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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공항 밤샘

캐나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새알밭 (세인트 앨버트) 가족에게 돌아가는 길. 하지만 밴쿠버발 비행기 출발 시간이 토요일 아침 6시45분으로 너무 일러 금요일 퇴근하고 곧바로 공항으로 나왔다. 그냥 공항에서 쪽잠으로 때우기로 한 것이다. 비행기가 연착하거나 취소되어 발이 묶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공항에서 몇 시간씩 기다린 적은 있어도, 일삼아 공항에서 밤을 샌 적은 없어서, 과연 그게 가능하기나 한지, 벤치나 소파에 누워 있다가 경비원에게 쫓겨나는 것이나 아닌지 살짝 걱정도 됐다.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Terminal'에 보면 한 달씩 아예 기식하는 경우도 있더라만...


책 보다, 스마트폰 만지작거리다, 일 하다... 그러나 어느 하나도 온전히 집중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저 나른하고 묵지근한 피로가 전신을 감싸는 듯했다. 피곤하다고 일찌감치 벤치 하나를 점거할 수도 없고... 1층으로 갔다가, 2층으로 갔다가, 3층 전망대로 갔다가, 이 벤치에 앉았다가, 팀 호튼스 커피숍의 전원 달린 탁자에 앉았다가, 화장실에 들렀다가... 모든 것이 예상했던 것보다 어설프고 귀찮고 불편했다. 하지만 어쩌랴...!


밤이 깊어지면서 공항도 침묵 속에 잠기고... 나처럼 적당한 벤치를 골라 불편한 잠이나마 최선을 다해 보충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문득, 산다는 건 때때로 고단한 것이이지만, 그럼에도 가족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혹은 고향에 간다는 기대로, 혹은 무엇인가 행복하고 즐거운 내일을 위해 그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너 시간이나 제대로 잤을까? 새벽 다섯 시부터 체크인이 시작된다고 했지만 네 시께 일어났다. 아니 누운 나무 벤치가 너무 불편했다. 등과 다리가 배겨서 도저히 편안히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자다 깨다 했다.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들여다보니 눈이 벌겋다. 아, 이래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야간 항공편을 'red eye'라고 부르는구나...문득 실감했다. 꼭두새벽 비행편을 타려는 사람들이 잠이나 제대로 잤으랴... 막 문을 연 스타벅스에 사람들이 몰렸다. 하지만 스타벅스와 궁합이 잘 맞지 않는 나는 그냥 길게 늘어선 줄의 길이를 먼 발치에서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



에드먼튼은 바야흐로 늦가을. 영하 2도란다. 밴쿠버는 비가 오나 해가 나오나 10도 안팎. 밴쿠버에 얼마나 있었다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춥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리고 피곤하다는 느낌은,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졌다. 역시 가족이 보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