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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산타의 편지 "산타 답장은 줬어?' "아, 아직..." 아내가 화들짝 놀라며 편지를 찾는다. 이제 줄 때가 됐다는 판단이다. 성준이가 예년보다 일찍, 서둘러서 산타 클로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갖고 싶은 레고 장난감이 너무 많은데 그걸 엄마 아빠가 다 사줄 리도 없고, 더구나 비싸다고 말하면 살짝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데, 결국 기댈 언덕은 연중 최대 축제인 크리스마스이고, 원하는 건 무엇이든 알아서 주시는 것 같은 마이티 산타 할아버지가 아니겠는가. 아래 편지는 지난 10월 중순에 성준이가 쓴 편지. 열심히 코치는 하지만 수신인에 대한 배려와 허사가 너무 없이 즉각 본론으로 들어가, 나는 레고 리퍼블릭 건쉽이 갖고 싶다고 요구한다. 이 제품은 더 이상 만들지 않기 때문에 산타가 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아빠가 .. 더보기
쥐스탱 트뤼도라고? 선거가 끝났다. 하루아침에 집권당이 바뀌었다. 10년 가까이 집권해 온 스티븐 하퍼의 보수 토리당이, 진흙탕 흑색 선거전 대신 긍정적 정책 제시하는 데 주력해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한 저스틴 트루도의 자유당에 대패했다. 캐나다는 올해 43세의 젊고 패기 있는, 그러나 실제 정치력은 전혀 검증되지 않은 트루도를 새 총리로 뽑은 셈이다. 나는 트루도보다 토마스 멀케어가 트루도보다 더 경륜과 정치력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그가 이끄는 신민당 (NDP)를 지지했지만 초반의 기세를 유지하지 제대로 못한 데다, '될 데를 밀어주자'는 전략적 투표 탓에 자유당에 대거 표를 빼앗기면서 제3당에 머물렀다.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캐나다의 건전한 정치 문화가 더없이 좋다. 정치를 못한다 싶으면 가차없이 표로 심판해 .. 더보기
지진 대피 훈련 오전 10시15분, ‘BC 지진 대피 훈련’ (The Great BC Shakeout)이 있었다. 딱 1분간 하는 훈련. Drop, Cover and Hold On. 대피 요령이다. 주변 정황을 재빨리 살펴서 단단하고 안정된 지지물 아래 들어가 지진이 멈출 때까지 기다리는 게 전부다. 사무실의 경우 책상 밑으로 들어가는 게 상책. 이렇게 권하는 핵심 이유는, 어딘가로 움직이려고 하기보다는 먼저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데 있다. 사전 예고 없이 일어나는 지진은 워낙 강력해서 어딘가로 뛰거나 심지어 기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바닥에 쓰러질 공산이 더 클 수 있다는 얘기다. 지진의 최초 양상이 어떨지 알 수 없으므로 즉각 엎드려서 책상이나 무엇을 꼭 붙들고 충격에 대비하라는 조언이다. 1분.. 더보기
알차게 보낸 주말 어떻게 주말을 보내야 '알차게 보냈다'라는 평가를 받는가? 나만의 사전에 따르면, 뭔가 집안일을 하나 둘쯤 해서 아내에게 생색을 낼 만한 '표'가 나야 한다. 내가 얼마나 먼 거리를 뛰었느냐, 자전거를 탔느냐 따위는 '알차게 보냈다'라는 판단의 기준에 들기는 하지만 가산점이 거의 없다. 우선순위에서도 한참 밀린다. 점수를 많이 따려면 뭐든 집안일을 해야 한다. 일요일 아침에 뛰다가 만난 새들. 템플턴 고등학교 앞 보도에 조성된 장식물인데 유난히 올빼미가 많았다. 아마 올빼미가, 그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지혜나 지식을 상징하는 것처럼 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이미지 관리 면에서는 올빼미가 가장 남는 장사를 한 새다. 각설하고, 그런 기준에 따르면 이번 주말은 퍽 알찼다.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 더보기
아내가 돌아왔다 아내가 돌아왔다. 얼굴이 별로 좋지 않다. 피로와 슬픔이 뒤범벅 된 얼굴이 어찌 좋을 수 있으랴… 아내의 공항 도착 시간이 12시30분인데 성준이를 학교에서 데려와야 하는 시간이 2시40분, 동준이의 스쿨버스가 집에 들르는 시간이 그 직후다. 아내를 공항으로 데리러 나가기가 어정쩡했다. 공항까지 가는, 혹은 공항에서 집까지 오는, 시간은 대략 한 시간 안팎을 잡는데, 아내가 비행기에서 내려 세관을 통과해서 공항 밖까지 나오는 시간은 종잡기가 어렵다. 여기에 부친 짐을 찾아야 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따라서 큰 짐만 없다면 공항에서 전철 타고 워터프런트 역까지 와서 시버스로 노쓰밴으로 오는 게 더 낫겠다는 계산이었다. 2시30분에 시버스가 론스데일 부두에 닿았고, 곧 아내가 나왔다. 엇, 그런데 제법 큰 이.. 더보기
로티세리 치킨 나는 살림에 서툴다. 그 살림 중 '요리'라는 대목에 초점을 맞춘다면 서툴다는 표현조차 아까울 정도로 초라하다. 결혼하기 전까지 10년 넘게 싱글로 객지 생활을 했지만 스스로 요리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조차 없다. 그 게으름, 그 호기심 결핍의 대가를, 아내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톡톡히 치른다. 월요일 새벽녘, 문득 잠이 깼다. 성준이 점심을 뭘로 싸지? 가장 먼저 떠오른 물음이었다. 동준이는 보조 교사가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사주기로 했으니 그렇다치고, 성준이는 뭘 싸줘야 하나? 따지고 보면 별일도 아닌데 그게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다음 저녁은, 내일 아침은, 점심은, 저녁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젠장... 아내가 꼼꼼히 메모해 둔 내용을 본다. 아내가 부재한 나흘 동안.. 더보기
잠 잠 잠... 한국에 머무를 때,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여성안심귀가길'이라는 글자가 퍽이나 낯설고 기묘하게 여겨진 기억... 지난 토요일(8월29일) 오후, 정말 어렵사리 캐나다로 돌아온 이후 일주일 내내 잠만 잔 것 같다. 자고 자고 또 자고... 그런데도 피로는 전혀 풀린 것 같지 않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퇴근해 저녁을 먹고 나면, 금새 졸음이, 그야말로 밀물처럼 몰려온다. 식곤증 때문일 수도 있지만 밀려드는 수면욕의 강도가 속수무책으로 강하다. 도무지 안 자고 버틸 기력이 없다. 방으로 들어가 쓰러지듯 잠에 빠진다. 그리곤 어느 순간 잠깐 눈을 뜬다. 시계를 보니 오후 10시. 3,40분 뒤척이다 또 잔다. 다시 눈을 떠 보면 자정. 또 3, 40분 뒤척이며 잠깐 킨들이나 넥서스 7을 보다가 잠을.. 더보기
준준이의 근황 날씨에 견준다면 동준이는 흐리거나 비, 성준이는 대체로 맑음이다. 아니, 요즘처럼 가뭄이 자심해서 비가 고대되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서로 바꿔야 좋을까? 동준이는 엊그제 또 발작을 일으켰다. ‘또’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채 한 달도 안 돼서 다시 발작을 일으킨 탓이다. 이전 발작은 6월28일, 내가 하프마라톤을 뛰던 날, 아내가 몰던 차 안에서 일어났다. 아침 저녁으로 하루 두 번씩 복용하는 약의 강도를 다시 높여 보라는 게 의사의 조언인데, 나나 아내나 불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다. 말귀도 못 알아듣고, 혹은 무시하고, 걸핏하면 쿵쿵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러대고, 시도때도 없이 ‘Washing machine~!’을 외치며 세탁기 사용을 엄마에게 강요해서 부아를 돋우는 녀석이지만, 이렇게 발작을 일으킨 .. 더보기
자전거 자전거 7월14일의 일기 - 아내의 자전거아내의 자전거 Giant Alight 3를 타고 출근했다. Money talks라는 말은 거의 어디에나 적용되는 것 같다. 자전거도 예외가 아니었다. 불과 몇백 달러 차이인데 인디 2와 표나게 느렸다. 그러면서도 힘은 더 들고. 여성용 안장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역시 그 가격대여서 그런지 - 느낌으론 전자일 가능성이 더 큰 것 같다 - 엉덩이가 아팠다. 치과, 가정의, 물리치료오랜만의 출근인 것 같다. 지난 주의 절반을 쉬었고 어제도 치과 가고 가정의 만나고 물리치료 받느라 집에 있었다. 크라운을 씌우는,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 될 줄 알았던 이 치료는, 근관(根管, root canal) 치료가 필요한 상황으로 판명되었다. 그러다 보니 거의 2, 3주 간격으로 치과를 찾았.. 더보기
밴쿠버 섬 휴가 (2) 부차트 가든, 그리고 빅토리아 6월23일(화) - 부차트 가든화요일 아침, 파크스빌을 나와 빅토리아에서 멀지 않은 '브렌트우드 베이'라는 동네로 갔다. 토론토에 관광을 가면 나이아가라 폭포를 빼놓을 수 없듯이, 밴쿠버 섬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 혹은 그런 것처럼 여겨지는 - 곳이 있다. 바로 부차트 가든 (Butchart Garden)이다. 로버트 핌 부차트와 그의 아내 제니 부차트가 1900년대 초, 본래 석회암 광산이던 곳을 개조한 부차트 가든은 문을 열자마자 높은 인기를 누렸고, 지금은 매년 백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밴쿠버 섬 최고의 관광 명소로 자리잡았다. 역사적 중요성 때문에 국립 사적지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후배도 "밴쿠버 섬에 오면 꼭 가봐야 되는 데가 있다던데...무슨 가든이라고 하던데요?" 하며 부차..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