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기자로 일하던 시절 만났던, 참 좋은 분을 우연히 다시 (인터넷으로) 만났다. 한국에서 기업을 열심히 일구고 계신 그 분께 보낸 메일의 일부를 따왔다.
2001년에 한국을 떠났으니 한국을 잊을 만도 하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막상 살아보니 그게 안됩니다. 수구초심이라는 말이 그래서 있는가 봅니다. 국적은 오래 전에 캐나다로 바뀌었지만 마음은, 가슴은 늘 한국 쪽을 향합니다. 죽을 때까지 그렇겠죠. 그러다 보니 한국 소식에 관심도 가고, 그래서 한국 뉴스를 자주 챙겨 봅니다. 그러다 보니, 이러다 내가 속병 나지, 싶을 정도로 화가 나고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삼아, 그곳 소식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 애씁니다.
며칠 전부터 아내와 재미있게 본 게 '미생'이라는 드라마입니다. 현실을 과장한 대목도 많지만, 그래도 현실을 참 그럴듯하게 그렸다 싶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서,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저는 그 드라마를 보면서 제목을 '미생'이 아닌 '미사'로 바꿔야 할 거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사람들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러니까 덜 성숙한 게 아니라, 사실은 사회가 미개한 거다. 저건 사회가 야만적이어서 그런 거다, 라는 생각. 미개한 사회, 야만적인 사회, 그런 사회가 그저 열심히 살려는 사람들을 저렇게 짐승으로 내모는 거다, 라는 생각...
한국의 드라마 같은 변화와 상황에 견주면 캐나다는 잔잔한 호수 같습니다. 혹은 졸졸졸 흘러가는 시냇물 같아요. 앞이 보이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이 됩니다. 캐나다라고 말도 안 되는 사태가 안 나라는 법 없고, 싸이코패스라고 불러야 마땅할 인간들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런 사태나 인물들이 어느 정도 통제되고 관리됩니다. 그런 인물이 사회 지도층까지 올라가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지요.
정치적인 얘기는 그만하겠습니다. 다만 하나 더, 저와 아내는 세월호 참사를 보고 들으면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자식 둔 부모라면 어찌 비통해 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불쌍한 부모들에게, 생떼 같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녀들을 잃은 부모들에게 '지겹다'라고 말하는 자들이 있는 사회, 그런 부모들을 범죄자로 내모는 권력층을 보면서, 저는 아, 캐나다로 이민 오기를 정말 잘했다, 라고, 부끄럽지만 다행스러워 했습니다. 저희 큰 애가 오티즘이어서 나이는 열여섯에 몸집도 저보다 훨씬 더 크지만 지능지수는 두세 살 아이 정도밖에 안됩니다. 저 아이를 데리고 아직까지 한국에 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캐나다에 오면 왜 이렇게 살 만한 물건이 없냐, 백화점이 왜 이렇게 초라하냐, 이젠 한국이 더 잘 나가는 선진국, 이라고들 자주 떠벌린답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기준은,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풍부한 물산과 명품 백, 인공으로 뜯어 고친 얼굴이나 몸매와 보톡스로 팽팽해진 20대 같은 60대의 외모가 아닙니다. 사회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가, 또 사회의 약자가 얼마나 보호 받고 배려 받는가야말로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국 사회는 후진국도 안되는 야만 사회에 다름아닌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드라마 미생을 보면서, 속으로 자주 물었다. 내가 아직 한국에 살고 있었다면? 그러나 답은 그저 안갯속일 뿐이다. 가지 않은 길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