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얘기

TGIF - 일상 스케치


금요일은 '팀버 트레인 데이'다. 나한테가 아니라 룸메이트인 데이비드에게. 그는 아이티 보안 관리자로 정보 프라이버시 관리자인 나와 한 방을 쓴다. 창밖으로 그랜빌 광장과 밴쿠버 항구, 그리고 버라드 만(灣)과 그 너머 북해안이 보이는, 전망 좋은 3층 사무실이다.


팀버 트레인은 사무실에서 코르도바 거리를 따라 도보로 7, 8분 걸어가면 나오는 소담한 커피 전문점이다. 거기에서 내려주는 아메리카노 커피와 스콘 (작고 동그란 빵의 일종)이, 데이비드의 말에 따르면 '밴쿠버 최고'다. 다만 스타벅스 사이즈로 치면 톨, 혹은 중간이나 그보다 조금 못 미치는 크기의 커피가 3달러나 하기 때문에 매일 마시긴 다소 부담스러워서 평소에는 사내에 설치된 큐릭 (Keurig) 캡슐형 커피 머신을 이용한다. 그래서 금요일에만 간다. 하여 '팀버 트레인 데이'다. 나는 매일 집에서 커피를 내려 가기 때문에 굳이 갈 필요가 없지만 일종의 동료애를 발휘해서, 또는 분위기를 맞춰주려 함께 간다. 



금요일이면 모두가 행복하다.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어도, 'but it's Friday, isn't it? Yeah!'라거나, 'thank god, it's Friday!'라며 안도하고 위로한다. 월요일에 만나서 인사치레로 주말 잘 지냈니, 라고 물으면 너나없이 'too short...'이라고 말할테고... 


직장은 미친 듯이 돌아간다. 그 미친 듯한 페이스로 돌아가는 것이 알맹이가 있고 뭔가 의미가 있는 일이면 좀 좋으랴! 열에 여덟 아홉은 관료주의적 비효율과 불통, 또는 (특히 윗선의) 오독과 게으름에서 나온, 대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에피소드나 사건, 업무 부담, 스트레스다. 예를 들면 브리핑노트 형식이 마음에 안 든다. A식 말고 B식으로 다시 작성해라, 라거나, 어젠다 아이템이 넘쳐서 (일주일 넘게 준비한) 너의 아이템은 다음 주 (또는 다음 달)로 연기 됐다, 라거나, 회의를 잡아놓고 30분쯤 기다리게 한 다음, 급한 다른 회의가 생겼다며 취소하거나 뭐 그런 식... 그때 나나 동료들이 절감하는 것은, 뻔한 스트레스와 짜증을 제외한다면, '권력을 가진 이가 시간과 어젠다를 지배한다'라는 평범한 진실. 남을 기다리게 하는 자가 권력을 쥔 자다. 권력이 없는 자는 그런 자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도 지난 목요일과 이번 목요일, 두 차례에 걸쳐 '간호사 교육 포럼'에 참석해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패널 토론을 벌인 일은, 내 일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 먹구름 낀 날씨의 작은 햇살이었다. 각각 6, 70명이 참석한 자리에서 간호사들이 현장에서 느끼고 체험하고 궁금해 하는 주제 ('Circle of care')를 다뤘고, 그래서 질문과 추가 트레이닝 요청도 많이 받았다. '진료 서클'이나 '진료 관련 담당자들'쯤으로 이해할 수 있을 'Circle of care'는, 한 개인/환자를 진료하는 데 직접 관여하는 의사, 간호사, 전문의, 사회복지사 등은 해당 환자에 대한 진료와 치료라는 동일한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일이 해당 환자로부터 개인 의료 정보를 수집해도 되겠느냐는 명시적인 동의를 구하지 않고도, 그 환자의 개인 의료 정보를 서로 공유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말은 쉽지만 실제 상황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하기 때문에 종종 문제가 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일주일 중 가장 힘든 때는 월요일과 금요일이다. 월요일에는 주말 동안 늘어지게 쉰 두뇌와 몸이 갑자기 빨라진 속도에 미처 적응하지 못해 허덕인다. 금요일에는 주말에 대한 기대 때문에 몸은 여기 있으되 마음은 자꾸 지향없이 어딘가로 도망친다. 이른바 '유체이탈'이다. 그래서 중요한 회의나 업무도 대개는 화수목 사흘 중 어느 하루에 진행된다. 여기도, 처음 한두 해는 그랬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일이 금요일에 왕창 몰리기 시작했다. 회의도 오후까지 잡히고, 없던 일이 금요일 오후에 떨어지곤 했다. 데이비드의 경우 이런저런 회의에 나가느라 오후 세 시까지 자기 자리에 앉지를 못했다. 나는 그래도 좀 나은 형편이어서 오후에만 회의가 잡혀 있었다.



오늘 우연히 듣게 된 올리비에 메시앙의, 퍽 인상 깊은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