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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난

시각, 말 그대로 '보는 각도'를 조금만 바꾸어도 세상이 사뭇 다르게, 혹은 새롭게 보일 때가 많다. 그 때 느끼는 놀라움은 퍽 신선하면서도 반갑다. Steve Han 박사께서 과분하게도 나를 페이스북을 통한 (태그) #책장난 의 상대 중 하나로 지목해 주신 덕택에 오늘 다시 그런 신선한 발견과, 깨달음과 만날 수 있었다. 아하, 이런 재미가 있구나. 이런 장난이라면 얼마든지 더 해보고 싶다, 라고 생각한다. 한박사님,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책장난을 잇기 위해 돌연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는 수고를 들였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이 페이지에 이런 내용이 있었구나!'라는 놀라움, 이어, '이게 지금의 내 운명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다소 미신스럽지만 그럼에도 믿고 싶은 원망...  네 권을 골랐지만 페이스북에는 한 권만 하라는 규칙을 존중해 근래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 1권 (4월-6월)의 한 페이지, 내 나이에 해당하는 페이지의 글만 옮겼다. 

 

(주인공 덴고의 이야기) ‘소설가가 되기를 자신이 정말 원하는지, 그건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소설가로서의 재능이 과연 있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다만 자신은 날마다 소설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걸 알 뿐이다. 글을 쓰는 일은 그에게 숨쉬기와 같은 일이다.' ...


그리고 #책장난을 이어갈 분들로 내가 지목하고 싶은 분들은 끊임없이 좋은 글과 생각을 써주시는 성우제 선배, 독서량이 나보다 열 배는 더 많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내 Youngshin Kim, 그리고 ¬¬-기발하고 전복적인 사고로 나를 깜짝깜짝 놀래키는 Songwon Kim 선배...라고 썼다. 


하루키의 1Q84 외에 내가 골라낸 책 세 권은 다음과 같다. 



통혁당 사건 무기수 신영복 편지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햇빛출판사, 1988년 출간, 3,500원)

p. 48: (감옥 근처에 사는 ‘쨔보’라는 인도네시아 원산의 자그마한 닭 한 쌍에 대한 이야기) ‘토종 장닭의 길고 우렁찬 목소리에 비하면 아무래도 짧고 가늘어 인공이 가해진 듯한 그 생김생김과 더불어 불구(不具)에서 받는 애처로움 같은 것을 자아내기도 합니다만 이역(異域)의 좁은 닭장 속에서도 제 본분을 저버리지 않고 꾸준히 새벽을 외치는 충직함은 언제부터인가 나의 가슴 한쪽에 그를 위한 자리를 비워두고 기다리게 합니다.’



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녹색평론사, 1997년 2쇄 출간, 5,000원)

 p. 48: ‘자기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것은 종교상에는 아무 뜻도 없다. 인간다운 삶은 종교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가 있기 전에, 모든 인간에게 하느님이 있었고 신심(信心)이 있었다. 기독교의 어머니는 유대교였고 유대교의 어머니는 인간이었다. 하느님은 그 인간의 마음속에 있었지 외부에서 숭배받는 우상이 아니었다.’



김훈 평론집 – 선택과 옹호 (미학사, 1991년 출간, 3,800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훈의 글을 접하는 행복!’이라는 글이 책 맨 뒷장에 씌어 있다. 하하. 

p. 48: 정현종 시인의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에 대한 김훈의 평석 –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은 한줄기의 바쁘고도 신들린 신바람이다. 이 신바람은 멀지 않아 죽어야 하리라는 유한의 운명 앞에서 그 운명과 더불어 함께 가는 신바람이다. 그 신바람은 희망만도 아니고 절망만도 아닌 신바람이다. 그 신바람은 절망의 무게까지를 감당해내는 신바람이다. 시인이 제시하는 그 바쁨의 정황들은 ‘플라스틱 악기를 부- 부-‘ 부는 아이거나 ‘보따리 속에서 쑥쑥 자라고 있는 파’이거나 ‘비닐 보따리’ 속에서 막무가내로 피어나는 밤꽃 같은 것들이다. 그것이 그 바쁜 신바람의 근거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