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속도가 더딜수록 길에 대한 느낌도 더 각별하고, 제각기 다른 길의 매력도 더욱 절실히 감지하게 되는 것 같다. 차로 달릴 때보다는 자전거로 달릴 때, 자전거를 탈 때보다는 뛸 때... 일요일인 오늘은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날인데, 지난 몇 주 동안 15-16 마일을 넘어선 적이 없다. 피로하고 버겁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아마 자전거 타기의 여파가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다. 오늘은 달리는 코스를, 여느 때보다 유독 더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왼쪽, 오른쪽, 유턴... 그렇게 만난 길들만 모아 봤다.
집에서 나와 린 계곡 트레일을 타고 내려와 - 그 사진은 그간 많이 찍어서 따로 담지 않았다 - 바다와 가까운 차도로 방향을 잡았다. 여기는 'Cotton Road'라는 데다. 최근 길을 정비해 자전거 전용 도로를 그럴듯하게 조성해 놓았다. 이 신호등 버튼에도 자전거 표시가 돼 있다.
그 코튼 로드 위로 고가가 가로지른다. 여길 건너서 공원을 통과하는 트레일을 타거나 바다와 가장 가까운 차도로 나 있는 자전거 도로를 탈 수도 있다. 바다와 가장 가깝다고 하지만, 바다와 도로 사이에 화물을 싣고 내리는 큰 역과 석탄 저장고가 자리잡고 있어서 일반인은 바다로 곧장 접근할 수가 없다.
바로 이런 양상이다. 맨 왼쪽부터 인도, 자전거 전용선, 차도, 다시 자전거 전용 도로, 차도, 그리고 그 옆으로 복수 철로가 놓인 기차 역과 창고들이다.
고가를 건너면 이렇게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다시 차도로 내려가는 길, 오른쪽 오르막 길은 보행자와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트레일이다.
고가에 내려다본 장면. 차선 양 옆으로 자전거 도로가 조성되어 있다. 이 부근의 풍경을 압도하는 것은, 그러나 다국적 곡물 회사인 카길의 공장들이다.
왼쪽이 벤저민 시월(Benjamin Sewell) 트레일, 오른쪽이 가장 낮은 지대로 나 있는 간선 도로.
이제 4번 가로 방향을 잡았다. 자전거로 통근할 때 타는 길인데, 체스터필드 애비뉴와 만나는 지점의 전망이 썩 좋다. 사진에서처럼 밴쿠버의 워터프런트가 잘 보인다. 돛단배를 형상화한 저 건물이 밴쿠버 컨퍼런스 센터의 일부인 '캐나다 플레이스'이다.
4번 가에서 산 쪽으로 세 블럭을 올라가면 또 다른 간선 도로인 '키스 로드' (Keith Rd)가 나온다. 그 길을 따라가면 계곡들과 만나는데 이건 그 중 한 트레일이다.
이 트레일을 따라 올라가면 1번 고속도로와 만난다. 명색이 '고속도로'인 만큼 그 도로 위를 뛰거나 자전거로 도로를 탈 수는 없게 돼 있다.
하지만 그 1번 고속도로의 한 옆으로 이렇게 좁지만 안전한 보행자/자전거 전용 트레일이 나 있다. 콘크리트로 차도와 구분해 놓았다. 별로 활발히 이용되는 길은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 거칠거칠한 노면 상태로 확인할 수 있다.
1번 고속도로와 평행으로 달리는 보행자/자전거 전용 트레일.
노쓰 밴쿠버의 주요 계곡들 중 하나인 '모스키토 크리크'. 이름은 '모기 계곡'인데, 사실 여름에도 별로 모기가 많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이번 여름에는 어떨지...
1번 고속도로를 따라 달려 내려가는 중에 바라본 풍경. 자동차 소음으로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맛볼 수는 없지만 교통 사고를 염려할 필요는 별로 없는 길이다.
그런 콘크리트 트레일을 달리다 보면 어느 지점에선가 이렇게 작은 틈새를 만난다. 이게 어디로 이어지는가 살짝 들여다 보면, 아래 사진처럼 평화로워 보이는 동네로 들어서는 길임을 알게 된다.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허용된 지역이나 통로가 생각보다 많아서 마음에 들었다. 오르내리는 비탈이, 자전거를 타기에 쉽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이런 길들이 곳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괜히 마음이 뿌듯하다. 자전거를 이용해도 어디든 갈 수 있겠구나!
자전거 전용 도로 표지. 앞에 언급한 대로, 이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을 노면 상태로 알 수 있다. 교차로가 나온다는 경고는 위에 소개한, 동네로 연결된 소로를 가리킨다.
어느 길이나 끝이 나게 돼 있다. 혹은 다른 길로 갈라지거나 바뀌게 돼 있다. 1번 고속도로와 평행으로 달리는 길의 끝은 고속도로 위를 가로지는 이런 나선형 다리이다.
이 건물의 정체를 모르겠다. 간판도 없다. '글로리아 데이'라는 이름의 루터파 교회의 이웃인데, 무슨 커뮤니티 센터 같기도 하고... 아무튼 건물을 두른 벚나무들이 퍽 아름다웠다.
노쓰밴은 비탈 풍년이다. 비탈이 정말 많다. 오늘은 코스를 잘못 잡아 유독 더 많은 비탈을 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비탈을 타면 좋은 점이 하나 있는데, 사진에서처럼 주변 풍경을 조망하기가 좋다는 점이다. 이 동네도 마찬가지. 평화로운 시골 분위기에 봄 기운이 가득했다.
오늘 만난 길/트레일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터널이었다. 1번 고속도로 아래로 연결된, 보행자와 자전거 전용 횡단 통로였다. 이런 길이 있는 줄 오늘 처음 알았다.
그 터널 안이다. 자전거를 타고 건너지 말라고 이렇게 장애물을 꽂아 놓았다. 내려서 끌고 가라는 메시지다. 퍽 흥미로운 터널이었다. 아마 주변 주민들 말고는 거의 아는 사람조차 없는 통로일 것이다.
오늘은 카필라노 (Capilano) 로드까지만 갔다가 되돌아왔다. 터널을 타고 길을 건너면 이 길을 따라 그라우스 산 (Grouse Mt.)으로 이르는 도로가 나온다.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 키스 로드에서 내려다본 노쓰밴 바닷가와, 바다 건너 밴쿠버 풍경.
돌아오는 길은 반갑게도 내리막 위주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지. 완만하게 커브를 도는 내리막길 주변에 꽃들이 피어 있다. 봄이다.
곧장 집으로 향하면 목표로 잡은 거리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모스키토 계곡을 만나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르막은 이제 그만 탔으면 하는 열망이 컸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누가 시키는 건 아니지만, 늘 스스로 몰아부치는 힘이 가장 강력한 법이다.
1번 고속도로 옆으로 조성된 보행자/자전거 전용 도로로 올라가는 길을 다시 만났다.
이 고가는 앞에 소개한 터널과는 반대로, 1번 고속도로 '위'로 - 아래가 아니라 - 조성돼 있다. 자전거와 보행자만 다닐 수 있는 길이다.
이런 길, 저런 길, 참 다종다양하다. 하지만 어쨌든 길이 있으면 좋다.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이 길 역시 자주 이용되는 트레일로 보이지는 않는다.
린 밸리의 한 주택가 옆에 마련된 인공 연못. 제법 그럴듯하다. 연못 주위로 산책로가 나 있다. 이 길을 뛰지는 않고, 지나가면서 아래로 슬쩍 조망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