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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이런 반성문

아침에 게으르게 눈을 뜨고 페이스북의 포스팅을 훑다가 잠이 확 달아나는 글을 접했다. 대한항공 조현민 전무라는 자의 소위 '반성문'이다. 조현민은 '땅콩 회항' 사건으로 대한항공에 적어도 수천 억 규모의 (부정적) 광고 효과를 몰고온 조현아의 여동생이란다.


이 유치 찬란한 SBS의 아부성 자막도 참고 보기 어렵다. '쿨~하게 인정'이라고? 이게 대체 무슨 '정면 돌파'냐? "제 능력을 증명할 때까지 지켜봐 주세요!"라고? 아니 회사가 무슨 네 연습장이냐? 그래서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능력을 쌓고 증명해가며 대리 달고 과장 차장 부장 승진해서 전무 되는 것 아닌가? 


다음은 조현민 전무의 '반성문' 전문.

우리 마케팅이나 제 밑에 있는 직원들에게 항상 제일 미안한 마음은, 아직도 미흡하고 부족한 조현민을 보여드려서예요. 그래도 2007 조현민보다는 조금 더 전문적인 2014 조현민이지만 2014 조현민은 여전히 실수투성이네요.

이런 상황에서 약한 모습? 보이는게 맞나 생각이 들면서도 손해는 봐도 지금까지 전 진심이 항상 승부하는 것을 봤습니다. 누가 봐도 전 아직 부족함이 많은. 과연 자격이 있냐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마케팅이란 이 중요한 부서를 맡은 이상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여기까지 왔어요. 그리고 전 이유 없이 마케팅을 맡은 건 아닙니다.

매일 매주 매월 매년 어제의 실수 오늘의 실수 다시 반복 안 하도록 이 꽉 깨물고 다짐하지만 다시 반성할 때도 많아요. 특히 우리처럼 큰 조직은 더욱 그렇죠. 더 유연한 조직문화 지금까지 회사의 잘못된 부분들은 한사람으로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임직원의 잘못입니다.

그래서 저부터 반성합니다.

[출처] 조선닷컴




다음은 무려 '전무' 씩이나 되는 사람의 소위 '반성문'에 대한 내 생각.


이 글, 특히 조현민 '전무'의 소위 '반성문'이라는 글을 보다가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앞에 '전무', '반성문'이라고 홑따옴표를 붙였다. 이를테면 방점이다. 주목하시라고. 어디 20-30명의 직원을 가진 중소기업도 아니다. 언필칭 대한항공이다. 그 대기업 '전무'라는 자의 글 솜씨가 이렇다. 게다가 이게 '반성문'이라고? '반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다 반성문인가?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가 싶어, 아내에게 문제의 반성문을 보여줬다. 촌평은 이렇다. "얘 나이가 몇 살이야, 열 살이야?"


글은 그 사람의 속을 드러내 준다. 맞춤법은 틀려도, 문장의 호응 관계에 문제가 있어도, 글은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의 수준과 사고의 풍경을 훤히 내비친다. 우리가 못 배우신 어머니나 아버지의 짤막한 편지 글을 읽고서도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그 글에 진성성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꼭 내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더라도, 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조현민 '전무'라는 자의 글은, 먼저 첫 느낌은 어디 커피숍에 앉아 휴지 위에다 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쓴 낙서 같다. 중학생의 유치찬란한 일기장처럼 읽히기도 한다. 더 최악인 건 이 글 안에 아무런 메시지도, 진정성도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뭐?


임원 모두의 책임이라고? 왜? 무엇 때문에? 설명이 없다.


조현민이라는 제 이름은 수도 없이 나온다, 그 짧은 반성문 아닌 반성문에... 자기 이름 석자를 무슨 간판처럼, 혹은 깃발처럼 내비치고 흔들어대는 것은 그만큼 자의식이 강하다는 거고, 내가 갑이다라는 선언이자, 오만방자한 심리의 발동이다.


그리고 전 이유없이 마케팅을 맡은 건 아닙니다. 오케이. 그 이유가 뭔데?


그래서 저부터 반성합니다. 오케이.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무엇을 바꾸겠다는 건데?


이런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자가 '전무'라는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한없이 심난하고, 저런 저급하고 누추한 자를 바라보며 '제 밑에 있는 직원들'의 한 사람으로 지금도 불철주야 뛰고 있는, 내 친구를 문득 떠올리니 참담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