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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지금 아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1월 첫 주가 정신없이 간다. 휴일 중간에 낀 평일을 휴가로 잡아 열흘 넘게 쉬는 바람에 한없이 한가하고 게으른 2주를 보낸 탓이다. 몸은 그 부담없고 느린 일상에 아직도 젖어 있는데, 현실의 상황은 한시라도 빨리 평상시의 업무 상태로 복귀하라고 심신을 몰아부친다. 


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자전거 출근자의 숫자가 작년 - 이라지만 실제로는 불과 며칠 전인 12월 - 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지난 며칠간 비를 뿌리지 않은 밴쿠버의 날씨와, 동지를 지나면서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한 절기 변화가 한몫 했으리라 짐작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연초’라는 데 있을 터이다. 연초만 되면 헬스클럽이나 피트니스 센터, 커뮤니티 센터 등이 평소보다 두세 배 더 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새해에는 운동을! 새해에는 금연, 금주를! 등등.



새해 결심, 새해 목표… 해마다 새로운, 아니 십중팔구는 새롭지 않은, 결의를 다지고 목표를 세우지만 대개는 며칠 못가 그토록 탈피하고자 했던 과거의 자신으로, 과거의 행태로 회귀하는 우리 모습을 보노라면, 자연스레 시지푸스의 도로(徒勞)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게 온전히 도로였는지, 아니면 다만 며칠이라도 다른 시도를 했다는 자체로 일정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해야 할지는 분명치 않다.


사람이 - 사실은 사람을 포함한 동물의 본성이 - 멀리 내다보고 계획하는 데 젬병이라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규명되었다. 5~10년짜리 장기 계획은 아예 논외로 치고, 당장 1, 2년 앞의 자신을 내다보고 대비하는 능력도 형편 없는 수준이다. 운동을 예로 든다면, 사람이 1년, 혹은 5년, 더 나아가 10년이나 20년 뒤의 자신이 어떤 건강 상태일까를 잘 예측하고 이해한다면, 술로 날을 지새우고, 불규칙한 생활로 몸을 함부로 굴리고, 귀찮거나 날씨가 안 좋다는 등의 온갖 핑계로 운동을 회피하는 일은 벌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이 그러한 미래를 전혀 모르거나, 내가 지금처럼 생활하면 나중에 어떻게 될지 짐작하지 못해서 그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미래의 일보다 지금 당장의 편의가, 현재의 쾌락과 안온이 더 낫다고 생각할 뿐이다. 미래는 말 그대로 아직 오지 않은, 아직 현실화하지 않은 오늘이다. 내일, 혹은 한두 시간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조차 모르는 판국에 5년 뒤, 10년 뒤를 걱정하게 됐어? 난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즐길거야, 라고 자못 철학자연 하는 태도로 스스로를 정당화할 수도 있다. ‘즐긴다’는 대목은 접어두자. 하지만 그게 과연 ‘최선’일지, 특히 5년이나 10년 뒤의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것인지는 사뭇 의문이다.


그런 면에서는 나도 마찬가지다. 달리기를 다시 시작한 게 불과 4년 전이다. ‘다시’라고 표현한 이유는 ‘구보 소대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군대 시절을 달렸던 시기로, 꾸준히 운동을 한 시절로 상정했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달갑지 않고 귀찮다는 뜻에서 그런 별명을 붙였겠지만, 나는 그게 싫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건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제대한 뒤 20년 가까이 이렇다 할 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자전거 타기도 마찬가지. 본격적으로 페달을 밟은 시간은 채 1년도 안 된다. 이게 내 습관이 될 수 있을까? 어제에 이어 오늘도, 밴쿠버는 짙디 짙은 안갯속이다.


"Motivation is what gets you started. Habit is what keeps you going."

- Jim Ryun, world-record middle-distance runner



결심은 쉽다. 목표를 세우기도 쉽다. 문제는 그것을 습관으로 만드는 일이다. 연구에 따르면 그런 결심이나 동기를 습관으로 만드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짧게는 18일부터 길게는 224일까지 걸린다고 한다. 224일이라면 6개월이 넘는 긴 시간이다. 그런데 그렇게 애써 만든 습관의 경우에도, 그것 버리기는 종종 지나치게 쉽고 간단하다. 흡연의 경우가 그렇고, 운동도 마찬가지다. 심신에 작동하는 (부정적인) 유혹의 힘이 강할수록, 그것을 완전히 떨쳐내기는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몸에 좋은 약은 쓰다, 라는 말은 여기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것이어서, 설령 습관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늘 ‘의식적인’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늘 깨어있고 건전하기만 하던가!


사실 더 좋은 방법은 어렵사리 체득한 습관을 즐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은 것이, 그 '어렵사리 체득한 습관'의 많은 부분은, 유지하려는 의식적인 노력 없이는 물거품처럼 허무하게 꺼져버릴 공산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하면, 계속 습관으로 유지하기에는 귀찮고, 힘들고, 심지어 고통스러운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가령 달리기만 해도, '그거 중독이야!'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 나도 종종 그렇게 말해버리곤 하지만 - 그렇다고 늘 달콤하고 쉬운 것은 결코 아니고, 실상은 힘들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지? 라는 의문이 고개를 쳐들 때가 실은 더 많다. 그런 순간조차 포용할 수 있다면, 즐길 수 있다면, 우리들 사는 게 다 양과 음, 웃음과 울음, 고통과 쾌락의 잡탕이 아니겠는가, 라고 생각하며, 자못 대인배답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래서 자잘한 그 순간 순간들을 즐길 수 있다면, 스스로의 마음을 그렇게 잡을 수만 있다면 아마도 그게 훨씬 더 바람직한 '습관 유지' 방식이 될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목표로 세웠든, 어떤 결심을 세웠든, 중요한 것은 그러한 목표와 결심을 끊임없이 의식해서, 스스로를 닦아세우는 일이 될 터이다. 거기에는 일정 수준의 당근도 필요하겠지만, 결국은 본인의 의지력의 문제다. 자기 자신과 벌이는 싸움. 꼭 이겨야 할 필요는 없다. ‘지지 않겠다’는 마음이면 된다 (내가 마라톤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1등을 못한다고 해서 지는 경기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