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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이성

첫 눈, 아니 첫 손에 반했다! 씽크패드 X220 사용기

랩탑 사양

씽크패드 X220 (ThinkPad X220)
마이크로프로세서: 인텔 코어 i5-2520 (2.50GHz, 3MB L3, 1333MHz FSB). 인텔 터보 부스트 테크놀로지로 3.2GHz까지 가속 가능.
운영체제: 윈도우 7 프로페셔널 64비트 (Genuine Windows 7 Professional 64 bit).
스크린: 12.5인치 HD (1366x768) LED 후면 발광 디스플레이 (Backlit Display), 2x2 무선 안테나.
메모리: 8 GB PC3-10600 DDR3 SDRAM 1333MHz SODIMM (2 DIMM)
하드드라이브: 인텔 160GB SSD (Solid State Drive). 
배터리: 9 셀 리튬-이온 배터리.
무선: 인텔 센트리노 어드밴스트-N 6205 (Intel Centrino Advanced-N 6205 AGN).
블루투스 장착.
카메라: 720p HD 비디오 카메라.
지문 인식기: 없음. 

제목 그대로다. 첫 손에 반했다. 키보드에 손을 척 얹고 타닥탁 몇 글자 치는데, 그야말로 감동의 물결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아내와는 가끔 반대로 말하면서 실없이 웃곤 한다. 감동의 물결이 썰물처럼 밀려왔다, 라는 식...). 아 그래, 바로 이 맛이다! 이렇게 손가락과 키보드가 마치 천생연분이라도 되는 것처럼 착 달라붙어 일체감을 느끼게 하면서, 적당한 압력과 감촉과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맛!

씽크패드에 처음 반한 건 먼 옛날, 1995년 이른바 '버터플라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했던 씽크패드 701을 만나면서부터였다. 화면이 10.4인치로 요즘의 넷북 크기였는데, 뚜껑을 열면 키보드가 나비처럼 양옆으로 좍 펴지면서 '풀 사이즈 키보드'로 변신했고, 닫으면 키보드가 반으로 나뉘어 서로 겹치면서 그 작은 몸통 안으로 사라졌다. 그 환상적인 디자인과, 더욱 환상적인 키보드 감촉에 홀딱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10.4인치라는 화면 자체가 워낙 비실용적으로 작다는 현실과, 별로 선명하지 않은 LCD 화면, 그리고 비싼 가격 때문에 701은 단명하고 말았다.

그 뒤 씽크패드 560과 다른 12인치짜리를 잠깐 썼는데 디자인 자체에 대한 인상은 701을 넘지 못했지만 '아, 이 환상적인 키보드!'라는 감상은 늘 함께했다. 아내에게 한 번 써보라고 했을 때 나온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어머, 키보드 감촉이 어쩌면 이렇게 좋아?!"

그리고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나, 우여곡절 끝에 근래 새로 나온 씽크패드 X220을 구했다. '샌디 브리지'라고 불리는인텔의 최근 2세대 칩을 써서 속도와 배터리 효율성 높였다 (속도를 높이면서도 에너지 소모는 도리어 줄이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나는 인텔이 새 칩을 내놓을 때마다 감탄하면서도 불안해 한다.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진보할 수 있을까?).

속도: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게임을 하지 않으니 속도 자체에 중뿔난 욕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프로그램을 한꺼번에 돌릴 때 나타나는, 인풋과 아웃풋 사이의 지연 현상만 없으면 - 혹은 적으면 - 좋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으로서는 100% 만족이다. 여기에는 메모리를 8GB로 올린 덕도 있을 터이다 (4GB는 노트북 주문할 때, 4GB는 따로 주문했다. 노트북 사양을 맞출 때 4GB에서 8GB로 올리면 160달러가 들지만, 따로 4GB 메모리를 사면 그 절반도 안되는 70달러 선이다). 또 하나는 디스크가 돌아가는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 (HDD)가 아니라 반도체를 이용해 정보를 저장하는 SSD를 선택해 파일을 불러내고 저장하는 절대 속도가 훨씬 더 빨라졌다는 점이다 (혹시 궁금하신 분은 이 유튜브 비디오로 그 차이를 확인하시라). 

배터리: 9셀 배터리를 붙였다. 완전 충전하고 나서 배터리로만 써보니 9시간은 족히 쓸 수 있겠다. 아침에 출근해 퇴근할 때까지 배터리 수명이 다할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 24시간 가까이 쓸 수 있다는 받침형 배터리까지는 필요 없겠다.

인터넷: 마치 인터넷 서비스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 듯한 느낌. 브라우저에서 웹페이지나 이미지, 비디오 등을 띄워주는 속도가 피부로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더 빨라졌다. 앞에도 언급했다시피 컴퓨터 자체의 처리 속도가 인터넷 접속 환경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하다는 점을 실감한다.

다시 키보드: 이것저것 글 쓸 일이 많아 오래, 많이 써도 손가락과 손목 부담이 적은 키보드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내가 왜 이제야 씽크패드로 다시 돌아왔을까 하고 살짝 유감일 정도로, 키보드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그냥 느낌만으로는 하루 종일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어도 힘든 줄 모를 것 같다. 100점 만점에 100점이고, A+이다. 

디자인: 씽크패드의 단점으로 지적되곤 하는 게 딱딱하고 각진 디자인이라는데, 요즘 나오는 PC쪽 노트북들이 다 몰개성적으로 둥글넓적해서 그런가 내겐 씽크패드의 모양이 도리어 더 신선하고 쿨해 보인다. 디자인에 아무런 부담도 없다. 검은색인 것도 마음에 든다. 

사운드: 하이파이 오디오를 기대한 것도 아니므로 소리가 작게 들린다는 것말고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CD/DVD RW: 옵티컬 디스크 드라이브가 없다는 점이 단점일 수도 있겠다. 내겐 별로... 얼마전 델을 통해 아이오메가 CD/DVD 버너를 30달러에 샀다. X220에 USB 포트로 연결하니, 다소 느리긴 하지만 이상없이 잘 돌아간다. CD나 DVD를 통해 프로그램을 깔 때 말고는 별로 쓸 일이 없을 것 같다. 대부분 네트워크로 내려받고 올리니까... 

딱 한 가지 아쉬움:  후면 발광 키보드였으면 좋았겠다...라고 써보니 '후면 발광'이라는 어색한 표현이 무척이나 광적으로 들린다. Backlit keyboard. 며칠 전에 새로 나온 씽크패드 X1은 그런 키보드던데... 이거 X220보다 X1을 살까 그랬나 했다가 이런저런 리뷰를 읽어보니 모든 면에서 대동소이한데 배터리가 분리 불가에다 그리 오래 가지 않는 단점을 보인다고 한다. 여우의 신포도 심사를 좇아서, 나도 '그래도 이게 더 좋아'라며 스스로 위로할밖에...

여기에서 다시 업데이트:  그래서 사람은 알아야 한다...라고 말할 것도 없이, 뭐든 새로 물건을 사면 설명서를 꼭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대개는 건너 뛴다. 어딘가 문제가 생겨서 정 다른 해법이 보이지 않을 때만 마지 못해 펼쳐 드는 게 이 설명서고 가이드고 매뉴얼이다. 왜 이런 장광설을 늘어놓는가 하면, 어찌어찌 하다가 노트북 꼭지의 카메라 옆에서 불이 갑자기 들어와 놀란 사연을 털어놓기 위함이다. 정말 우연히도, 훵션(Fn) 키와 페이지 업 (PgUp) 키를 동시에 누르면서 불이 들어온 것이다 (아래 사진).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기막힌 일이다. 매뉴얼을 뒤져보니 '씽크라이트'(ThinkLight)라는 게 있었다 - 백릿 키보드가 아닌 대신, 꼭지에 꼬마 전구를 달아, 밤중에 불을 끄고도 키보드를 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했다. 핫, 이것 감동이다. 하하. 


총평: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내 리뷰 아닌 리뷰의 부실함과, 과도하게 더해진 개인적 편애를 느끼실 것으로 믿는다. 레노버의 평균 이하 - 확실히 이하 -인 고객 서비스만 잘 감안하신다면, 적어도 씽크패드 노트북 자체에 대한 불만은 거의 - 내겐 '전혀' -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특히 노트북으로 글 쓰는 작업을 많이 하는 분이라면, 이보다 더 나은 노트북을 달리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노트북은 무조건 씽크패드로만 사야겠다고 생각할 정도... 별 다섯에 다섯, 꽉 채워 주겠다. 

더 상세한 정보를 원하시는 분들께는...
랩탑 매거진의 리뷰 - 아마 가장 상세한 검토가 아닐까 싶다. 테스트 결과도 흥미롭다.
기타 X220 리뷰들. 대체로 절대적 호평인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아래 모바일테크리뷰 (유튜브 비디오).



잡소리
: 정말 어렵게 어렵게 구매했다. 처음에는 200만원쯤에 미친 척 구매했다가 나중에 우연히, 채팅으로 협상을 하면 그보다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걸 알고 취소하고, 다시 구매했다. 20%쯤 할인을 받았다. 그래도 1,400달러쯤 했다. 세금은 연방세 5%. 주세(
州稅)는 없다.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주세를 징수하지 않는 알버타주에 산다는 게 이럴 때만큼 흐뭇할 때도 없다.

막상 물건을 받는 데도 약간의 '생쑈'가 필요했다. UPS가 온 목요일에는 집에 사람이 없었다. 다음날 2~5시에 온다는 딱지만 문간에 붙어 있었다. 다음날 아내가 일삼아 2시에 맞춰 집에 돌아왔는데, 이 UPS 배달원은 이미 30분 전에 다녀가고, 다음 주 화요일 - 월요일은 빅토리아 데이 공휴일이다 -에 다시 오마는 딱지남 남아 있었다.

회사에서 그 정황을 듣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UPS에 전화를 걸었다. 그래봤자 소용 없고, 내 전화를 받는 상담원은 배달원 사정을 전혀 모르고 무관하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고객이랑 지금 장난 치느냐? 정말 열받는다. 다짜고짜 화부터 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상담원인데, 무슨 일이냐 얘기해 봐라, 아주 쿨하고 나긋나긋했다. 뻔히 2~5시에 온다고 약속해 놓고, 막상 그 시간에 맞춰 와보니 벌써 다녀갔단다. 이게 말이 되느냐, 했더니 아 그건 정말 우리 잘못이다. 매니저에게 당장 그 사실을 알리고 조처하겠단다. 그리고 오후 3시6분 전에 전화가 갈 거란다. 왜 하고 많은 시간 중에 하필이면 3시 하고도 '6분'인지는 나도 물론 알 도리가 없었다. 집 전화를 알려줬다. 아니나다를까, 얼마 안있어 1시간 안에 다시 배달원이 갈 거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아내가 알려준다. 

다음 주 화요일까지 안가고 지금 그 노트북으로 이런 잡소리를 쓸 수 있는 것은 그런 소동 때문인 셈인데, 우는 아이 떡 하나 더준다는 옛 속담도 함께, 약간은 씁쓸하게 상기하는 중이다. 사실 굳이 이 블로그가 아니더라도, 노트북이 급히 필요하긴 했다. 아내가 쓰던 맥북이 며칠 전에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재작년에 물 한 컵을 고스란히, 예기치 않게 드시고 죽었다가, 며칠 뒤 기적적으로 회생한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그 때 받은 부상(?)이 도진 모양이다. 켜지지도 않고 삑삑 울기만 한다. 애플 수리점에 모시고 가야겠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거라는 예감에다 귀차니즘까지 더해 뭉기적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