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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알밭

혹한 경보 밤새 바깥이 어수선했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바람이 집 벽을 때리고 지붕을 훑는 소리였다. 낮고 서늘한 휘파람 소리 같은 그 북풍의 기세는 위압적이고 불길하고 불안했다. 그 위협적인 바람 소리에 문득문득 잠이 깼고, 그 때마다 바깥은 도대체 얼마나 추울까 궁금했다. 실내 온도를 22도로 맞춰놓았지만 외풍 때문에 실제 체감 기온은 그보다 낮을 게 분명했다. 이불 밖으로 팔을 내놓으면 금세 서늘함이 느껴졌다. 어제 오후부터 점점 추워지던 날씨는 밤을 지나 새벽으로 오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오늘 아침 기온은 영하 27도에 체감온도는 무려 영하 40도! 바람이 시속 45킬로미터 속도로 불어대니 당연히 체감 온도도 곤두박질칠밖에... 출근하자마자 자주 찾는 캐나다 웨더네트워크에 접속해 보니 기온은 더 낮아져서.. 더보기
그림으로 정리해 본 주말 금요일 저녁. 가깝게 지내는 이웃, 그리고 한 직장에 다니는 한국인 후배 가족과 저녁을 함께했다. 위 사진은 그 후배 가족의 아이 클레어(지윤). 이제 15개월. 성준이가 클레어를 무척 예뻐해준다. 이것저것 보여주고 차 태워주고 신났다. 토요일 낮. 동준이와 성준이를 오티즘센터의 놀이 프로그램에 맡기고 아내와 둘이서 영화를 보러 에드먼튼의 초거대 실내 쇼핑 센터인 '웨스트 에드먼튼 몰'(WEM)에 왔다 ('세계 최대'라는 기록은 깨졌지만 '캐나다 최대'라는 기록은 여전히 유효하다). 시간이 빠듯했던 데다 몰 주차장이 차들로 인산인해 아닌 차산차해여서 차 댈 곳 찾느라 헤맨 탓에 영화 앞부분 4, 5분을 놓쳤다. 우리가 본 영화는 캐나다 소설가 얀 마텔(Yann Martel)의 2002년 만 부커상 수상작.. 더보기
달리기...깊어가는 새알밭의 가을 월요일이지만 출근하지 않았다. 재택 근무다. 아내가 에드먼튼의 글렌 로즈 병원에서 하는 오티즘 관련 강좌를 들으러 가 있는 동안 내가 성준이와 동준이를 건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건사'라고 해야 하교하는 아이들을 마중나가는 일, 아내가 다 준비해둔 점심을 데우는 일, 그리고 아내를 데리러 병원에 가는 일 정도니까 사실 별로 내세울 일도 아니다. 시간이 어정쩡해 아침 10시쯤 동네 근처를 달렸다. 마라톤을 뛴 지 일주일 남짓 지났으니 이제 슬슬 다시 본 궤도로 진입할 시기다. 첫 주는 팍 쉬고, 둘째 주는 평소 주행 거리의 30% 정도, 셋째 주는 60-70%, 그리고 넷째 주부터 정상 수준으로 복귀하는 게 마라톤 이후의 '회복의 정석'이다. 지난 토요일에 6마일 정도를 뛰었고, 일요일 하루를 쉬었다. 오.. 더보기
포틀랜드 탈출...드디어 집에 오다 드디어 비행기를 타는 곳으로 들어왔다. 새벽 네시 40분에 일어나 호텔의 셔틀버스를 타고 허둥지둥 포틀랜드 공항으로 '다시' 돌아왔다. 표 받는 데만 한 시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전산망에 우리 이름이 없다고 해서 또 한바탕 심장마비에 가까운 충격을 받을 뻔했다가 에어 캐나다에 전화를 걸더니 이름이 있다며 다시 반전. 미국 들어갈 때는 검문이 삼엄하기 그지 없더니, 막상 미국을 나오기는 너무나 쉬웠다. 과연 한 시간 안에 6시55분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그 점만은 안심이었다. 성준이의 표정과 자세에서 피로감이 드러난다. 에고 힘들다 힘들어. 포틀랜드를 나가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커피 피플이라는 카페에서 물이며 음료수, 커피, 빵 등을 잔뜩 샀다. 알래스카 항공에서 준 식사 쿠폰 한 장.. 더보기
새알밭의 가을 일요일인 어제 가족과 나들이를 나갔다. 가을 나들이였다. 잎들 다 지기 전에 가을 끄트머리라도 놓치지 말고 보자는 심산이었다 (언제 왔다고 벌써 간단 말이냐?!). 내가 먼저 뛰러 나간 지 1시간30분쯤 뒤에, 트레일 끝자락에 있는 정자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음 주 일요일이 마라톤이라 요즘은 숨고르기('테이퍼링'(tapering)이라고 부른다) 중이다. 일주일 남짓 기간 동안 체력을 아끼는 것이다. 그래서 앞뒤로 몸 풀기, 정리 운동 빼고 8마일 남짓 (약 13km)만 뛰었다. 이곳 가을은 어찌나 짧은지 아직도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정말 벼락같이 와서 야반도주하듯 사라진다. 어느날 잎 빛깔이 노랗게 바뀌는가 싶더니 어느새 잎을 속절없이 지우기 시작했다. 주변 물푸레 나무들의 절반쯤은 이미 잎을 다 지운 .. 더보기
Father's Day: 아빠 노릇 제대로 하라는 각성의 날? 나흘째 - 주말까지 치면 엿새째 - 회사에 안나가고 있다. 지난 주 수목금 사흘은 프라이버시 관련 컨퍼런스에 나가느라, 그리고 월요일인 오늘은 아내 대신 집에서 애들 건사하느라... 아내는 동준이 같은 '오티즘' 아이들을 둔 부모를 대상으로 한 글렌로즈 병원의 종일 세미나에 갔고, 나는 일종의 병가 비슷한 휴가를 내고 집을 보게 된 것이다. 아침 7시20분쯤 동준이는 가장 일찍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로 행차하셨고, 그 다음엔 아내가 에드먼튼으로 출근하는 이웃의 차에 얹혀 세미나를 들으러 갔다. 나는 성준이를 데리고 'Ready Set Grow'라는 이름의 유치원(preschool)으로 향했다. 오늘과 모레, 이틀만 더 나가면 성준이의 유치원 생활도 끝이다. 9월부터는 유아원(kindergarten)으로 한.. 더보기
'클래식 카'들에 혼이 빠지다 지난 일요일 캘거리 마라톤에서 달리기를 마치자마자 고속도로를 타기에 앞서 길가 팀 호튼스에서 아침 뚝딱 먹어치우고, 3시간여 달린 끝에 점심 무렵 에드먼튼 남쪽의 중국집 '원정각'에 다달아 짜장면 점심을 먹고, 이른 오후, 새알밭 집으로 막 향하던 길이었다. 동네에서 가장 큰 쇼핑몰 단지인 '새알밭 센터' (St. Albert Centre)의 주차장이 사람들로 빼곡한 게 눈에 띄었다. 뭐지? 클래식 카 (빈티지 카) 전시회가 막 열리는 참이었다. 피곤한 것도 잠시 보류하고 차를 돌렸다. 작년에 성준이에게 저 행사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게 걸리던 참이었다. 뒤늦게 어딜 가는지 알게 된 성준이는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혼이 반 넘어 나갔다. 클래식 카아!!! 새알밭에 이렇게 사람이 많았었나 싶을 정도로 행사.. 더보기
캘거리 하프마라톤 D-7 토요일. 캘거리 하프마라톤이 꼭 일주일 남았다. 번호도 이미 나왔다. 경기 전날 행사장에 가서 번호표를 받아 오기만 하면 된다. 지난 번과 달리 이번에는 다소 걱정이 앞선다. 몸이 시원치 않은 탓이다. 이 달 초, 밴쿠버 마라톤의 여파인지, 아니면 훈련 중에 사단이 난 것인지 오른쪽 무릎 뒤 인대가 불편하다. 뛰는 데는 별 문제가 없는데, 몸을 풀기 위해 발 뒤꿈치가 엉덩이에 닿을 만큼 높이 차는 '벗킥'(butt kick)을 할 때면 약간씩 당기는 듯한 느낌과 함께 약한 통증이 온다. 그런가 하면 왼쪽 엉덩이 부근 근육도 여전히 뻐근하다. 너무 무리를 한 것일까? 지난 2주 동안 쉬엄쉬엄 한다고 주의를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다. 평소 뛰던 거리보다 적게 뛰었다는 죄책감 아닌 죄책감도 든다. 게으.. 더보기
세상은 달리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무엇인가에 빠지면 적어도 그것에 푹 빠져 있는 동안은 주변 세상을 온통 그것을 중심으로 보게 마련이다. 그 관심사가 일종의 렌즈나 필터, 혹은 기준점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음악을 들으면서는 늘 말러를 생각하게 되고, 캐나다나 미국의 정치판 소식을 접하면서는 한국의 비슷한 상황을 떠올리며, 다른 도시의 축제나 이벤트 소식을 들으면 내가 사는 새알밭과 이웃 에드먼튼을 거기에 견줘 보게 된다. 이 달엔, 다음 달엔 어디를 가볼까, 무슨 일을 해볼까, 어떤 휴가를 즐겨볼까 생각할 때, 나는 먼저 '달리기'의 렌즈를 낀다. 찾아가려는 동네에는 어떤 트레일이 있을까, 혹시 휴가 간 동안 무슨 달리기 행사나 대회가 있지는 않을까, 그 동네나 근처에 달리기 좋은 길이나 환경이 조성되어 있을까...? 올해 일정은 이미 .. 더보기
여기는 '아직 겨울' (Still Winter) 새알밭은 '아직 겨울'이다. 다른 곳에서 널리 통용되는 용어로 바꾸면 '봄'이다. 이곳의 사계는 흔히, '거의 겨울' (Almost Winter, 가을), '겨울'(Winter), '아직 겨울'(Still Winter), 그리고 '공사중' (Construction, 여름)으로 분류된다. 4월쯤 볕 나고 따스하다고 지난 달에 내가 한 것처럼 자발없이 "야, 봄이다!" 해서는 이런 꼴 당하기 십상이다. 이곳에 전해 오는 신화에 따르면, 매년 5월21일에 찾아오는 '빅토리아 데이' 때까지,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내복을 벗기지 않는다고 한다. 적어도 그 때까지는 언제 눈보라 치고 얼음 다시 얼지 모른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 오래 산 사람들의 날씨 철학은 '현재를 즐겨라', 혹은 '있을 때 잘해'다. 하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