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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알밭

가깝고도 먼 밴쿠버 여름의 짙은 녹음을 보여주는 노쓰사스카체완 강변과 그 너머 알버타 대학 캠퍼스. 못가겠노라 응답 준 게 지난 금요일이었는데, 며칠 지난 지금도 마음 한 구석은 헛헛하다. 아직도 혼자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그냥 갈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날아간 화살인 것을... 지난 달, 밴쿠버에 있는 한 공기업의 프라이버시 매니저 자리에 지원했다. 노트북 영상과 병행한 전화 인터뷰를 거쳤고, 곧바로 신원 조회와 추천인 세 명의 이름과 연락처를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인터뷰를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나로서는 다소 의외였지만 마달 이유는 없었다. 처음 제공한 추천인들 중 두 명이 공교롭게 휴가를 떠나는 바람에 다른 추천인을 구하느라 .. 더보기
물난리 어렸을 때 본 만화가 종종 떠오른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고, 작가가 고우영이었는지 이두호였는지, 아니면 다른 누구였는지도 그저 아득할 따름인데, 초능력을 가진 세 남자 - 형제 사이였던가? - 의 이야기였다. 이들은 각각 바람, 불, 그리고 물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이는 결국 물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올해 유독 그 생각이 자주 났다. 물의 위력, 아니 공포를 느끼게 하는 사건 사고가 유난히 많았던 탓이다. 지난 6월에는 알버타주 남부가 사상 초유의 물난리로 큰 낭패를 보았다. 미국과 접경한 소읍 하이리버는 거의 동네 전체가 물속에 잠겼고,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로키산맥 근처의 캔모어와 밴프도 홍수로 큰 피해를 당했다. 그런가 하면 알버타주에서 가장 큰 도시 .. 더보기
성준이의 '맥주 공룡' 어린이들은 모두가 예술가다, 라는 말을 어디선가 본/들은 기억이 난다. 성준이를 보면서 문득 문득 그것이 얼마나 옳은 말인가를 실감한다. 그와 동시에, 그런 예술가적 기질과 열정과 호기심과 에너지가, 도대체 언제 어느 순간에 사라지고 만 것일까, 스스로를 돌아보게도 된다. 그리고 성준이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천진한 호기심과 창의력, 열정을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그리고 부모로서 그런 꿈과 호기심이 꺾이지 않도록 배려해줘야겠다고 다시 다짐한다. 어젯밤엔 갑자기 빈 맥주 캔으로 공룡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벌써 아홉 시가 다 된 시각이어서 너무 늦었으니 내일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하니까 아니란다. 오늘 중에 꼭 해야겠단다. 대체 왜 갑자기 공룡이냐고 물었더니 '캘빈과 홉스'에서 캘빈이 공룡 만드는.. 더보기
'퍼시픽 림' 로봇, 드디어 도착하다 성준이가 고대해 마지 않았던 영화 '퍼시픽 림' (Pacific Rim) 속의 로봇 '집시 데인저'(Gypsy Danger)와 '크림슨 타이푼'(Crimson Typhoon)이 지난 수요일 (6월26일),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영화 개봉일(7월12일) 전에 나오리라는 기대는 있었지만 저 멀리 오타와의 완구점에서 배송되는지라, 7월 중순쯤 받으면 다행이겠다 싶었던 터였다. 그 동안 성준이는 '지금은 나왔을까?', '장난감을 실은 트럭이 아직 미국에서 오는 중일까?' 같은 질문 아닌 질문을 입에 달고 살아서, 가끔은 엄마나 아빠의 핀잔을 듣기도 했다 (성준이의 유별난 로봇 사랑). 그러다 온라인 뱅킹 계좌에 들어갔다가 로봇을 선주문한 온라인 숍 - 이름이 '불타는 장난감'(toysonfire.ca)이다,.. 더보기
그림으로 본 성준이의 하루 성준이가 그린 하루의 '체크리스트'. 방학이 시작되어 한가로워진 데다, 오늘은 종일 비까지 세차게 쏟아져 꼼짝없이 집안에 갇혀 있다 보니 이런 그림을 그릴 생각을 한 모양이다. 엄마와 성준이의 설명으로 풀어본 그림의 내용은, √ 아침으로 밥과 케첩이 들어간 치즈 샌드위치를 먹었고 (그래서 케첩 부분만 빨갛다), √ 식사 뒤에는 로봇과 자동차 장난감, 공을 가지고 놀았으며, √ 점심으로는 국수('씬(thin) 누들'), 우동 ('우동 누들')과 더불어 성준이의 단골 메뉴 중 하나인 핫도그 (소세지가 그럴듯하게 표현됐다)를 먹었고, √ 다시 놀기. 성준이는 웨건 장난감과 작은 자동차를 가지고 노는 중이고, 엄마와 동준이는 손잡고 성준이를 보는 중이란다. √ 그리곤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중. 성준이는 거.. 더보기
구름 캐나다에서 산 하나 없이 평야만 광막하기 그지없게 펼쳐진 지역을 '프레어리'(Prairie)라고 부른다. 대초원이라는 뜻이다. 알버타 주는 사스카체완, 마니토바 주와 더불어 프레어리 주에 포함된다. 서쪽으로 로키산맥을 끼고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은 지평선이 보일 만큼 광활한 평야 지대이기 때문이다. 프레어리 지역의 소설가가 쓴 한 범죄소설의 첫 머리에는 주인공 형사가 먼 경치를 볼 때면 드러내는 실눈 뜨는 습관을 묘사하면서, 프레어리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다고 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 소설이 집에 있는데, 이 블로그를 쓰면서 찾다가 포기했다. 책 정리를 해야 하는데...) 알버타 주로 옮겨와 살아보니 그 말에 공감이 간다. 프레어리 지역의 하늘은 높기만 한 게 아니라 넓다. 지평선까지, 혹은 .. 더보기
동준이의 중학교 졸업식 오늘 저녁 6시30분부터 두 시간여 동안 동준이의 중학교 졸업식이 열렸다. 행사가 열린 곳은 새알밭 가톨릭 교구 라콤 성당. 동준이가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데다 자꾸 큰 소리를 내기 때문에 졸업식 전에 열리는 미사를 피해 7시 조금 넘어 성당에 들어갔다. 동준이의 보조 교사들이 미리 자리를 잡아놓아서 빈 의자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성당 미사와 여느 졸업식 절차가 적당히 섞인 행사는 다소 지루하기도 했지만 중학교를 졸업하는 200명 가까운 빈센트 J. 멀로니 (Vincent J. Maloney, 줄여서 VJM이라고 부른다) 중학교의 남녀 학생들은 시종 상기된 표정으로 친구들끼리 딴짓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 낄낄댔다. 싱그럽고 파릇파릇한 젊음이었다. 몸집은 이미 성인이었지만 아직 앳된 얼굴인 중학교 3.. 더보기
'로봇 사랑'도 대물림? 레고를 이용한 성준이의 로봇 제작 기술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 사진 속의 로봇은 영화 'Pacific Rim'을 아직 알기 전에 만든 것이다. 개그콘서트의 '거제도' 코너에 보면 신보라와 정태호가 서울 아저씨 - 때로는 우체부 아저씨 -가 한 말을 중얼중얼, 열심히 반복 학습하는 장면이 있다. 요즘 성준이가 그렇다. "I want Gypsy Danger, but it won't be available on my birthday, because the movie Pacific Rim will not open until July, but once the toy robot is available, daddy and mommy will buy it for me..." 토씨까지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대충 저.. 더보기
뒤숭숭한 금요일 “케빈, 어제 소식 들었어?” 동료 에버렛이 내 사무실 큐비클 안으로 얼굴만 쏙 내밀고 묻는다. “에버렛! 아니 어쩐 일이야, 이렇게 일찍?” 아직 7시30분도 안됐다. 나는 일찍 출퇴근하는 유연 근무제를 골라서 아침 7시30분 (대개는 7시15분)에 출근해 오후 3시30분(대개는 45분)에 퇴근하지만 에버렛은 보통 8시30분쯤에나 출근한다. “어제 소식 들었어?” 다시 묻는다. 어제 발표된 2013년 알버타 주정부 예산안 얘긴가? “어, 들었지.” “로스한테서?” “로스? 아니, 무슨 일인데?” 예산안 얘기가 아니었다. 그제사 문득, 어제 오전 10시쯤 디렉터의 호출을 받고 나서 로스의 종적이 묘연하다는 에버렛의 말이 떠올랐다. 혹시? “내 사무실로 가서 얘기하자.” 에버렛의 사무실로 갔다. 문도 닫아.. 더보기
6년의 비투멘 '겨울' 눈덮인 알버타주의회사당. 멀쩡한 저 돔을 얼마나 더 비까번쩍하게 손질하려고, 한겨울에도 덮개로 덮고 공사중이다. 이른바 '비투멘 거품'이 몰아치기 직전의 '돈 낭비' 사례 중 하나다. Bitumen Bubble. 모든 문제는 저기에서 비롯했다. 비투멘 거품. 10년쯤 전의 '닷컴 거품'을 기억하시는가? 비투멘 거품은 닷컴 거품의 알버타 판쯤이라고 보면 된다. 알버타산 석유를 뽑아내면서 기업들이 내던 로열티가 예상보다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알버타 주 정부가 예측했던 매출액도 곤두박질친 것이다. 그렇게 로열티가 갑자기 떨어진 직접적인 원인은 알버타가 석유 수출을 100% - 그렇다 100%다 90%도 아니고... - 의존했던 미국이 태도를 바꿔 그 동안 채굴하지 않았던 자국 석유를 활용하기로 결정한 탓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