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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사이클링

4월 만우절 하프마라톤

4월1일 만우절은 이미 지나갔지만 '만우달[月]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봐야 하나? 오늘(4월12일) 깁슨스에서 열린 하프마라톤 대회 'BMO April Fool's Run'을 떠올리며 든 생각이다. BMO는 '몬트리올 은행'의 줄임말로, 대회 후원사다. 깁슨스 (Gibsons)는 밴쿠버에서는 북서쪽이지만 BC 주 전체로 보면 여전히 한참 남쪽, 조지아 해협 (Strait of Georgia)에 위치한 인구 4천여 명 수준의 바닷가 마을이다. 섬은 아니지만 따로 육로가 없어 말발굽 만 (Horseshoe Bay)에서 페리를 타고 40분 가야 한다. 그 바닷가로 해변이 좋아 여름에 여행객들이 많이 몰려든다. 이름조차 어째 햇볕이 더없이 풍요롭게 내리쬘 것 같은 '선샤인 코스트' (Sunshine Coast)다 (이 사이트의 사진만 슬쩍 엿봐도 한숨이 절로 나올 정도로 풍광이 기막히다).


올해로 벌써 38회를 맞은 만우절 하프마라톤 대회는 깁슨스에서 시셸트 (Sechelt)까지 가는 일방형 코스이다. 꼭 그럴 의도는 아니겠지만 지도를 보면 선샤인 코스트를 따라 뛰게 하면서 "어때, 풍경 좋지? 나중에 또 놀러와"라고 슬쩍 옆구리를 찌르는 의도가 느껴진다. 



본래 1박2일로 예정했고 깁슨스의 호텔까지 예약했었지만 막판에 사정이 생겨 예약을 취소하고 혼자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했다. 집에서 호스슈 베이, 그리고 깁슨스의 페리 터미널부터 행사장까지는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첫 배로 가야 제 시간에 닿을 수 있는데, 집에서 호스슈 베이까지는, 구글 지도에 따르면 자전거로 1시간30분이 소요된다. 첫 배가 7시30분이고, 출발 30분 전에 승선을 완료하니까 늦어도 7시까지는 가야 한다. 그렇다면 집에서 5시30분에는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아이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그것도 일요일에, 그렇게 일찍 일어난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밤새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까지 내린다던데... 그냥 뛰지 말아버릴까?' 


그러다 그냥 가보기로 했다. 5시20분쯤 집을 나서, 열심히 페달을 밟았더니 구글 지도의 예상치보다 30분 가까이 단축된 시간에 호스슈 베이에 닿았다. 편도 거리는 26 km. 위 사진은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 배를 기다리는 중. 차를 몰고 온 사람들과 달리 몸만 가는 사람이나 자전거로 가는 사람은 먼저 타게 하고 먼저 내리게 해준다.




페리 터미널에서 달리기 행사가 열리는 '깁슨스 커뮤니티 센터'로 가는 중이다. 거리는 6 km 남짓.



커뮤니티 센터. 윗도리만 갈아 입고, 아니 갈아입었다기보다는 재킷만 벗어서 가방에 넣고, 사이클링 신발을 러닝화 - 내가 가장 즐겨 신는 사코니 킨바라 - 로 갈아신고, 가방을 주최측에 맡긴 뒤 ('gear check'이라고 한다), 서둘러 몸을 풀고, 번호표를 앞에 붙이고 출발지점으로 갔다. 생각보다 시간이 다소 더 걸려서, 출발 시간까지 10분 정도밖에 여유가 없었다.



출발선. 다른 행사와 달리 여기에서는 아나운서의 공지 사항도 없었고, 캐나다 국가 제창도 없었고, 심지어 출발 시간 카운트다운도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지만 거의 3, 2, 1, 출발! 수준. 너무 검소한 출발 세리모니가 아니었나 싶었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코스는 오르락 내리락 참 바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오르막길은 아래 지도, 특히 해발고도를 보여주는 그림에서 받은, '공포심'에 가까운 비탈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체적으로 내리막이 더 많아서 생각보다 기록이 좋게 나왔다. 처음에는 마일당 8분 정도로 뛰자고 했는데, 막상 뛰어보니 7분대가 나왔다. 그렇다고 힘들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래? 그러면 계속 이 페이스로... 


위 해발고도 그림에서 보듯, 코스 막판에 놓인 비탈이 가장 힘들었다. 올라도 올라도 내리막길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꽤 힘들었다. 하지만 걱정했던 정도로 심한 비탈은 아니었고, 예상했던 정도로 힘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내리막길에서 페이스를 조절하기가 힘들었다. 내리막이라 가속은 붙는데, 이러다 허벅지 근육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속도를 늦추느라 애를 먹었다.



피니시 라인이 있는 시셸트의 '미션 파크'에 닿았다. 대회 마스코트인 'BMO 곰'이 보인다.



그 공원의 다른 쪽이 이런 바다 풍경이다. 왜 캐나다 사람들이 시셸트를 그토록 좋아하는지, 여름이면 꼭 놀러가고 싶어하는지 알겠다. 북미 사람들의 해변 사랑은 좀 유별난 데가 있다. 나는 그저, 어 괜찮은데? 하는 수준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이런 풍경을 보면 두 눈에 별이 그려진다. 




카메라를 울타리 위에 놓고 타이머로 찍었다. 다른 사람한테 찍어달라고 하면 될텐데, 그게 잘 안 된다. 



완주자 기념 메달. 소박하고 약간 코믹하다.



일방 코스여서 뛴 다음에는 이렇게 스쿨버스로 커뮤니티 센터까지 태워다 준다. 나는 여기에 세워둔 자전거로 다시 페리 터미널까지 가서 노쓰밴으로 돌아왔다. 집까지는 터미널에 나와준 아내 덕택에 편히 왔다. 그래도 오늘은 꽤 무리를 했다. 자전거 라이딩 40 km, 하프 마라톤 21 km... 이번 한 주는 좀 쉴 계획이다. 때로는 쉬는 것도 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