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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

에이크리지 지난 수요일, 직장 동료인 에버렛의 집에 놀러갔다. 에버렛은 2008년 말 지금 일자리에 지원했을 때 나를 인터뷰한 두 사람 중 하나다. 2년 남짓 내 상사였고, 조직 개편으로 동료가 됐다. 직급 상으로는 여전히 나보다 위지만 보고하는 관계가 더 이상 아니라는 뜻이다. 어쨌든 4년 넘게 일하는 동안 나와 가장 가깝게 지내 온 사수/상사/동료다. 그의 집은 이곳에서 흔히 '에이크리지'(Acreage)라고 부르는 너른 땅 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름 그대로 집 터가 1에이커가 넘는다는 뜻이다. 그의 동네는 '셔우드 파크'라는 곳으로 에드먼튼 동쪽에 있는 인구 7만 정도의 소도시다. 내가 사는 새알밭과는 반대편에 있는 셈이다 (아래 지도 참조). 알버타 주에는 그처럼 1에이커 이상의 너른 땅을 차지한 집들이 꽤.. 더보기
사소한 것들의 사소하지 않은 의미 '다스베이더와 아들'을 재미나게 읽고 나서 작가 제프리 브라운의 홈페이지를 둘러보다가 그의 다른 작품도 좀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 찾아보니 제법 많은 책들이 나온다. 그중 'Little Things'를 빌렸다. 책 표지에 '클럼지(Clumsy)의 저자'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건대 그것도 봐야 마땅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나중으로 미뤘다. 한국에 들어갈 날이 며칠 남지 않아서 마음도 다소 분주하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늦지 않게 돌려줘야 한다는 부담도 슬슬 생기는 마당이다. 찜해놓은 책들도 8월 말 이후로 '정지'(suspend) 시켜놓았다. 'Little Things'는 딱히 뭐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일상의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통한 자서전이라고 하면 맞을까? 아니, 자.. 더보기
크리스티나 올슨의 스릴러 'Silenced' '필론의 추리소설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크리스티나 올슨 (Kristina Ohlsson)의 신작 스릴러 'Silenced'를 읽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새삼 '추리 소설에 관한 한 북유럽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헤닝 만켈, 스티그 라슨, 조 네스보,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유씨 애들러-올슨, 라스 케플러, 앤 홀트, 레이프 GW 페르손, 헬렌 투르스텐, 카밀라 락버그, 카린 포섬... 이건 뭐... 이번 소설을 통해 처음 알게 된 크리스티나 올슨도 대단하다. '조 네스보와 더불어 놓쳐선 안될 작가'라는 책 표지의 광고 문구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올슨의 글은 - 영어 번역이 원본에 충실했다는 가정에서 - 차분하고 지적이다. 작가의 성격이 치밀하고 꼼꼼하고 명철할 것 같다.. 더보기
다스베이더와 아들 '다스베이더와 아들' (Darth Vader and Son)에 나오는 에피소드중 일부다. 지은이는 제프리 브라운 (Jeffrey Brown). 만화를 보는 사람은 누구나 쉽게 눈치 채겠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스타워즈의 열혈 팬이었고, 그래서 스타워즈와 관련된 액세서리, 장난감, 책 등을 열성으로 사모았다고 한다. 브라운의 스타워즈 만화는 그러나 SF스럽다거나 어둡지 않다. 밝고, 코믹하고, 따뜻한 동심과 부성애가 폴폴 묻어난다. 위 네 컷짜리 만화에서 보듯이, 불길한 쇳소리의 호흡과 무시무시한 '다크 포스'를 구사하는 다스 베이더도 아들 루크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아빠다. 저절로 빙그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위 에피소드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실제 스타워즈 이야기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 더보기
식스 캔 두 잇! 성준이가 가장 좋아하는 '집시 데인저' 피겨. 책상 위에 곱게 모셔져 있다. 내가 만지면 왜 만지느냐고 꼭 이유를 캐묻는다. 좋아서 그런다면 아뭇소리 않고 있다가 팔이나 다리의 자세를 바꿔놓으면 잽싸게 정상으로 돌려 세워서 제 자리에 갖다 놓는다. 지난 토요일에 이어 화요일에도 '퍼시픽 림'을 또 보았다. 이번에는 평소 가깝게 지내는 선배, 후배와 함께. 아내도 아내지만 성준이에 대한 미안함이 더 커졌다. 3D 영화는 너무 충격적일 수 있으니 동네 영화관에서 2D로 보여줘볼까,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아내도 PG-13이라지만 본인이 그렇고 보고 싶어 하는데 한 번 물어나 보라고 했다. 다음은 대화 내용 (내 말은 우리말로 바꿨고, 성준이 말만 그대로 옮겼다). "퍼시픽 림 영화 보여줄까?""Today.. 더보기
가깝고도 먼 밴쿠버 여름의 짙은 녹음을 보여주는 노쓰사스카체완 강변과 그 너머 알버타 대학 캠퍼스. 못가겠노라 응답 준 게 지난 금요일이었는데, 며칠 지난 지금도 마음 한 구석은 헛헛하다. 아직도 혼자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그냥 갈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날아간 화살인 것을... 지난 달, 밴쿠버에 있는 한 공기업의 프라이버시 매니저 자리에 지원했다. 노트북 영상과 병행한 전화 인터뷰를 거쳤고, 곧바로 신원 조회와 추천인 세 명의 이름과 연락처를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인터뷰를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나로서는 다소 의외였지만 마달 이유는 없었다. 처음 제공한 추천인들 중 두 명이 공교롭게 휴가를 떠나는 바람에 다른 추천인을 구하느라 .. 더보기
거대 로봇의 로망 '퍼시픽 림' 영화는 까만 화면 위에 두 단어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카이주 (Kaiju): ‘괴수(怪獸)’를 가리키는 일본 말. 예거 (Jaeger): ‘사냥꾼’(hunter)을 뜻하는 독일 말. 그 두 단어는 영화 전체를 요약하는 핵심어이기도 하다. 카이주와 예거의 싸움. 괴수와 거대 로봇의 싸움. 올해 가장 기대하고 고대했던 영화 ‘퍼시픽 림’ (Pacific Rim, 환태평양)을 아내와 함께 보았다. 그것도 아이맥스 3D로. 우리보다 더 그 영화를 고대한 사람 – 우리집 막내 성준이 –이 있었지만 ‘부모 지도하에 13세 이상 관람가’(PG-13)라는 등급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실은 우리가 그 영화를 보러 간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몰랐다. 적어도 내 딴에는 먼저 보고, 혹시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보여줄.. 더보기
나는 책을 정가로 살 수 있을까? 내가 근무하는 직장 근처에 '오드리 서점' (Audrey's Bookstore)이 있다 (위 사진). 요즘 보기 드문 이른바 '독립 서점'이다. 캐나다의 경우 인디고-챕터스 (Indigo-Chapters) 프랜차이즈가 서점계를 독점하고 있어서, 독립 서점이 살아남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웬만한 도시마다 독립 서점들이 한두 개씩 있기는 하지만 인디고-챕터스의 위세에 눌려 거의 힘을 쓰지 못한다. 문 닫는 곳도 속출하고 있다. 하긴 인디고-챕터스마저 아마존닷컴 (캐나다는 아마존.ca)의 무차별 온라인 공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각설하고, 오드리 서점은 에드먼튼뿐 아니라 알버타 주에서도 손꼽히는 전통의 독립 서점이다. 1975년에 생겼으니 40년이 다 돼 간다. 에드먼튼은 물론 알버타를 연고로 한.. 더보기
물난리 어렸을 때 본 만화가 종종 떠오른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고, 작가가 고우영이었는지 이두호였는지, 아니면 다른 누구였는지도 그저 아득할 따름인데, 초능력을 가진 세 남자 - 형제 사이였던가? - 의 이야기였다. 이들은 각각 바람, 불, 그리고 물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이는 결국 물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올해 유독 그 생각이 자주 났다. 물의 위력, 아니 공포를 느끼게 하는 사건 사고가 유난히 많았던 탓이다. 지난 6월에는 알버타주 남부가 사상 초유의 물난리로 큰 낭패를 보았다. 미국과 접경한 소읍 하이리버는 거의 동네 전체가 물속에 잠겼고,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로키산맥 근처의 캔모어와 밴프도 홍수로 큰 피해를 당했다. 그런가 하면 알버타주에서 가장 큰 도시 .. 더보기
성준이의 '맥주 공룡' 어린이들은 모두가 예술가다, 라는 말을 어디선가 본/들은 기억이 난다. 성준이를 보면서 문득 문득 그것이 얼마나 옳은 말인가를 실감한다. 그와 동시에, 그런 예술가적 기질과 열정과 호기심과 에너지가, 도대체 언제 어느 순간에 사라지고 만 것일까, 스스로를 돌아보게도 된다. 그리고 성준이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천진한 호기심과 창의력, 열정을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그리고 부모로서 그런 꿈과 호기심이 꺾이지 않도록 배려해줘야겠다고 다시 다짐한다. 어젯밤엔 갑자기 빈 맥주 캔으로 공룡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벌써 아홉 시가 다 된 시각이어서 너무 늦었으니 내일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하니까 아니란다. 오늘 중에 꼭 해야겠단다. 대체 왜 갑자기 공룡이냐고 물었더니 '캘빈과 홉스'에서 캘빈이 공룡 만드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