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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란 무엇인가?

제목: What is marriage? Man and Woman: A Defense

지은이: 셰리프 거지스, 라이언 T. 앤더슨, 로버트 P. 조지 

출간일: 2012년 12월11일

출판사: 인카운터 북스

종이책 분량: 152페이지


내용

제목 그대로, 역사적 맥락과 사회 문화적 관점에서 결혼의 의미를 심도있게 탐구한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목적은 결혼의 의미를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다. 근래 들어 미국 전역에서 점점 더 지지세를 불려가고 있는 동성결혼(gay marriage), 그리고 그로부터 촉발된 ‘결혼에 대한 관점과 정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라는 이른바 ‘수정론자’(revisionist) 진영의 주장에 대한 본격적이고 이론적인 반박이다. 


결혼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견해는 전통적인 결혼관 (Conjugal view)과 수정주의적 결혼관 (Revisionist View)으로 나뉜다. 전자는 결혼을 남성과 여성이 서로에게 영구적이고 배타적인 헌신을 약속하는 것이자, 자연적으로 (내재적으로) 성 관계를 맺어 함께 자녀를 낳아 양육하는 관계로 규정한다. 그 때문에 결혼은 절대적으로 이성 간의 결합을 전제로 하며, 자녀 출산과 양육은 일부일처제, 배우자에 대한 정절과 함께, 결혼이 가진 가장 뚜렷한 특질로 여겨진다. 자녀의 복지는 또한 왜 결혼이 공익 (public good)에 긴요하며, 따라서 왜 국가가 결혼 제도를 인지하고 규제해야 하는지를 설명해준다.


한편 수정주의적 관점은 결혼을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며, 가정사의 부담과 혜택을 공유하는 두 사람(동성이든 이성이든)의 결합(union)으로 정의한다. 요컨대 어떤 형태든, 서로가 용인하는 유형의 성적 친밀감으로 강화된, 정서적 결합인 셈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런 수정주의적 관점이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허무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사회의 공익 자체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 전체에 걸친 그들의 반박은 치밀하고 용의주도하며 학술적인 깊이까지 보여준다. 후반부에서는 최근의 유전학 연구 결과까지 끌어들여서 수정주의적 결혼관의 허점을 파고든다. 


서론은 결혼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견해를 요약하면서, 저자들은 전통적 결혼관을 옹호하며, 이 책 전체에 걸쳐 수정주의적 관점을 조목조목 비판할 것임을 예고한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반대하는 것은 동성’결혼’이지 동성애는 아님을 분명히한다. 1장은 수정주의적 결혼관의 핵심 기반들에 의문을 제기한다. 2장은 전통적인 결혼관, 곧 남성과 여성 간의 몸과 마음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적인 결합이 결혼의 진정한 의미라는 관점을 심층적으로 풀어낸다 (‘conjugal view’의 ‘conjugal’은 ‘부부(夫婦) 간의’라는 뜻. 말 그대로 남편과 아내, 곧 이성 간의 결합을 의미한다). 3장은 결혼에 대한 정의, 결혼이라는 제도에 국가가 적극 개입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결혼의 공익성을 설파한 장이다. 4장은 결혼의 의미가 희석되고 퇴색될 경우 초래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과 해악, 윤리적 위기 등을 설명한다. 5장은 전통적 결혼관의 예외적 상황 – 불임의 경우, 그리고 다른 인종 간의 결혼 문제 – 를 다룬다. 


최근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캘리포니아 주의 동성결혼 금지법이 위헌이라고 공식 입장을 표명한 데서 드러나듯이 동성결혼에 대한 일반의 여론은 점점 더 우호적으로 바뀌는 것 같지만 실제는 그보다 좀더 복잡하다.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만 해도 지난 2008년 주 대법원의 판결론 동성결혼을 합법화했지만 같은 해 11월 주민 투표에서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법안 (Proposition 8)을 통과시켜 이를 무력화했기 때문이다. 델라웨어, 일리노이, 네바다, 뉴저지, 오리건, 로드 아일랜드, 하와이 주에서도 동성 커플의 ‘시민적 결합’ (civil union)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것은 아니다. 지은이들에 따르면 동성결혼은 지식인, 언론인, 연예인 등 이른바 ‘문화적 엘리트’ 사이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지만, 실제 미국 대중의 정서는 다르다.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묻는 주민 투표에서 32개 주가 반대표를 던졌다. 주민 투표는 아니지만 입법 대표를 통해 전통적인 결혼관의 고수를 찬성한다고 표명한 주는 44개에 이른다. 


의견

2010년 ‘하버드 법과 공공정책 저널’에 게재한 논문을 일반 대중도 이해할 수 있도록 다듬는 한편, 다양한 사례를 넣어 150페이지 분량으로 대폭 확장한 책이다. 저자 세 명의 화려한 학문적 이력은 이 책의 권위와 신실성을 잘 대변한다. 


그러나 두 가지 결혼관 중 하나를 확고하게 지지하는 의견을 펼친 만큼 이 책의 한계 또한 명백하다. 이들은 동성결혼이 두 남녀의 결합과 그에 따른 자녀 출산 및 양육 (그리고 사회의 유지, 발전)과 어긋나고, 서로에 대한 헌신의 정도에서 결혼의 강력한 유대에 못미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성 간의 결혼에서도 그러한 해로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거나, 가정 폭력으로 대별되는 파탄적 관계가 적지 않으며, 자녀 양육 또한 사회의 공익에 기여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어긋나기도 한다는 점을 애써 등한시한다. 또 동성 커플 간에도 이성 간의 결혼 못지 않은 유대와 헌신이 존재하고, 이들이 자녀를 입양해 모범적으로 양육하는 사례도 많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는다. 전통적 결혼관의 유효성, 그것을 국가에서도 지지하고 규제해야 한다는 세 저자의 주장은 다양한 이론과 사례를 통해 매우 설득력 있게 진행되지만, 동성결혼을 용인하거나 지지하는 쪽의 시각을 바꿀 만큼 강력하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실제로 이 책에 대해 우호적인 견해를 보인 쪽은 미국의 정치적 우파와 교회였다. 이른바 ‘진보 좌파’는 물론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같은 주류 언론도 이 책의 논점에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는 어쩌면 이들 저자도 인정했듯이 ‘동성 결혼 인정’으로 대표되는 수정주의적 결혼관이 미국의 지식인, 언론인, 연예인 등 이른바 ‘문화적 엘리트’ 사이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책이 한국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인지도와 파급력을 지닐지는 선뜻 판단하기 어렵다. 결혼의 의미를 묻는 일종의 철학서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시각이 현대의 중요한 흐름 – 동성결혼을 용인하는 여론의 증가 – 에 반기를 들고 있다는 점에서 ‘고루하다’라거나 ‘편파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여지도 없지 않다.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쪽의 주장과 견해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이성 결혼만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며, 동성결혼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허용되어서는 안된다는 논점은, ‘우리가 비판하는 것은 동성애가 아니라 동성결혼’이라는 지은이들의 강조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현실적으로 엄연히 존재하는 동성애와 동성 간의 결합을 부정하는 셈이어서, 그에 따른 한계도 만만치 않다. 


또 한 가지 한계는 이 책의 학술적 성격이다. 전문 저널에 실렸던 글을 일반 대중을 겨냥해 늘리고 풀어썼다고 하지만 일반 독자가 수월하게 읽어내기는 부담스럽다. 또 글 안에 담긴 미국 우익의 종교적 도그마도 때때로 독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성 간의 결혼만이 진정한 결혼’이라는 이 책의 결론에 처음부터 동의하는 독자들만이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을 것 같다. 


책의 내용과 주장 자체는 한국 사회 전반의 보수적, 전통적 분위기와 어느 정도 맞을 수도 있다고 본다. 결혼, 특히 동성결혼을 인정해야 하는가를 둘러싼 논쟁을 촉발하는 재료로서도 어느 정도의 뉴스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중서라고 보기는 어렵다. ★★★☆ (다섯 개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