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 유감

이와 비슷한 얘기는 여러 번 한 것 같다. 그 중 하나는 여기
최근의 황당하면서도 서글픈 한 사례. 그러나 이것은 외래어 표기의 문제라기보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의 문제, 혹은 그에 적합한 한국어로 옮겨보려는 노력의 결핍의 문제. 그냥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제목으로 내세우면 어디가 덧난다는 말인가?!: 

한국의 외래어 표기법은 확 바뀌어야 한다 지금 당장!...
 

'마이 파더'라는 영화 포스터를 보고 새삼 든 생각이다. 


My father? My Pother? 

현행 외래어 표기법 이전이라면아마도 '마이 화더'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개선이 아닌 개악, 그것도 끔직한 몰골로 바뀌어 버렸나? 옛날 제법인기를 끌었던 청량음료 환타. 지금 표기법대로라면 판타다. 판타지라고? Pantasy? Fantasy? 

길게 이야기해 보았자 입만 아프다. 언필칭 '현지의 발음을 존중한다'고 주장하는 지금의 외래어 표기법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몇 가지 흔한 사례만 들기로 하자: 

비아그라: 현지 발음은 바이아그라다. 그런데 웬 비아그라? 미국의 한 대담 프로에서 한 참가자가 비아그라라고 실수로 발음했다가 그에 모두들 와~ 하며 웃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난다. 

윈도: 당연히 윈도우즈다. 그 '우' 음가가 얼마나 중요한데 빼먹나? 게다가 복수형이 어떻게 단수로 둔갑하나? 이게 현지 발음의 존중인가? 

모차르트 드보르자크 베토벤... 한 번 현지인들한테 그 발음을 대보시라. 한 사람이라도 알아먹나. 대체 장음은 다 어디로 갔을까? 왜 베'에'토벤이 아니고 베토벤이냐 말이다. 

보브 대  밥: Bob이 어떻게 해서 보브로 읽히는지, 그렇게 발음되는 그 '현지'가 어디인지,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Dole은 어떻고? 중앙일보가 그나마 고민 끝에 밥 도울이라고, 용기 있게 현행 표기법을 어겼다. 현지에서 뻔히 '밥 도울'이라고 불리는 인물이 한국에서만은 '보브 돌'이다. Joan, Joanne. 앞 이름은 흔히 '조운'으로, 뒤는'조앤'으로 발음된다. 그러나 한국의 표기법대로라면 둘 모두 '조앤'이다.

에프(f)와 피(p) 발음을 완전히 무시하기로 작정한 그 용감무쌍한 결정은, 아마도 현행 외래어 표기법의 가장 큰 최악중 하나로 꼽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푸르트뱅글러 푸랑크푸르트 파더 판타지 페이블 푸르트 풋...

유성음과 무성음으로 발음되는 'th' 발음의 무시도 그에 못지 않다. '텔미 썸딩'이라고? 적어도 'some'부분을 현 표기법을 따르지 않고 '썸'이라고 한 것만은 사줄 만한 부분이다. 

쌍시오(ㅆ), 쌍디귿(ㄸ) 같은 경음을 집단 도살해 버린 일은 또 어떤가? 왜 모짜르트가 아니고 모'차'르트인가? 왜 써멀(thermal)이 아니고 서멀인가? 왜 써머(summer)가 아니라 서머인가? 

나는 그래서 창비의 '나대로식 외래어/외국어 표기법'에 박수 치고 싶다. 그쪽이 아주 한 참 더 이성적이고 현실적이며, 말뿐이 아닌 실천으로 '현지의 발음을 존중'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전 'Fantastic 4'의 한글 제목을 보았다. 판타스틱4. 정말 판타스틱한 기분이었다. 그나마, 4를 현행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포'라고 쓰지 않고 아라비아 숫자로 남겨놓은 데 안도했다. 옆에 앉은 친구와 하이'파'이브라도 하고 싶은기분이었다. (2007/08/18 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