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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세월호

세월호 사태 이후 벌써 1년이 지났다고 한다. '사태'라고 일컫는 게 과연 온당한지도 잘 모르겠다. 비극, 참사, 참변... 무슨 표현을 쓰든, '세월호' 석 자가 갖는 무게는 실로 크다. 한국 사회가, 한국 국민 전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업보라는 생각이다. 세월호 희생자들, 그 뒤에 남은 희생자들의 가족들, 친지들, 친구들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기 - 너무나 많은 경우는 의도적으로 '않았기' - 때문이다. 그 죄업을 다 어떻게 감당하려고, 아직도 세월호를 정치적 도구로, 정말 믿기 어렵게도 심지어 좌우 이념의 무기로 쓴, 쓰는, 쓰려는 자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인간'이나 '사람'이라는 표현이 맞지 않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고 하자니 애먼 수(獸, 짐승)들에게 미안할 지경이다.


내 바로 위의 누이가 젊은 나이에 비명에 갔다. 누이의 주검이 발견된 곳은 청주로 들어오는 길목 어디쯤의 숲이다. 내 어머니는, 그 길목을 버스가 지날 무렵에는 눈을 감으신다. 차마 밖을 바라보지 못하신다. 내가 이민 오기 전까지도 그랬다. 혹시 지금도, 어쩌다 그 부근을 지날 때는 여전히 눈을 감으실까? 


아마 그럴 것이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어버이의 가슴에 묻는다는 말,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자식을 둬 보니 알겠다. 저리게 느끼겠다. 심지어 영화를 보는데도, '반지의 제왕' 2편에서 로한의 세오덴 (Theoden) 왕이, 사악한 마법사 사루만의 주술에서 풀려난 뒤 자신의 아들 세오드레드가 죽은 사실을 알고 오열하는데 나도 따라서 눈물이 났다.


"No parent should have to bury their child." (어떤 부모도 자기 자식을 먼저 묻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거요).


그래, 부모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 햇살처럼 청명한 미래를 앞둔 아이들이 몇백 명이나 죽은 그 형언할 수 없는 참극 앞에서, 부모들의 무너진 가슴을 쓸어내려 줄 생각은 않고 잊으라, 잊으라, 강요하는 것들이 있다 ('자'도 아니다. '놈' 자격도 없는 것들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진실을 규명해 주지 못하고, 아니 감추고 덮기에만 급급하고, 문제를 바로잡기는커녕 희생자의 부모들을 몰아세우면서, 어떻게 잊으라, 잊으라고만 할 수 있는가? 게다가 국론 운운까지? 이것들이 정말 제 정신인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더니, 한국 사회의 4월이야말로 끔찍할 정도로 잔인한 달이 되고 말았다. 세월호의 비극이 계속 현재성을 갖는 한, 그 잔인함은 끝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