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3/09

비 내리는 밴쿠버에 오다 리치몬드의 밴쿠버 국제공항으로 내려앉기 시작하는 웨스트젯.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고, 간혹 거센 바람이 불어 기체를 불안정하게 만들기도 했다. 9월29일/ 일/ 흐림, 비 약간 밴쿠버행 웨스트젯에 앉아 있다. 태평양 시간으로 오전 10시44분, 산악 시간대로는 11시44분, 점심 때다. 머리속이 멍하다. 내일부터 새 직장에 출근이다. 하지만 별다른 실감은 없다. 아직은 얼떨떨할 따름이다. 공항으로 오는 미니 밴 안에서, 성준이는 아빠만 밴쿠버에 가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자기도 같이 가면 안되겠느냐고 묻는다. 다음 주 목요일에 다시 볼 거라고 하자 금방 진정이 된다. 엄마 컴퓨터로 라퓨타에 나오는 로봇을 볼 수 있느냐고 또 묻는다. 안된다고, 아빠 컴퓨터로만 된다고 대.. 더보기
SOLD!! 드디어 집이 팔렸다. 지난 목요일 (19일) 집앞에 'For Sale' 간판을 내건 지 꼭 8일 만이다.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납덩이 하나 내려놓은 듯 속이 후련하다. 야호~! 아니, 만세~!라고 소리라도 마음껏 내지르고 싶은 기분이다. 아내는 집이 최종적으로 팔렸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밴쿠버의 부모님께, 또 한국의 언니들께 그 낭보를 달뜬 목소리로 전했다. 집을 과연 얼마나 빨리 팔 수 있을까, 어느 정도나 손해를 감수하고 팔아야 할까 걱정했다. 2009년 구입가는 35만3천달러. 여기에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부동산 중개료 1만5천달러를 더하면 아무리 못 받아도 36만8천달러는 받아야 그나마 큰 손해 안보고 팔았다고 할 수 있을 터였다. 이사 들어오면서 집안 전체를 마루바닥으로 바꾸느라 소비한 1만달러.. 더보기
송별회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한국인 동료들. 온타리오 주정부에서 일하면서도 단 한 명의 한국 사람도 만나지 못했는데, 그보다 도리어 더 규모가 작은 앨버타 주정부에서는 제법 많은 한국 사람들을 만났다. 이번 주 내내 점심 도시락을 쌀 일이 없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덜 미안했다. 지난 한 달간 집을 팔기 위해 짐 싸고, 버리고, 옮기고, 숨기고, 정리하느라 무진 애를 쓴 아내는, 어제 저녁 결국 몸살 기운을 드러내고 말았다. 지난 월요일에 집을 사겠다는 제안(오퍼)이 두 개 들어왔고, 두 제안 모두 좋은 조건이어서 더없이 다행스러워했지만, 집을 완전히 팔기 위해서는 '주택 검사'(home inspection)라는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집에 큰 하자 - 특히 구조상의 결함 - 가 없다는 주택검사 전문가의 판정이 .. 더보기
드럼헬러 캐나다의 크고 작은 도시들에는 유난히 '무엇무엇의 수도' (... Capital of Canada, 혹은 World) 같은 자가발전형 칭호가 많다. '랍스터의 수도', '나무들의 수도', '토너먼트의 수도', '와인의 수도', '미네랄의 수도, '중유의 수도', 심지어 '하루살이(shadfly)의 수도'도 있다. 드럼헬러는 '세계 공룡의 수도' (Dinosaur Capital of the World)를 자임하는데, 대개는 그 명칭이 스스로를 과대포장하게 되는 경우와 달리, 이곳만은 명실상부한 '세계 공룡의 수도'라고 할 만하다. '공룡의 계곡' (Dinosaur Valley)이라는 별칭이 시사하듯, 드럼헬러는 그야말로 공룡의 천국, 아니 공룡 화석의 보고다. 전세계 어느 곳도 드럼헬러에 버금갈 만한 양과.. 더보기
캘거리 주말 동안 집을 비워야 했다. 팔려고 내놓은 집은 부동산업체에서 그럴듯해 보이라고 꾸며놓은 (staging) 온갖 장식들 때문에 도무지 마음 편하게 생활할 형편이 못되었다. '손 대지 마시오' '앉지 마시오' '기대지 마시오' 같은 경고문들로 가득찬 건물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거실의 소파는 초대형 쿠션 네 개에 점령되었고, 늘 몸을 던지듯 그 위에 앉곤 했던 동준이는 갑작스레 자리를 차지한 쿠션들 앞에서 감히 앉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마스터 베드룸 (안방) 또한 장식된 요와 쿠션, 베개들 때문에 접근 불허였다. 그걸 치우고 잠을 잔 뒤 다시 장식 상태로 복원하는 데 드는 노력과 시간이, 차라리 그걸 그대로 두고 옆 방에 요를 깔고 자는 것보다 훨씬 더 길고 고될 듯했다. 토요일 오후에 누군가가 집을 .. 더보기
이사 스트레스 어딘가에 분명히 저장해 두었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다. 명색이 '정보 관리'(information management) 전문가라는 자가, 자기 정보도 제대로 못찾아 쩔쩔매는 꼴은 민망하면서도 우습다. 워낙 자주 이사를 다녀서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실상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 늘 다시금 괴롭고, 번거롭고, 피곤하다. 마치 처음 느끼는 감정인 것처럼 낯설게, 그렇게 괴롭고, 번거롭고, 피곤하다. 어머니는 날더러 "백말 띠라서 역마살이 끼었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역마살'(驛馬殺)은 결코 좋은 말이 아니다. 한자가 보여주듯 '살'(殺) 아닌가. 게다가 역마다. 역에 대기시켜놓은 말. 언제든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는 말에 사람을 견준 것이니 그 또한 썩 좋을 건 없다. 새알밭에 도착한 이삿짐. 2009년 .. 더보기
이별 없는 시대 친구들에게, 한국에서 돌아온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기억은 이미 한 달이나 두 달쯤 지난 것처럼 아득하고 희미하다. 한여름 이글거리는 태양의 열을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리며 뜨거운 김을 아지랑이처럼 피워올리던 아스팔트처럼, 내 두뇌의 일부도 예년보다 유난히 더 무더웠다는 8월의 폭염 속에서 기억 장애를 일으켰는지도... 한 달이나 휴가를? 그게 가능하냐? 한 달이나 휴가를 올 수 있다면 네가 그 회사에 필요 없다는 얘기 아니냐? 등등 온갖 덕담이나 악담 속에서, 정말로 한 달을 한국에서 - 그리고 나흘은 일본에서 - 보냈는데, 한없이 길 것만 같았던 시간은 마법사의 손 아래서 퐁~! 하고 연기를 불러일으키며 사라진 비둘기처럼 어느새 훅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포항으로 전주로 서천으로 청주로 서울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