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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누가 공무원을 '철밥통'이라고 했던가?

내가 소속된 국 전체가 통째로 없어졌다. "disbanded." 부서장인 차관보는 발표일인 월요일 당일부로 '다른 기회를 추구하기로' 했다고, 차관이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말했다. "pursue a different opportunity." 말이 좋지 잘랐단 말이다. 당연히 그 차관보의 직속들도 다 사라졌다. 몇몇 부서는 부서장 이하 팀원 전체가 당일 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온타리오주정부에 꾹 눌러붙어 있을 걸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렇게 몇천km를 날아왔는지 새삼 후회스러웠다. 아직 자리도 제대로 잡기 전에 속절없이 떨려나나 보다, 하는 두려움과 불안감과 막막함이 밀려 왔다. 아내와 아이들 얼굴도 눈에 밟혔다. 이런 조직 개편이 있을 때마다 'transformation'이라는 그럴듯한 말이 튀어나오곤 하는데,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Gregor Samsa가 떠오른다. 

사실 형편은 온타리오주가 몇 배나 더 나쁘다. 앨버타주의 올해 예산적자는 40억달러(약 4조원) 정도. 내년 20억달러선, 후년에 플러스로 돌아서겠다는 게 주정부의 목표다. 온타리오주정부는 어떤가? 올해 예산적자는 약 250억달러 (약 26조원), 내년에는 더 불어서 400억달러 대가 될 거라고 한다. 그래도 사람 자른다는 이야기도 없고, 임금 동결 이야기도 없다. 잠잠하다. 도대체 무슨 X배짱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앨버타주와 같은 '도끼 날아다니는' 분위기는 아니다. 

내가 소속된 팀은 다른 국으로 이관되면서 살아남았다. 개개인의 이름이 일일이 다 적힌, 지독하게 자세한 조직도에 내 이름도 들어 있다. 일단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평소에는 입이 닳도록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소통이 중요하다, 라고 노래를 부르지만, 막상 이런 대목에서는 소통이고 나발이고 없다. 그냥 위에서 아래로, 당신이 하던 프로젝트 중단하기로 했다, 라거나, 당신이 소속된 부서를 해체하기로 했다, 라고 하면 그만이다. 

문득 세상이 참 싫어진다. 내가 있는 자리가 싫고, 진실을 호도하는 위선과 가식의 말이 듣기 싫다. 아무리 아 다르고 어 다르다지만 똥을 황금빛 고체라고 부른다고 똥이 황금이 되는가? 

내가 소속된 교육부는 지난 2월초의 2010 회계년도 예산 계획에서 지난해보다 더 늘어난 예산을 배정받았다. 우선 순위에서 보건복지부 다음으로 중요한 부서라고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프로젝트가 취소되고, 부서가 사라졌다. 

우선 순위에서 밀리고 예산이 삭감된 부서는 더 살벌한 모양이다. 모 부처에서는 '10분 안에 책상을 정리하라'라는 통보가 내려갔다고 한다. 몇 층 아래 부서는 30여명이 하루아침에 짐을 싸라는 지침을 받았다고 한다. 흉흉하고 흉흉했다.

3월1일 월요일 아침, 비디오를 통한 차관의 조직 개편 발표, 그 뒤를 이은 이메일 메모, 다시 그 뒤를 이은 차관보, 국장 들의 메모...이른바 '먼데이 쇼크'로 한 주 내내 뒤숭숭했다. 어제와 오늘, 앨버타대학에서 강의를 듣는데도 머릿속은 강의실과 사무실을 오락가락 했다.

누가 공무원을 '철밥통'이라고 했던가? 

날씨는 완연히 풀려 봄 기운이지만 마음속은 여전히 엄동설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