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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사이클링

이 길이냐 저 길이냐...이 길이나 저 길이나...

"I hate hills...there are too many hills!"


두어달 전 밴쿠버에서 노쓰 밴쿠버로 주거지를 옮긴 직장 동료 존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는 스탠리 공원 근처에서 여러 해 살았고, 주로 공원 트레일을 달렸으며, 따라서 비탈 오르느라 진땀 빼는 일은 없었는데, 노쓰 밴으로 온 이후 올라야 할 언덕이 너무 많아 달리기에 대한 열의마저 잃어버릴 지경이 됐다고 그는 말했다. 


나도 언덕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존처럼 'hate'하는 수준은 아니다. 대개는 이것도 연습이다, 언덕 올라가는 연습 하기에 노쓰 밴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으랴, 하며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는 쪽이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면서는 다르다. 달릴 때보다 언덕이 더 저리게 실감난다고 할까? 아니면 다리로 뛰어 올라가는 것보다 페달을 밟아 올라가는 게 더 힘들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노쓰 밴 곳곳에 도사린 언덕의 존재감이, 자전거를 타면서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집과 직장을 오가는 길은 두 가지다. 서쪽으로 달려 라이온스 게이트 (Lions Gate) 다리를 타고 스탠리 공원을 가로질러 오가는 길이 그 하나이고, 집에서 마치 Y축 그리듯 아래로 고스란히 내려와 세컨드 내로우즈 (Second Narrows) 다리를 건너 이스트 밴쿠버 밴쿠버 지역을 거쳐서 오가는 길이 다른 하나다. 거리 상으로는 후자가 3km 남짓 더 짧은데 노면 상태가 좋지 않고, 무엇보다 다리를 건너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한쪽 보도를 공사한답시고 막아놓아 한쪽 보도를 오가는 사람들이 공유해야 하는데, 워낙 좁아서 자전거 두 대가 동시에 달려서 교차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남쪽에서 북쪽으로 건너는 사람이 양보를 하라고 표지판이 붙어 있다. 양보하는 쪽은 자전거를 세우고 가장자리로 바짝 붙어 서야 다른 쪽에서 자전거를 내리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 게다가 다리의 노면 상태 또한 라이온스 게이트 다리에 비해 훨씬 더 울퉁불퉁하고, 양쪽 보호대의 높이도 더 낫다. 지금 공사중인 보도를 다 개보수 하고 나면 지금 쓰이는 곳을 다듬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1km 남짓한 다리를 건너는 일이 - 건넌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등산하는 기분이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는 길의 오르막이 더 길다. 



몇 주간 쉼 없이 내리던 비가 - 특히 어제 비는 엄청났다, 24시간 동안 1m 가까운 비가 쏟아졌단다 - 모처럼 그쳐서, 집으로 오는 길을 오랜만에 라이온스 게이트 다리 쪽으로 잡았다 (위). 길이 쾌적하다면 2, 3km 더 돌아가더라도 자주 이 쪽을 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길 자체는 더 나았다. 노면도 더 잘 포장되어 있고... 그러나 비탈은 어쩔 수 없었다. 이 길을 타도 한참을 올라가야 하고, 저 길을 타도 한참을 등산해야 했다. 비교적 평탄한 4번 도로를 타고 가면 길고 오래 비탈을 오르지는 않지만 1km 쯤 되는, 가파른 길을 - 1단으로 놓고 밟아도 힘들다 (엄살?) - 통과해야 한다. 그러니 어느 길을 타든 피해갈 수 없는 게 비탈이었다. 게다가 좀 완만하다 싶은 길을 탔더니 편도만 16km가 넘게 나왔다. 총 소요 시간은 49분49초. 이 정도로 에둘러 다닐 만한 가치는 없겠다는 결론. 



위 지도와 해발 고도는 오늘 아침 출근길의 경로 정보이다. 맨 왼쪽의 내리막은 집에서 마운틴 하이웨이를 타고 내려오는 길, 12:30이라고 적힌 부분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바로 세컨드 내로우즈 다리를 건넌 기록이다. 이후는 대체로 평탄했다. 노면이 불규칙해 털털거리는 것만 감수하면, 총 거리도 12km 안팎이다. 총 소요 시간은 38분 정도. 그래, 결국은 이 길이다. 자꾸만 타다 보면, 나중에 내가 저런 엄살을 떨었구나, 하고 혀를 끌끌 차게 될까?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