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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밴쿠버 근황

점심 때면 걷는 산책로. 이 길을 따라 2 km쯤 더 올라가면 스탠리 공원으로 연결된다. 밴쿠버는 겨울이 혹독하지 않기 때문에 단열과 난방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그래서 크고 넓은 유리들로 이뤄진 건물이 유독 많다. 그런 건축 양식은 깔끔하고 시원시원한 느낌을 준다.


친구에게, 


잘 지내지? 한국도 이젠 가끔 소슬바람 부는 가을이겠다. 가을녘이면 유난히 아침 커피가 더 맛있는 것 같다. 별일 없니? 한국에 들어갔을 때 잠깐 만나긴 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재회의 기쁨을 제대로 누린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아쉽다.


나는 9월30일부터 밴쿠버의 새 직장에 다닌다. 정신없이 바쁘다. 모든 내용과 형식과 구조를 처음부터 만들고 꾸미고 세워야 하는 자리여서 심리적 부담과 압박도 상당하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본 게 얼마만인가 싶을 정도야. 하지만 내 보스가 워낙 쿨하고 열린 사람이어서 큰 도움이 된다.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아니라 일 자체로 인한 스트레스여서 견딜 만하지. 일단 적응만 되고, 어느 정도 틀거지만 갖추고 나면 모든 게 술술 잘 풀릴 것이라 기대한다. 


시버스로 노쓰밴쿠버에 접근하면서 찍은 사진. 고층 아파트가 많은 '론스데일'(Lonsdale) 지역이다. 노쓰밴쿠버 '시'의 중심이기도 하다. 이 지역을 둘러싼 나머지 지역의 대부분은 노쓰밴쿠버 지구 (District)다. 


살 집도 구했어. 밴쿠버에서 바다 건너 북쪽, 노쓰 밴쿠버야. 버스나 배 - 여기선 '시버스'(Seabus)라고 불러 - 로 통근하게 될 것 같다. 알버타주 세인트 앨버트에서 살던 집의 딱 두 배를 내고 겨우 구한 방갈로 (단층집을 여기선 그렇게 불러, 랜처(Rancher)라고도 하지)다. 지하도 없이 1층에 방 세 개, 화장실, 거실, 패밀리룸, 부엌이 다 있어. 평수로는 45평쯤 되는 것 같다. 저쪽 집은 다 합치면 60평 가까이 됐는데... 그러다 보니 짐 줄이느라 안간힘이다. 키지지(Kijiji)라고, 중고물품을 내놓고 팔고 사는 사이트인데, 거길 자주 이용하고 있다. 워낙 싸게 내놓아서 그런지, 아니면 그 사이트가 워낙 인기여서 그런지, 일단 내놓으면 처분은 잘 되는 편이야. 하지만 늘 그렇듯, 짐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고, 아내 혼자 고생이 자심하다. 너무 미안해. 


스카이트레인. 이름 그대로 대다수 역이 지상으로, 더욱이 고가도로 형태로 나와 있다. 밴쿠버 일대가 지진대인 데다 해발 고도가 낮은 곳이 많아서 땅속 대신 땅 위를 택한 것 같다.


이제 열흘쯤 남았다. 지금은 써리(Surrey)의 처가에 기식하면서 통근하고 있어. 버스로 전철역까지 가서, 스카이트레인으로 회사가 있는 물가(Waterfront)까지 가지. 아침에는 한 시간 정도 걸리고, 오후에는 그보다 10~30분쯤 더 소요된다. 다닐 만해. 사람들로 붐비기는 하지만 서울에 견주면 양반이지. 


24일에 이삿짐 트럭이 오고, 25일에 집 열쇠 건네주고, 우리는 미니밴으로 밴쿠버까지 올 예정이지. 1200 km니까 1박2일 예정. 그렇게 주말 보내고, 여기서는 29일에 새 집 - 사실은 헌 집, 1950년대에 지은 거야 - 열쇠를 받지. 아마 그 즈음 이삿짐 트럭도 당도하지 않을까 싶고... 성준이가 핼로윈을 무척이나 고대하고 있는데, 다행히 아빠랑 함께 주변 동네를 돌아다니며 'Trick or treat?'를 할 수 있게 됐지. 성준이의 올해 의상은 배트맨이다. 동준이가 문젠데, 아직 고민중이다. 


암튼 잘 지내라. 에드먼튼이나 토론토 살 때보다는 놀러오라고 성화를 부리기가 덜 부담스러워졌다. 한국과 훨씬 더 가까워졌고, 볼 거리 놀 거리도 많으니... 또 연락하자.


요 며칠새 안개 자욱한 날이 많았다. 멀리 안개 같은 구름, 혹은 구름 같은 안개에 싸인 노쓰밴쿠버가 보인다. 아래 수상 비행기들은 밴쿠버와 밴쿠버 아일랜드를 연결하는 '하버 에어'(Harbour Air) 항공사 소속이다. BC의 주도인 빅토리아가 본토가 아닌 섬에 있어서 이런 수상 비행기와 헬리콥터가 신속한 교통편으로 널리 이용된다고 한다. 배편인 BC페리가 있지만 편도로만 2시간 이상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