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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베켓의 걸작 SF 'Dark Eden'


Dark Eden (Chris Beckett).


무척 감동적으로 읽은 SF 소설이다. 빼어난 상상력이 놀랍고, 부박하고 나약하기 그지없으며 선과 악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인간의 얄팍한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이 감탄스럽고, 처음부터 끝까지 스릴과 긴장감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도 주요 등장인물의 개성을 잘 살려내는 지은이의 이야기 솜씨가 경이롭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이 묘파한 인간의 본성, 러셀 호반의 ‘리들리 워커’가 그린 묵시록적 미래, 그리고 영화 ‘혹성탈출’의 마지막 반전이 연상되기도 한다.

 

배경은 ‘에덴’이다. 시대도 장소도 알 수 없다. 다만 그곳이 지구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에덴의 인구는 모두 532명이다. 163년전, 지구에서 이 미지의 행성에 우주선을 타고 날아왔다가 돌아가지 않고 남았던 안젤라와 토미의 자손들이다. 그 때 함께 왔던 우주인 중 세 명은 지구로 돌아갔고 (혹은 돌아갔다고 여겨지고), 에덴의 후손들은 그들이 돌아와 자신들을 지구로 데려가주기를 오랫동안 열망해 왔다.

 

이들이 사는 에덴의 환경은 지구와 사뭇 다르다. 숲속의 ‘랜턴’(latern) 나무들이 빛과 온기를 제공하는 곳에 거주지를 마련하고, 울리벅을 사냥하고 나무 사탕을 수확하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숲 밖으로는 나무 한 그루 없는 – 그래서 빛도 없는 - 눈 덮인 광야가 펼쳐져 있다. 밤이 되면 더욱 추워지고, 온갖 맹수가 도사리고 있는 그 눈세계 (‘Snowy Dark’라고 부릅니다)를, 그래서 에덴 사람들은 건널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곧 죽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부족의 원로들은 조상인 지구인들이 언젠가 돌아와 자신들을 다시 지구로 데려갈 것이라는 희망을 설파하면서 해마다 행사(AnyVirsry)를 치르다. 부족은 레드랜턴, 스파이크트리, 피시브룩 같은 이름으로 나뉘어 있고, 각기 다른 역할과 지위, 수면 주기를 갖고 있다. 하지만 햇빛도 없이 지열 나무 (lantern tree)의 미약한 빛과 온기에 기대어, 한정된 공간과 자원 환경에 살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인구는 날로 불고, 그래서 에덴의 거주인들은 서서히 굶주려 간다. 게다가 6세대에 걸친 근친 교배 - 이들은 성행위를 ‘slip’이라고 표현한다 - 탓에 수많은 거주인들이 기형을 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언청이 얼굴 (‘batface’), 갈퀴발(‘clawfoot’)같은 것들. 한동안 유지되던 학교 제도도 먹을 것이 부족해져 아이들도 먹잇감 채집에 나서게 하면서 사라져 다시 글보다는 말로 전달되는 구전 문화로 퇴보하고 있다. 눈세계를 넘어 다른 곳에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식의 생각이나 주장은 ‘에덴 가족’을 깨려는 불온한 생각으로 배척되고, 젊은이들의 독립적 사고나 행동도 질식할 듯한 위계적 구조 속에서 억압당한다.


여기에서 아직 10대 소년 ('newhair')인 존 레드랜턴이 등장한다. 시간이 더 흐를수록 인구는 더욱 늘고, 따라서 에덴에서 더 이상 생존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 그는 다른 세계를 찾아봐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원로와 부족장들은 지구인들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한 가족으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철칙’을 깨려는 하극상이라며 도리어 그를 배척하고 따돌린다. 게다가 레드랜턴 부족 안에서 그가 유독 귀여움을 받는데 질투심을 느낀 데이비드의 음해로 존은 점점 더 궁지에 몰리고, 마침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면서 에덴을 영원히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에덴 역사상 첫 추방자이자 첫 살인자가 되는 존은, 또한 누구도 엄두를 내지 않았던 어둠 속의 눈세계로 나서는 첫 모험가가 되고, 에덴을 떠나 새로운 세계를 일구는 첫 개척자가 되기도 한다.


작가 크리스 베켓 (오른쪽 사진). 소설가이자 대학의 파트타임 강사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미덕은, 그러나 존 레드랜턴을 무오류의 이상적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3인칭 시점이나 전지적 작가 시점 대신 존 레드랜턴, 티나 스파이크트리, 제리 레드랜턴 등 주요 등장인물의 시각으로 묘사되는 각 장들은, 존이 합리화하는 자신의 생각과 계획에 대해, 다른 인물들은 어떻게 생각하거나 바라보는지 보여주면서 긴장감과 균형을 유지한다.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저마다 다른 이기적 욕심과 의도를 얼마간은 숨기고 있다는 점이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그래서 각 주인공들의 전체적인 면모도 더욱 효과적이고 입체적으로 표현된다. 모든 인간이 근본적으로, 또 본능적으로 불멸을 꿈꾸고, 하여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 바꿔 말하면 ‘전설’이 되고 싶어하는 - 욕망을 품고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나는 SF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싫어하지도 않지만 일삼아 찾아 읽을 정도로 열혈 팬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소설 'Dark Eden'을 알게 된 것은 제가 아주 좋아하는 작가중 한 사람인 프랭크 탈리스 (Frank Tallis)의 트윗을 통해서다. 


탈리스는 흔히 '리버만 페이퍼'(Liebermann Papers) 시리즈로 알려진, 20세기 초 비엔나를 배경으로 한 범죄 소설의 작가이자, 프로이드 심리학에 정통한 임상 심리학자이다.실제로 그의 소설에는 프로이드의 심리학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고, 주인공인 리버만은프로이드의 애제자로, 절친인 수사관 오스카 라인하르트가 살인 사건을 추적할 때, 그의이론을 실제 수사 과정에 적용해 범인을 찾아내는 데 자주 기여한다. 프로이드가 실제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의 실제 기록과 당시 문헌을 꼼꼼히 참조하고 고증해서, 당시상황을 여간 그럴듯하게 그려내지 않는다. 문장력 또한 빼어나서 탈리스의 범죄 소설앞에는 'Literary'라는 형용사가 종종 붙기도 한다. 지금까지 나온 여섯 권의 시리즈를다 읽었고, 또 다음 편을 고대하는 중이다 (그의 최신작 '죽음과 소녀'에 대한 독후감은 여기).  



어쨌든 이 분이 최근 트위터를 시작했다. 주로 자신이 감명깊게 읽은 책이나 흥미로운 표현에 대해 트윗하는데, 거기에서 이 분이 극찬한 책이 바로 'Dark Eden'이다. 세번 트윗을 했는데, 한 번은 읽는 도중에 (“이렇게 인상적인 SF를 얼마만에 보는지 모른다. 상상력이 빼어나다”), 두 번째는 막 끝내고 나서 (“파리대왕과 리들리워커를 연상시키는 작품. 창의적이고 감동적인 수작”), 세 번째는 직접 독자들을 겨냥해서 트윗했다. “당신이 평소에 SF를 잘 안읽는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Dark Eden을 추천한다. 캐릭터가 잘 발달되어 있고, 주제도 흥미롭다. 이를테면 미신 대 이성.”

 

프랭크 탈리스의 추천 그대로다. 이 소설은 소재의 참신성과 독창성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지만, 전개되는 이야기의 상상력이 단연 돋보인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매우 시각적이고, 자잘한 에피소드들로 조성하는 긴장감도 좋다. ‘very’라는 부사대신 ‘big big’, ‘good good good’, ‘sad sad’ 식으로 표현된 문장 스타일이 다소 낯설지만, 그게 소설의 사실성을 강화하는 도구라는 점을 멀지 않아 눈치채게 되면, 그의 문장력이 실제로는 얼마나 수려하고 견고한지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을 단순히 SF라는 장르 소설로 보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본다. 그보다는 인간의 심리와 본성을 SF라는 외피로 표현한 문학 작품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올해나 내년쯤 출간될 것으로 예상되는 속편 ‘안젤라의 반지’(Gela’s Ring, 가제)이 애타게 기다려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 작품은 먼저 SF 전문 잡지인 Aethernet Magazine을 통해 시리즈로 연재된 뒤, 단행본으로 묶여 나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