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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사이클링

시애틀 마라톤을 포기하다


이번 일요일로 예정된 시애틀 마라톤을 뛰지 않기로 했다.아예 시애틀 여행 자체를 취소하기로 했다. 서둘러 토요일과 일요일 호텔 예약을 취소했다. 일요일 분은 따로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데, 토요일 분은 모르겠다. 금요일(오늘) 오후 6시 전에 취소해야 벌금이 없는데, 그보다 40분쯤 지난 시각에 취소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애틀 마라톤에 등록해 놓고, 뛰는 날이 가까워 올수록 불안했고 부담스러웠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제외한다면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분주한 시기일 추수감사절이 낀 주말에 마라톤이 열린다는 사실을, 등록할 당시에는 미처 몰랐다. 알았을 수도 있지만 그게 내 주의를 크게 끌지 않았다. 그런데 날이 부득부득 다가올수록 엄청난 교통 체증과, 국경을 통과할 때 감내해야 할 지루하고 긴 기다림이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 '미친' 블랙 프라이데이의 분주함이 더욱 심각하게 다가왔다. 


어쨌든 토요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가능한 한 일찍 국경을 통과한다면, 아무리 블랙 프라이데이...를 넘어 '블랙 프라이데이 위크'의 인파와 교통 체증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업화가 자심해질수록 '대폭 할인'을 내세운 쇼핑 이벤트는 점점 더 길어진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박싱데이'도 '박싱 위크'로 바뀐 지 오래다). 그러나 금요일 저녁이 되면서 이리저리 일이 꼬였다. 자동차의 브레이크 패드를 교체한 다음에는 100-150 km를 달리고 나서 연결 부위를 다시 죄어 주는 '리토크' (re-torque)를 해야 하는데, 그걸 까먹었고 (카센터들은 이미 문을 닫았고, 내일 새벽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터였다), 밤부터 비가 눈으로 바뀌어 도로 사정이 크게 악화될 것이라는 일기 예보가 나왔다. 휘발유를 채우러 근처 주유소로 가는데 벌써 눈 섞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부귀 영화를 보겠다고 이런 상황에 시애틀까지 달려가서 돈 쓰고 마라톤을 하랴! 그래 이것도 일종의 사인이려니 생각하고, 그만두자. 


꼭 교통 상황과 시기 때문에 시애틀 마라톤이 내키지 않은 것만은 아니었다. 내 몸의 신진 대사가, 11월 이후부터는 마라톤을 뛰는 게 적합하지 않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똑같은 양과 강도의 훈련을 해도 몸이 받는 부담이 더 컸고, 관절 부위도 뻣뻣한 게 10월까지의 상황과는 많이 달랐다. 마라톤 대회가 늦봄-초여름과 가을에 왕창 몰린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우리 몸의 기능이, 겨울이 다가오면서는 점점 더 느려지는 게 분명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겨울이 아닌 건 아니니까... 게다가, 시애틀도 밴쿠버와 비슷해서, 10월 말부터는 비의 계절이었다. 비, 비, 비... 다행히 이번 일요일은 맑으리라는 예보지만, 그렇게 맑을 때보다 흐리고 비 내릴 때가 더 많을 듯했다. 


마라톤을 등록만 해놓고 뛰지 않은 게 이번으로 두 번째다. 작년에는 밴쿠버에서 일자리를 구해 이주하는 시기와 맞물리는 바람에 10월의 오카나간 마라톤을 등록만 해놓고 못 뛰었다.올해는 시애틀 마라톤이다. 전문가들이 권하는 대로, 마라톤은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앞으로는 좀더 신중하게, 어느 대회에 나갈 것인지, 나갈 형편은 될지 주변 정황과 내 상황을 잘 따져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내년 10월에는 오카나간 마라톤을 꼭 뛰어볼 생각이다). 



뒤에... 새벽녘... 2시50분쯤. 동준이가 또 발작을 일으켰다.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동준이가 평소 쓰던 화장실이 수리 중이어서 안방에 딸린 화장실을 써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모를 뻔했다. 그간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꾸준히 복용해 왔는데... 그런데도 효과가 없었던 것일까? 막막하고, 먹먹하다...


밤새 눈이 내렸다. 밴쿠버의 기준으로 보면 제법 많은 눈이다. 날씨 웹사이트를 보니 현재 기온도 영하 3도로 꽤 춥다. 에드먼튼의 영하 30도 (체감온도 40도)에 견주면 하늘과 땅 같은 차이지만, 역시 밴쿠버의 기준으로 보면 '혹한'급이다. 겨울이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