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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린 캐년 공원 산보

9월1일이 노동절이어서 월요일까지 쉬는 '긴 주말'(Long Weekend)이었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기가 웬지 미안하고 손해보는 느낌이어서 점심 직전, 근처 린 캐년(Lynn Canyon)의 트레일을 잠깐 걷다 오기로 했다. 막내 성준이는 숲길 걷는 게 늘 마뜩찮다. 지루하고 재미없다며, 'boring'을 연발한다. 그래,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런 거다. 숲이 많으면 도심이 그립고, 도심에만 있으면 숲이 그리운 거다. 



카메라를 나무 난간 위에 놓고 타이머로 찍었다. 가족 사진이다. 성준이는 늘 찌푸린 표정이다가도 사진 찍는다고 하면 짐짓 '치이즈~!' 표정을 만들 줄 안다. 동준이는 카메라를 들이대기만 하면 설령 그게 저를 향한 게 아닌 경우에도 '치즈!'라고 말하며 고개를 쳐든다. 



린 캐년 공원의 입구를 통하지 않고 민가와 연결된 다른 쪽 통로를 이용했다. 내가 뛸 때 자주 이용하는 코스라 이곳 지리는 밝은 편이다. 한여름에는 아침에도 훤해서 뛰기가 좋았는데 요즘은 너무 어두운 데다 곰이 나올 수도 있어서 잘 오지 않는다. 새벽 다섯 시 무렵이면 곰도 잠자기 바쁘려나?



시킨 것도 아닌데 둘이 손을 잡았다. 평소에 늘 데면데면하고, 특히 성준이는 동준이에게 별로 살풋하지 않은데... 잠깐이라도 저렇게 손잡고 걷는 뒷모습이 여간 흐뭇하고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 앞으로도 늘 그렇게 살아야 한다. 특히 성준이 너는 형을 잘 건사하고 보호해 줘야 해. 



온대 우림 기후인 밴쿠버생육 기간도 길다. 그러니 나무들도 이처럼 크고 풍성하다. 나무들 자라기에 유독 척박한 에드먼튼 지역에 살다가 와서 그런가, BC 지역의 거수들이 더욱 인상적으로 아름답다. 



공원이라지만 여기에도 언덕이 많고 계단이 많다. 성준이가 찌푸린 표정으로 산보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캠프에서 체험했던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지만 부모에겐 가당치 않은 주문이었다. 더구나 노동절이니 문도 열지 않았을테고...



쌍둥이 폭포(Twin Falls)에 난 다리에서 내려다 본 계곡. 물이 참 맑다. 



구불구불 높낮이 다양한 트레일의 어느 자락에선가, 엄마와 두 아들을 찍었다. 성준이는 다시 접대용 미소, 동준이는 카메라를 보면 늘 잡게 되는, 턱을 약간 쳐든 포즈. 



덩굴성 단풍나무 (Vine maple)가 이 지역엔 유달리 많다. 한편 에드먼튼에서는 추워서 단풍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곳곳에 전나무, 소나무, 단풍나무들이 앞다퉈 자라는데, 하나같이 크고 두텁다. 



린 캐년 공원에도 흔들흔들 현수교가 있다.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카필라노 현수교 (Capilano Suspension Bridge)와 달리 이용료도 없다. 아내는 이런 다리라면 질색을 하는데, 쌍둥이 폭포에 있는 다리로 계곡을 건넌 다음이어서, 세워둔 차로 돌아가려면 이 다리를 탈 수밖에 없었다. 관광객들이 참 많았다. 그 중 40% 정도는 중국인이었다.



차로 돌아가는 길이다. 내가 뛸 때는 단 한 대의 차도 보기 어려웠는데 - 새벽임을 감안하더라도 - 오늘은 몇km나 되는 트레일 한 쪽이 차들로 빼곡했다. 이 사진은 그렇게 늘어선 차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 있어서 찍었다. 린 캐년 공원이 이렇게 붐비는 곳이었구나! 아마 9월이 가면 공원은 다시 적막강산이 되겠지.



공원의 트레일 곳곳에 붙은 '곰 주의' 간판. 곰을 만나면 어떻게 하라는 조언, 음식을 줘서는 안된다는 당부, 어디로 연락하라는 정보 따위가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