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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이젠 이별할 때

12월29일/화

아직 빅토리아. 이른 아침, 뛸 때 내리던 비는 어느새 그치고, 낮이 되면서 햇빛이 구름 사이로 나왔다. 하지만 아직 따뜻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까지 불었다. 



어제 가보기로 한 부차트 가든을 수박 겉핥기로 둘러본다. 그러려니 미리 짐작은 했지만 가지각색 수천 종의 화려한 꽃들로 유명한 '가든'에 꽃 하나 피어 있지를 않으니 꽃을 보는 재미는 애시당초 글렀다. 꽃이 진 자리에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꼼꼼하고 세밀하게도 해놓았으니, 오히려 밤에 와야 꽃을 보는 느낌에 더 가까울 듯싶다. 그래도 볕이 좋고 사람이 거의 없으니 호젓하게 걷는 재미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아래 '성큰 가든' (Sunken Garden)의 본 모습은 이렇다.



부차트 가든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기 위해 나나이모 쪽으로 방향을 잡는데 시간이 어정쩡하다. 부차트 가든의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면 거기에서 점심을 해결했을텐데 계절이 계절인지라 워낙 방문객이 적다 보니 그나마 영업을 한다는 레스토랑도 오후 네 시에나 문을 연단다. 하여 비상식으로 가져온 빵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저녁을 제대로 먹어볼까 하는데, '쌔씨네 레스토랑'이 나온다. 부차트 가든이 있는 '브렌트우드베이'라는 동네의 '로컬 식당'이다. 모든 것이 프랜차이즈화하고 대기업의 지점으로 전락하는, 혹은 획일화하는 요즘의 흐름에서, 이런 독립 매점이나 식당을 찾는 일은 거의 숨은 그림 찾기나 보물찾기에 가깝다. 그래서 반가웠고, 음식 맛이 좋아서 더 좋았다. 



노쓰밴쿠버로 건너와 세이브-온-푸즈 식료품점에 들러 급히 케이크와 장미꽃 한 다발을 샀다. 아내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함이다. 카드는 미리 사둔 터라, 그 안에 내용만 적으면 됐다. 성준이한테도 몇 자 적으라 시키고, 꽃을 주는 '화동' 역할도 맡겼다.



12월30일/수

이번 주 들어 날씨가 계속 화창하다. 대신 쨍- 하고 춥다. 북해안의 산들에는 눈이 내렸다. 밴쿠버에 가족을 두고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는 친구가 잠시 귀국해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밴쿠버 컨퍼런스 센터에서 바라본 '레고 고래' 상과, 그 뒤로 펼쳐진 북해안의 풍경이다.



성우제 선배께 드릴 크리스마스 선물이, 5일이나 늦게 배달되었다. 스위스에서 날아오는 것이라고 해도 11월에 주문한 것이 이제야 오다니 참 놀랍다. 그래도 아직 성선배가 머무시는 동안에 온 게 어디냐? 토론토로 다시 부쳐야 할 수고를 던 셈이니... 선물은 와카코 휴대용 에스프레소 머신이다. 워낙 커피를 좋아하시고, 또 커피 전문가이기도 한 성선배께 잘 어울리는 선물로 여겨져 골랐는데, 그 내용도 기능도 잘 모른 채, 여러 아웃도어 잡지들에서 최고의 휴대용 커피 메이커라고 추천하는 말만 믿고 질렀다. 성선배께서 여간 마음에 들어 하시지 않는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12월31일/목

이젠 이별할 때. 성우제 선배댁과, 그리고 늘 그러하듯 다사다난했던 2015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