕이고, 점잖은 (사실은 ‘척하는’) 언론이나 공적 상황에서는 쓸 수 없는 말로 여겨진다. 이번에 프라이버시 트레이닝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이 단어를 내뱉었고, 뜻밖에도 청중은 넉넉하게, 치기 어린 농담쯤으로 받아 웃어 주었다. 사실은 그 단어를 쓴 맥락이, 그것을 욕설로 여길 수 없게 한 덕도 있었다. 프라이버시 법들이 개인 의료 정보를 제때, 특히 해당 환자의 위급 상황에서 제대로 취득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라는 일각의 주장, 프라이버시 법은 개인 정보의 공개를 금지한다는 주장이 다 실상과는 다른, 불쉿이라고 공박한 것. 



그런데 요즘 이 불쉿이 남발되는 현상과 너무 자주 만난다. 불쉿이라는 단어가 남발된다는 뜻이 아니라, 불쉿으로 볼 수밖에 없는 현상과 행위와 사건과 수사(修辭)가 남발된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이런 상황, 아니 문구를 보자. 내 사무실이 입주한 건물에 6개월 넘게 붙어 있는 표지다. 


This elevator is currently out of order. We apologize for any inconvenience and we thank you for your patience. 

이 엘리베이터는 현재 고장입니다. 불편을 끼쳐 죄송하며 귀하의 인내심에 감사 드립니다. 


재미난 것은, 아니 실상 분개스러운 것은, 언제 고치겠다는 말이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가능한 한 빨리’라는 하나마나한 부사조차 없다. 내가 있는 사무실 건물의 두 엘리베이터 중 한 대가 멈췄는데, 저런 딱지 하나 붙여놓고 6개월 넘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불쉿은 ‘사과한다’라는, 진심이 전혀 깃들여 있지 않은 문구이다. 실상은 사과가 아니고, 사과의 의도도 없기 때문이다. 또 귀하의 인내심에 감사한다고 했는데 그건 감사하고 자시고 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 달리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으면 못 타는 거지, 거기에 무슨 인내심이 요구된다는 말인가? 


Thank you for your cooperation이라는 말도 마찬가지. 실상 우리는 아무런 ‘cooperation’도 할 게 없다. 설령 그렇게 보여도 협조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달리 대안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냥 참고 넘어가는 거다. 짜증스럽고 괴롭지만 다른 방도가 없으니 주어진 상황을 견딜 뿐이다. 이쪽의 무대응, 이라기보다는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여러분의 협조에 감사드린다고, 불쉿을 날리는 거다.


한 예만 더 들면, Your call is very important to us, please on hold 운운하는 전화기의 자동 메시지다. 전형적인 불쉿이다. 만약 내 전화가 그렇게 (매우) 중요하다면, 왜 곧바로 안 받고 자동 메시지가 나오며, 송화자를 기다리게 만드는가? 


영국에선 ‘볼록스’ (bollocks)라고 더 흔히 부르는, 불쉿이란 무엇인가. 위키피디아의 정의에 따르면 난센스, 특히 상대를 속이거나, 오도하거나, 정직하지 않거나, 부당한 말이나 표현을 가리킨다.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진실도 아니다. 불쉿이 거짓말보다 더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한 까닭도 거기에 있다. 거짓말은 진실로, 객관적 사실로 공박하면 바로잡히지만 불쉿은 거짓도 참도 아니어서, 진실로 쉽게 공박되지 않으므로 더 어렵고, 그 때문에 주장하는 불쉿 메시지도 여전히 그 위력을 발휘한다. 


2005년, 예기치 않게 베스트셀러가 됐던 ‘불쉿에 대하여’ (On Bullshit)라는 책에 따르면 불쉿은 참과 거짓을 가리지 않으며 가릴 수도 없다. 불쉿을 떠벌리는 자 -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는 도널드 트럼프 -는 자신이 내뱉는 주의와 주장이 참이냐 거짓이냐를 전혀 괘념치 않는다. 허풍, 과장, 위선, 부정직을 뒤섞어 주장의 진위를 따지고 가릴 여지조차 뭉개버린다. 


‘불쉿에 대하여’의 저자인 프랑크푸르트 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에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거짓말쟁이가 자신이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진실을 알기 때문이다. 


“불쉿을 생산하는 데는 그런 확신이 필요치 않다. 거짓말쟁이는 어떤 식으로든 진실에 반응하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진실을 어느 정도 존중한다고 볼 수 있다. (...) 하지만 불쉿을 내뱉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변별점이 없다. 거짓말쟁이처럼 진실의 권위를 내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 그는 진실 따위에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불쉿은 거짓말보다 더 큰 진실의 적이다.”


흥미롭기도 하고, 그 위선 때문에 역겹기도 했던 사실 하나는, 저 책이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을 때 책 제목을 그대로 전하지 못하고 bullshit 대신 bulls**t이라고 표기한 일이다. 그 처절한 위선성 앞에서, 나는 정말 토할 뻔했다.


이번에 대만기를 들고 나왔다가 곤욕을 치른 JYP 소속사의 대만 태생 아이돌 소녀를 보면서도 그와 비슷한 역겨움과 분노를 느꼈다. 대만은 대만, 중국은 중국, 엄연히 존재하는 별개의 주권 국가들이다. 더더군다나 이 소녀는 대만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엄연히 있는 것을 없다고 주장하는 몰상식과 몰이성은, 정치 세계에서 너무 자주 벌어진다. 정치판이 곧 불쉿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을 북괴라고 부르던, 지금도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그 병통은, 대만은 없고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저쪽 사람들의 불쉿-스러운 사고와 멀지 않다. JYP의 음악적, 상업적 천재성은 인정하지만 그의 후지고 얄팍한 세계관은 참기 힘들다. 옛날 박재범 사태때 그렇게 느꼈고, 이번에 더 절실히 느꼈다. 불쉿이 판을 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