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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

'그린 팀버' 도시 숲 아내와 아이들을 꼭 걷게 해주고 싶었다. 처가에서 두 블록쯤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그린 팀버 도시근교림' (Green Timbers Urban Forest)의 트레일. 총 183 헥타르 (약 450 에이커)에 이르는 커다란 숲이 도심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숲 주위로만 걸어도 5 km쯤 된다. 나는 달리기를 주로 이 숲에서 했다. 해가 아직 떠 있을 때는 숲속 트레일들을 이리저리 돌았고, 어두울 때는 그 주변 인도로, 불빛이 있는 곳만 따라서 뛰곤 했다. '온대우림'이라는 이름답게 워낙 비가 자주 내리는 지역이다 보니 나무줄기는 하나같이 이끼를 덮고 있고, 고사리와 버섯이 지천이다. 부러진 나무는 저절로 썩어 비료가 되도록 내버려두었고, 그런 나무에도 이끼가 끼고 잎이 덮여 더더욱 '원시림' 같은 .. 더보기
밴쿠버에 닿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10시 가까이 되어 다시 도로로 나섰다. 유명 프랜차이즈인 '칠리스'(Chili's)가 호텔 1층에 있었는데, 거기에서 아침을 공짜로 제공했다. 따뜻한 음식을 공짜로 제공하는 호텔을 선호하는 이유는 비단 공짜라서뿐만이 아니라 - '공짜'라고 하지만 결국은 숙박비에 다 포함된 것 아니겠는가 - 편의성 때문이기도 하다. 짐 싸들고 차를 몰아 일삼아 식당을 찾아가는 것에 견주면 더없이 편리한 것이다. 하지만 '비용' 면에서의 효율성이 가장 큰 이유인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더구나 가족 구성원이 네 명쯤 되면 '간단히' 먹는 아침 비용도 만만찮은 것이다. 로키산맥은 언제 어느 때 가든 그 압도적 풍광으로 사람을 압도한다. 사진은 '캐슬 마운틴.' '반지의 제왕' 속의 한 장면이 금방이.. 더보기
새알밭을 뜨다 무슨 호텔의 조명이 온통 핑크빛이냐며 비웃었던 바로 그곳에서 하루를 묵었다. 새알밭에 살면서 새알밭의 호텔에 묵을 일이 있을까 했는데, 결국 있었다. 24일 이삿짐을 다 빼고 난 집에서, 처음에는 슬리핑백으로 잠을 자볼까 고려했지만 조금이라도 짐을 줄여보자는 생각에서, 또 굳이 그렇게 불편하게 잠을 잘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에서, 동네 호텔을 잡은 것이다. 퀸 사이즈 침대가 두 개 나란히 놓인 방은 쾌적했다. 그 동안 혼자 이삿짐 싸랴, 물건 처분하랴 녹초가 된 아내는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졌다. ...라고 말하면 퍽 이른 시간이었던 것 같지만 내가 에드먼튼 공항에 도착한 게 10시였기 때문에, 호텔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11시가 가까운 늦은 밤이었다. 일찍 시작하는 동준이를 먼저 학교에 데려다 주고, .. 더보기
스카이프 아내,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동안 스카이프(Skype)를 이용해 서로 얼굴을 확인했다. 구글 토크, 페이스북 등 다른 대안도 있었지만 본래부터 써와 익숙한 스카이프에 주로 의존했다. 카메라에 얼굴 들이대는 것이 마냥 재미있는 성준이는 카메라에 종주먹을 들이대며 집에 함께 있을 때면 수시로 하는 격투 장면을 연출하곤 했다. 주로 저녁 때 전화를 걸어서 그런지 동준이는 주로 '식사중'이셨다. 행복한 콧소리가, 엄마 쪽에서는 너무 시끄러웠겠지만 내게는 제법 흥겨운 노랫가락처럼 들리기도 했다. 오늘이 이삿날이다. 아내 혼자 잘하고 있을까? 아침에 전화를 했더니 이삿짐 트럭이 와서 짐을 싣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한 시간 시차가 나는 밴쿠버의 사무실에 앉아 있다. 새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자꾸 빠.. 더보기
밴쿠버 근황 점심 때면 걷는 산책로. 이 길을 따라 2 km쯤 더 올라가면 스탠리 공원으로 연결된다. 밴쿠버는 겨울이 혹독하지 않기 때문에 단열과 난방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그래서 크고 넓은 유리들로 이뤄진 건물이 유독 많다. 그런 건축 양식은 깔끔하고 시원시원한 느낌을 준다. 친구에게, 잘 지내지? 한국도 이젠 가끔 소슬바람 부는 가을이겠다. 가을녘이면 유난히 아침 커피가 더 맛있는 것 같다. 별일 없니? 한국에 들어갔을 때 잠깐 만나긴 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재회의 기쁨을 제대로 누린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아쉽다. 나는 9월30일부터 밴쿠버의 새 직장에 다닌다. 정신없이 바쁘다. 모든 내용과 형식과 구조를 처음부터 만들고 꾸미고 세워야 하는 자리여서 심리적 부담과 압박도 상당하다. 이렇게 스.. 더보기
깊어진 새알밭의 가을 어제와 오늘, 아침 10시가 가깝도록 푹 잤다. 피곤했다.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몸도 마음도 늘어지기만 했다. 새 직장에 적응하느라 생긴 심신의 부담 탓일까? 아니면 오후로 바꾼 달리기 일정 탓? 아침에 일찍 출근해 회사 근처와 스탠리 공원을 달려볼까 생각했지만 막 다니기 시작한 회사의 라커룸에 아직 들어갈 수 없는 데다, 설령 들어갈 수 있게 된다고 해도 5층짜리 빌딩에 달랑 하나뿐이라는 샤워 부스가 영 부담스러웠다. 일단은 퇴근 후에 뛰기로 했는데, 역시 달리기에 가장 안좋은 때가 퇴근 후라는 점을 새삼 확인했다. 피곤했기 때문이다. 하루 일과의 피로에다 한 시간 넘는 퇴근 길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뛰러 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뛰었다. 생각이 많으면 몸이 더뎌진다. 그래서.. 더보기
공항 밤샘 캐나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새알밭 (세인트 앨버트) 가족에게 돌아가는 길. 하지만 밴쿠버발 비행기 출발 시간이 토요일 아침 6시45분으로 너무 일러 금요일 퇴근하고 곧바로 공항으로 나왔다. 그냥 공항에서 쪽잠으로 때우기로 한 것이다. 비행기가 연착하거나 취소되어 발이 묶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공항에서 몇 시간씩 기다린 적은 있어도, 일삼아 공항에서 밤을 샌 적은 없어서, 과연 그게 가능하기나 한지, 벤치나 소파에 누워 있다가 경비원에게 쫓겨나는 것이나 아닌지 살짝 걱정도 됐다.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Terminal'에 보면 한 달씩 아예 기식하는 경우도 있더라만... 책 보다, 스마트폰 만지작거리다, 일 하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온전히 집중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저 나른하고 묵지근한 피로가 .. 더보기
앨리스 먼로 앨리스 먼로 관련 기사글로브앤메일 | 토론토 스타 | CBC | 뉴욕타임스 '50년 뒤에도 읽힐' (뉴욕타임스), '현대 단편문학의 대가'(스웨덴 한림원) 앨리스 먼로가 올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오랜만에, '받을 만한 사람이 받았다'라는 느낌을 주는 스웨덴 한림원의 선택이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앨리스 먼로가 한국에도 널리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먼로는,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받을 만한 자격이 없어 보이면서도 억지춘향 격으로, 때로는 정치적 배려로, 때로는 지역적 배려로, 때로는 30년이나 40년 전에 써낸 소설 하나를 이유로, 때로는 스웨덴 한림원의 천박한 편견 탓에 노벨상 수상자가 된 과거의 여러 작가들과는 크게 다르다는 생각이다. '천박한 편견'이라는 것은 그 한림원의 .. 더보기
집을 사다 둘러본 어느 타운하우스의 침실에서 내다본 노쓰밴쿠버의 산자락 풍경. 밴쿠버 이웃동네가 아니라 어느 궁벽한 산촌에 온 듯한 착각을 잠시 불러일으키는 풍경이었다. 108. 지난 목요일 한나절, 살 집을 찾느라 노쓰밴쿠버에서 차로 돌아다닌 거리가 108 km였다. 한편, 오늘(일) 아침 8시15분에 아내와 아이들을 싣고 새알밭으로 날아간 웨스트젯의 비행편이 108이었다. 그저 무의미한 우연이겠지만 지난 며칠 간의 고민, 타이밍과 맞물려 '백팔번뇌'의 108과 자꾸 연결되는 심사를 어쩔 수 없었다. 집을 샀다. 목요일 하루 휴가를 내서, 아이들을 데리고 밴쿠버로 급히 날아온 아내와 함께, 공항에서 빌린 미니 밴으로 현지의 부동산 중개인을 따라다니며 집들을 봤다. 중개인은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됐는데, 한국 분이면.. 더보기
첫 출근 싱클레어 센터 빌딩. 내 사무실은 이 건물 3층에 자리잡고 있다. 여권 발급 업무를 해주는 캐나다 연방정부 부서도 이곳에 있다. 밴쿠버의 전통 빌딩 중 하나인 싱클레어 센터에는 베르사체 같은 고급 브랜드 상점들이 들어와 있다. 참 곤하게 잤다. 산악 시간대에서 태평양 시간대로 거슬러 올라온 덕택에 한 시간을 벌었지만 심신은 여전히 노곤했고 계속 잠을 불렀다. 5시30분에 알람이 울었다. 샤워하고, 가능하면 매일 하려고 하는 - 하지만 주말이면 건너뛰곤 하는 - 간단한 코어 트레이닝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사과며 귤, 바나나 따위 스낵을 챙기고, 비는 그쳤지만 혹시나 싶어 우산을 넣고, 밖으로 나오면서 시계를 보니 5시59분이다. 스카이트레인 역까지 나를 데려다줄 버스를 타러 종종 걸음을 친다. 버스역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