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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이러다 죄 받지...

냉장고가 퍼졌다. 집 살 때 함께 포함된 가전제품중 하나로, 쓴 지 10년쯤 된 월풀(Whirlpool) 제품이었다. 어제부터 냉기가 돌지 않아 설마 설마 했는데, 오늘 아침이 되자 그 사실이 명백해졌다. 냉장고 음식을 서둘러 지하의 냉동고와 김치냉장고로 옮기고, 사람을 불렀다. 그 사람, 한 시간쯤 뚝딱뚝딱 문제점을 찾아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압축기(Compressor)가 나갔으니 그를 가느니 차라리 이 참에 새 냉장고를 사란다. 컴프레서 바꾸는 데 드는 비용이 4, 5백불이고, 그냥 쓸 만한 냉장고 사는 비용이 그 비슷하단다. 

전자제품들에서 이런 현상이 자심하다. 부품 바꾸는 비용과 제품을 통째로 바꾸는 비용이 엇비슷한 이 기괴한 현상. 아무런 문제도 없고 작동도 잘하지만 2년 쓰다 계약을 새로 하면서 휴대전화 두 대가 놀고 있다. 그것들 죄는 '화숀'fashion이 지났다는 것뿐. 지금 쓰는 것은 얇고 세련된 (그러나 한국적 기준으로 보자면 역시 오래전에 구닥다리 계열로 들어선) 제품. 대체 왜 이럴까?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한 2, 3년 쓰다 뭐가 문제가 생겨 수리를 맡기려 하면 그 돈이 새 컴퓨터 장만하는 값과 엇비슷하다. 사실 수리를 맡기기 위해 컴퓨터를 들고 오가는 품과 불편까지 감안한다면 새 컴퓨터 사는 게 차라리 더 싸다. 새걸 샀으니 기분도 더 흐뭇하고... 하지만 영 불편하다.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머릿속 한 구석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아무리 첨단 첨단 하는 전자제품, 가전제품이라지만 결국 그 재료는 플라스틱에, 금속에, 석유에, 다 이 땅에서 나는 것들이다. 그것들이 무한한가? 물론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 세상의 모든 재료와 원료와 에너지가 무한하다고 믿는 것처럼, 맹신하는 것처럼 그렇게 돌아간다. 

뭐, 냉장고 퓨즈가 나갔어? 그럼 퓨즈 갈 것 없이, 새걸로 바꾸지 뭐 값 차이도 별로 안나는데...이 수준으로 갈 날이 오지 않는다고, 이런 추세라면 어떻게 단언할 수 있겠는가? 

씨어즈(Sears)에 가서 그중 제일 싸보이고, 그러면서도 절전 등급이 높아 주세(PST)와 연방세(GST) 모두 면제되는 켄모어(Kenmore) 제품으로 샀다 (왼쪽 사진). 아주 고래짝 2층 디자인. 

그렇게 에너지 효율 높은 걸 일삼아 고르면서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그 씨어즈 매장 한 구석을 가득 메운 냉장고들 중 실제 면세 혜택이 적용되는 절전형 냉장고는 두세 대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머지 비까번쩍한 제품들은 전기도 비까번쩍하게 먹는 허영형 냉장고들... 나오면서 슬쩍 곁눈질로 본 '럭셔리' 키친에이드 냉장고 한 대는 값이 3천5백달러였다 (우리건 700달러). 눈깔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뭔가 좀 잘못된 것 같긴 한데.... (2007/07/28 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