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루이즈 수아레즈의 개 같은 사건이 연일 월드컵 뉴스의 앞머리를 장식한다. 이태리가 이기든 우루과이가 이기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기는 구경꾼의 눈에는 저런 짐승스런 작태가 '논란'이 되고 '논쟁'이 되고, 정의니 불의니, 심지어 음모 이론까지 동원되는 것이, 입맛이 쓴 수준을 넘어 그저 역겹다고밖에 말하지 못하겠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조지 오웰이 예언했던 1984년의 세상보다 더 많은 비디오 카메라들로 뒤덮인 세상이다. 더더군다나 수십억 명이 불을 켜고 지켜보는 월드컵 경기는 최첨단 비디오 장비들로 숱한 각도에서 찍히고, 초슬로우 모션으로 재생되고 또 재생된다.
수아레즈가 이태리의 수비수 어깨를 개처럼 깨물었다는 '사실'은, 그저 느린 장면을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그 재생 장면이 보여주는, 수비수의 어깨에 이빨을 박는 수아레즈의 머리 움직임으로, 깨물려 소스라치게 놀라며 수아레즈를 뿌리치는 이태리 수비수의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더없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난다. 게다가 이 인간 - 아니 개 같은 인간, 아니 아니, 인간의 탈을 쓴 개? - 이 상대 선수를 물어뜯은 전력이 이미 두 차례나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태의 전말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의 별명 중 하나가 '드라큘라'다. 왜일까?).
누가 진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했는가? 누가 상식은 누구나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는가?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라프가 만든 위 유튜브 비디오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게 다 헛소리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집단 심리의 무서움, 특히 민족주의, 혹은 애국심이 끼어들면 어떤 범죄도 너무나 허술하고 쉽게 용납되고 정당화되고 묵인되고 변명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류 역사의 끔찍한 전쟁, 학살, 반인륜적 범죄들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지의 단서를, 루이스 수아레즈의 역겹고 유치하기 그지없는 에피소드가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컨대 우루과이 팀 감독은 사태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이건 월드컵이다. 싸구려 도덕이 아니다"(This is a World Cup. This is not about cheap morality)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아 그런가? 대체 언제부터 월드컵이 윤리 도덕을 넘어선, 정의와 불의를 넘어선 지고한 가치가 돼 버린 걸까?
수아레즈 사태는 지금 어떻게 됐느냐고? 비디오 자료가 너무나 명백하게 뒷받침한 '파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처벌은 불가피했고 그래서 FIFA는 4개월 출장 정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그런 처분 - 그게 너무 가혹했느냐, 아니면 솜방망이 처벌이었느냐는 차치하고 - 을 받은 수아레즈는 우루과이에서 희생양을 넘어 영웅이 됐다. 그가 귀국할 때 공항에는 그를 영웅처럼 떠받들며 치하하는 정신병자들로 가득했다. 거기에 아이를 무등 태운 인간들도 있었다. 저 아이들이 배우게 될 윤리 의식, 정의와 불의는 무엇일까? 저런 장면이 꼭 우루과이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데, 거의 모든 나라, 인간 종자들에게 해당될 수 있으리라는 데 더 큰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 모골이 송연했다.
오늘 뉴스를 보니, 수아레즈가 뒤늦게 상대 선수를 깨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의도적인 게 아니라 균형을 잃어 넘어지면서 어깨에 이빨이 박힌 것이라고 변명했단다. 아, 이러면 정말 더 싫어진다. 루이스 수아레즈의 축구 재능을 누가 의심하랴, 영국 전에서 기록한 두 골의 득점 장면만 봐도 '천재'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정도의 굉장한 선수다. 하지만 선수 외적인 면의 행태는 그런 감탄을 다 무효화하고도 모자라, 저런 너절한 인간이 어떻게 저런 재능을 갖게 됐을까, 한탄스러워진다.
띄엄띄엄 축구 경기를 본다. 전경기를 보는 경우는 별로 없고, 나중에 하이라이트를 챙겨보는 식이다. 메시에게 호감을 갖고 있어서 그가 이끄는 아르헨티나가 우승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지만 뭐 그렇다고 애면글면 하는 수준은 결코 아니다.
아마도 그렇게 데면데면한 감정 때문에 한국 축구에 대해서도 인색하고 야박한 평가를 하게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어쨌든 한국은 월드컵 본선에 나올 만한 수준의 팀이 결코 아니었다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선수들이나, 특히 홍명보 감독에게 책임을 묻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한국 정치판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 이전투구의 아사리판이 한국 축구협회에서 그야말로 유구하게 진행되어 온 탓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꾸준한 준비 없이 벼락치기로 얼렁뚱땅, 뭐 어떻게 되겠지, 라는 부실공사 사고 방식은, 한국의 축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현 박근혜 정권이 징그러울 정도로 명징하게 보여주는 적폐의 한 몰골을, 부실하고 엉성한 한국 축구가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한국 축구가 제자리 걸음, 아니 뒷걸음을 쳐 왔다는 점은 다른 아시아 지역 나라들의 축구 실력을 통해 상대적으로 더욱 명백하게 드러났다. 보았는가, 호주 축구를? 아르헨티나와 대등한 경기를 펼친 이란 축구는? 일본 축구는?
올림픽이 그렇고 숱한 스포츠 경기가 그렇듯이, 도도한 상업화의 물결은 막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월드컵은 그런 상업화의 한 정점을 보여주는 '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브라질에 석패한 칠레나, 16강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32강 전에서 인상적인 경기를 펼친 호주 같은 나라가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별로 유명한 '스타'가 없는 그 팀들은 정말 엄청난 패기와, 참 철지난 얘기처럼 느껴지는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멋진 경기를 펼쳐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가 과거보다 퇴보했다고 보는 이유는 과거보다 표나게 나아지지 못한 기량 주제에, '맨 땅에 헤딩' 정신으로 땀나게 뛰던 선배 선수들의 패기와 악바리 근성마저 어딘가에 멀리 내팽개쳐 버렸기 때문이다. (영화 '넘버 3'에서 송강호의 더듬더듬 톤으로) 최영의 선생님이 말씀하셨지...허, 헝그리, 헝그리 정신! 그게 필요하다...
사족. 지금 영국에서는 윔블던 테니스 경기가 한창이다. 나는 월드컵보다 그게 더 재미있다. 로저 페더러가 이번에도 우승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보기에 그의 테니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마도 테니스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우아하고 예술적인 테니스다. 오늘 산티아고 지랄도와 펼친 경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윔블던 사이트의 경기 하이라이트). 그의 그런 테니스를 앞으로 몇 년이나 더 볼 수 있을까? 그래서 더 관심이 간다. 끝이 보이기 때문에 한 순간순간이 더 소중하다. 마이클 조던의 은퇴가 가까워 오던 2003년의 그 시절처럼...
헛소리는 여기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