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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이성

인터넷 ‘킬’ 스위치 논란 - 이집트 사태로 새삼 드러난, 참을 수 없는 인터넷의 취약성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30년 철권 통치가 마침내 종지부를 찍은 이집트는 지금 민중의 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의 힘을 드러낸 한 모범 사례로 거론된다.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이집트는 인터넷의 신화를 깬, 아니, 참을 수 없는 인터넷의 취약성을 드러낸 분기점으로 여겨진다. 무소불위, 언론 자유의 상징, 민주주의 혁명의 지렛대라는 인터넷의 이미지가 이집트 사태에 와서 전복되었다. 오히려 인터넷이 그 반대의 힘, 곧 억압의 기제로도 작용할 수 있음을 냉엄하게 드러냈다.

이집트 정부는 민중의 궐기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방책의 하나로 인터넷을 차단했다. 정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만 열고, 나머지 트래픽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을 통해 완전히 닫아 버린 것이다. 그에 따라 실제 소통된 인터넷 트래픽은 평소의 8%에 불과했다고 한 외신은 전했다.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며, 이집트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집트의 민주주의 혁명 - 벌써 이렇게 부를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지만 -이 상대적으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더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와 연관된 인터넷 차단 사태도 더 널리 알려진 것일 뿐이다. 언론의 눈이 덜 가 있는 미얀마나 네팔 같은 나라는 이미 오래 전부터 효과적으로 인터넷을 차단해 오고 있다.

‘트위터 혁명’이라는 섣부른 조어를 낳은 이란에서도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를 위시한 인터넷 검열과 차단이 효과적으로 - 그러나 억압 받는 쪽에서는 끔찍하게 - 진행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키르기즈스탄의 2005년 의회 선거에서는 정당과 언론 웹사이트가 정체 불명의 기술적 오류와 해들의 표적 공격으로 마비되면서 ‘인터넷 과신’에 금이 갔다.

2009년 신장 지역의 폭동 사태 전말이 서방세계로 전파되는 것을 교묘하고 효과적으로 차단한 중국은 또 어떤가. 중국 정부는 사태 이후 수개월 동안 신장 일대의 인터넷 사용을 막았고, 중국으로 수입되는 PC에 웹 필터링 소프트웨어를 의무적으로 설치케 했다. 이번 이집트 사태 동안에도 ‘이집트’ ‘다당제 선거’ 같은 단어의 검색 자체를 불가능하게 해 중국의 인터넷 신경증을 표나게 드러낸 바 있다.

인터넷에서 퍼온 그림. 그럴듯하다. 인터넷을 끄려는 장면보다는 핵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터넷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언론의 자유나 인권 보호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나라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인터넷을 만든 미국에서도 국가 비상사태에 인터넷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이른바 ‘인터넷 킬 (kill) 스위치’가 필요하다며, 대통령이 인터넷 차단을 명령할 수 있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 상원 산하 ‘국토 안보 및 국정 위원회’는 지난해 ‘국가 자산으로서의 사이버스페이스 보호법’ (Protecting Cyberspace as a National Asset Act)을 제안하면서 이런 아이디어를 포함시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나 올해는 아직 공식 상정되지 않은 상태다.

몇몇 전문가들은 그러나 굳이 이런 법이 아니더라도 인터넷을 ‘킬’(죽이기) 하기는 쉽다고 주장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인터넷 자체가 아니라 ‘인터넷의 특정한 부분’을 죽이기이다. 악명높은 사이버 범죄 조직인 RBN (Russian Business Network)을 감시하는 대항 블로그 RBNexploit.com의 편집장이자 컴퓨터 보안 전문가인 자트 아민 (Jart Armin) 씨는 “인터넷 차단 (blocking)의 규모를 확대할 만한 수단만 있으면 지역 차원, 더 나아가 국가 차원의 인터넷 죽이기는 가능하다”라고 주장한다. 이른바 ‘만리장성 방화벽’ (Great Firewall)을 적극 활용하는 중국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고, 지금 큰 논란을 빚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등급 거부’ (RC, Refused Classification)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호주의 경우, 영화나 비디오, 비디오 게임 등에서 RC 등급을 받은 콘텐츠에 대해서는 유통과 판매가 법적으로 금지되는데, RC 프로그램은 이를  인터넷으로까지 확대해, 정부가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콘텐츠를 인터넷에서 걸러내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이런 검열과 통제가 너무 직설적이어서는 곤란하다. 이집트의 경우에서 드러났다시피 역풍을 맞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라우팅 정보를 통한 트래픽 차단이다. 파괴력에서도 이것이 더 막대하다. 여기에서 통제 대상은 국가나 지역 차원에서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들(ISPs)끼리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이용하는 경계 경로 프로토콜 (BGP, Border Gateway Protocol)이다. BGP 내에서 도메인 네임 서버 (DNS)를 관리하는 주체가 그 도메인에 대한 인터넷 접속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 ISP들로서는 정부의 지시를 거스를 수 없으므로, 최악의 경우, 정부의 입맛에 따라 특정 도메인의 인터넷 접속을 끊거나 차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지리적 한계를 초월한 인터넷’, ‘언론 자유의 상징 인터넷’, ‘통제 불능의 인터넷’과 같은 신화가 나온 것은 인터넷의 시작이 미소 냉전 시대, 소련의 핵 공격에도 견딜 수 있는 생존 전략의 하나였다는 점과도 연관되지만, 인터넷은 어느 한두 개의 메인 서버에 의존하지 않고 사면팔방으로 분산된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에 의해 움직여 왔고, 또 그러한 기반으로부터 번성했다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신화는 이미 2000년 11월 야후가 프랑스 법원의 명령에 따르기로 하면서, 상징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무너졌다. 당시 야후는 야후를 통해 거래되는 나치즘, 네오나치즘 관련 물품을 둘러싼 법정 소송에 휘말려 있었다. 네오 나치즘에 반대하는 프랑스의 유태인 마크 노블 (Mark Knobel)이라는 이가 2000년 4월,  독일 나치당의 표지인 스와스티카 (만자(卍字))를 비롯해 SS 단검, 유태인 집단수용소 사진 등 나치즘을 미화하는 기념품이 야후의 웹사이트를 통해 경매되는 것을 보고, 프랑스 사람들이 그 사이트에 들어가 물건을 구매할 수 없게 해달라는 소송을 프랑스 법원에 낸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경매가 불법이 아닌지 모르지만 프랑스의 국경을 넘어오는 순간 명백히 불법”이라고 노블씨는 주장했다.

노블씨의 소송은 가망없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만 해도 야후는 ‘포털의 왕’이었고, 사람들 사이에 인터넷의 신화가 깊숙이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물리적 경계와 국경을 넘나드는 인터넷의 특성상 어느 한 나라의 법률을 강요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따라서 인터넷은 ‘사이버스페이스의 서부’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그러나 사태는 다르게 흘러갔다. 특히 소송 과정에서 ‘IP’ 추적 기술을 통해 각 인터넷 이용자의 출신을 가려낼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야후는 궁지에 몰렸다. 프랑스 법원은 ‘100% 차단은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프랑스로부터 미국의 야후 페이지로 접속하는 트래픽을 걸러내어 막으라’고 야후에 지시했다. 처음에는 미국 법원에 항소하며 프랑스 법원의 결정에 저항했지만 몇달 뒤인 2001년 1월 야후 경매 사이트로부터 나치 관련 품목을 완전히 빼버렸다.


한편 야후는 당시 무섭게 치고 올라온 구글을 견제하고, 생존 활로를 찾기 위해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야후는 당시 “중국의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그들의 필요에 맞춰, 야후의 다양한 인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진출 이유를 밝혔다. 그렇다면 프랑스 법원과의 싸움에서 깃발처럼 내걸었던 ‘인터넷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여기에서도 내세웠을까? 물론 아니었다. 야후는 그 내용이 부적절하거나 당에 위해하다고 판단되는 콘텐츠를 걸러내라는 중국 정부의 요구를 수용했다. ‘중국 정부가 사실상 야후에게 중국 공산당을 위한 인터넷 검열자 노릇을 부탁한 셈’이었다고 ‘누가 인터넷을 통제하는가?’ (Who controls the Internet? 옥스포드대 출판부)의 공저자인 잭 골드스미스 (Jack Goldsmth)와 팀 우 (Tim Wu)는 주장했다.

이들은 인터넷이 바야흐로 지리적 법률과 규제에 저항하던 기술로부터, 도리어 그것을 부추기고 강화하는 기술로 전환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란에서 벌어진 대규모 군중 시위, 그리고 이집트의 (아직까지는) 성공적인 민중 봉기로부터 종종 불거지고 유행한 ‘트위터 혁명’이라거나 ‘인터넷이 추동한 혁명’이라는 말은, 그래서 인터넷의 실체와 가능성 - 혹은 위험성 -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인터넷이 그 역의 힘으로, 억압의 기제로 작동하기 시작한 나라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면 더더욱 그렇다. (엠톡 3월호용으로 기고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