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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사이클링

아 정말 힘든 '인터벌 트레이닝'

파울러 육상 공원의 파란 트랙. 이미지 출처: http://www.stalbert.ca/id/411

너무 힘들어서 제목에조차 감탄사 '아'를 넣었다. 정말 힘들다. 인터벌 트레이닝은 '높은 강도의 운동 사이에 불완전 휴식을 넣어 일련의 운동을 반복하는 신체 훈련 방법으로, 인터벌 연습법, 구간훈련, 트랙 반복 훈련(track repeat)이라고도 한다.' (네이버 백과사전).


지난 화요일의 훈련법은 1,200m를 4분47초에 뛰는 것 (X 2), 800m를 3분8초에 뛰는 것 (X 4)이었다. 그 사이 사이는 400m를 뛰거나 걸으면서 숨 고르기 (rest interval). 이른바 '불완전 휴식'이다. 퇴근하자마자 근처 '파울러 육상공원'으로 갔다. 동네에 유일한 야외 트랙이다. 날씨는 맑았고 바람이 산들산들 불었다. 하지만 햇볕이 제법 따가웠다. 기온은 20도 안팎. 


10분쯤 트랙을 걷거나 천천히 뛰면서 몸 풀기. '인터벌 트레이닝'으로 미리 맞춰놓은 가민(Garmin) GPS 시계가 '삐빅~!' 하면서 시작을 알린다. 속도를 높인다. 어느 정도나 더 빠른 속도로 뛰어야 1,200m를 4분47초에 돌 수 있는지 모르지만 대충 몸의 감으로 때려잡아야 한다. 또 그게 훈련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내가 얼마나 빠르게, 혹은 느리게 뛰는지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자꾸 연습하다 보면 불과 2, 3초 상관으로 맞출 수 있다고 한다.


400m 트랙을 겨우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 숨은 턱에 차고, 심장은 금방이라도 퍽~ 하고 터질 것 같다. 다리 근육은 이미 산소가 고갈되고 젖산이 그 자리를 꽉꽉 채운 듯 무릎이 제대로 올라가지를 않는다. 하이고오, 앞으로도 두 바퀴를 더 돌아야 하는데...! 그냥 팍 퍼지거나, 뛰는 대신 슬슬 걷고 싶은 욕망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어느새 속도가 줄었다는 느낌. 처음 출발할 때의 속도와는 비교도 안되게 느려진 것 같다. 그런데 힘은 더 들다. 아 미티겠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꾸역꾸역 뛴다.


'삐빅~' 1200m를 뛰었다는 신호 - 살았다! 허리를 숙이고 헉헉헉헉헉...그 사이에 주어진 400m의 휴식 아닌 휴식이 꿀맛 같다. 트랙 한 바퀴 돌면 다시 1200m를 뛰어야 하는데... 휴식의 400m가 끝나지 않았으면... 하지만 얼마 안가 시계는 다시 출발 5초 전을 알리는 카운트다운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삐익, 삐익, 삐익, 삐익, 삐빅~! 그러면 다시 후닥닥... 이 불완전 휴식의 방법으로는 거리를 재는 경우도 있지만 2분, 혹은 90초처럼 시간으로 재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더 힘들다. 얼마를 더 걸었든, 혹은 아예 그냥 서 있어도 시간은 가니까...


1200m 두 번, 800m 네 번을 겨우겨우 끝내고 나니 죽었다 살아난 기분이다. 그 기분이 그렇게 흐뭇하고 뿌듯할 수가 없다. 못할 것 같더니, 그래도 해냈구나. 헉헉헉헉헉.... 심장은 아직 피를 펌프질하느라 무척이나 바쁘지만 곧 정상 박동으로 돌아갈 것이다. 노랗던 하늘이 돌연 시리게 파랗다. 


주일이 거듭될수록 인터벌 트레이닝의 요구 사항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뚜렷이 구분되지는 않지만 조금씩 조금씩 강도가 높아진다. 마치 미지근한 물에 개구리를 넣고 물을 서서히 데우는 듯한 느낌. 물론 여기에서 개구리는 나다. 자처해서 하는 짓. 그래도 미티게 힘든 것만은 어쩔 수가 없다. 시간이 무척이나 많이 지나간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채 50분도 안 지났다.  (위 데이터에는 1200m 두 번, 800m 한 번만 들어 있다. 나머지 세 번의 800m 트랙 반복은 다시 시계를 조정하는 바람에 따로 기록되었다. 800m를 뛸 건데 시계를 1200m에 맞춰놓은 채 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Run Less Run Faster>라는 책에 나온 훈련법, 그 중에서도 보스턴 마라톤을 겨냥한 훈련법을 따라하고 있다. 총 16주로 잡힌 훈련 계획 중에서 5주쯤 지났다. 보스턴을 겨냥했다고 해서 거기 나간다는 것은 아니고, 거기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따는 훈련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 나이 대에서 보스턴 마라톤에 나가려면 보스턴 마라톤이 공인한 다른 마라톤 대회에서 3시간25분 이내의 기록을 세워야만 한다. 그를 위해 나가려는 대회는 10월 초, 미국 오리건 주의 포틀랜드 마라톤이다. 아직 풀 마라톤을 단 한 번도 뛰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턱없이 높은 목표인 셈이다. 그나마 한 가닥 희망은 세 번 뛴 하프 마라톤 기록에 2를 곱하면 보스턴 '커트라인'에 간당간당 한다는 것. 일말의 희망이다. 다음달 19일에 열리는 에드먼튼 마라톤에서는 '무리하지 않고 완주만 하겠다'는 생각이다.


이 책을 쓴 사람들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퍼먼 대학교 (Furman University) 산하 '퍼먼 육상과학연구소'(Furman Institute of Running and Scientific Training) 연구원, 교수들이다. 그들 자신이 노련한 마라토너들이기도 하다. 


이 책의 골자는 날이면 아무 생각 없이 날이면 날마다 달리기만 하기보다는 뚜렷한 목표와 원칙을 가지고 일주일에 세 번만 달리기를 하고, 그 사이에 이틀이나 사흘 정도는 자전거 타기, 수영 등 다리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도 체력을 보강해 주는 교차 (크로스) 트레이닝을 하는 게 도리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일주일 중 5일, 6일, 심지어 7일 내내 달리기를 하는 것은 도리어 피로를 누적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 아니라 부상의 위험성도 더 커진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특별한 목적이나 의도 없이 그저 4, 5마일을 달리고 마는 것은, 심리적으로는 좋을지 모르지만 기록을 향상시키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이 책에 끌리고, 그 내용을 따라 하게 된 것은 비단 구체적인 연구 결과가 그를 증명한다는 지은이들의 주장이나, 책 속에 실린 다른 달림이들의 경험담 때문만은 아니다. 나 스스로도 그런 훈련법이 확실히 효과가 있음을 캘거리 마라톤과 몬태나 주 미줄라 마라톤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달리면서 그런 효과를 확인하는 기분은 참 묘했다. 묘하면서도 뿌듯했다. 실없이 웃기까지 했다. 아 하면 되는구나!


목요일인 오늘의 훈련 메뉴는 5마일 (약 8km)을 마일당 7분19초(km당 4분33초)로 뛰는 '템포 런'(tempo run). 일정 거리를 실제 마라톤 페이스보다 다소 빠른 속도로 뛰는 훈련이었다. 앞뒤로 각각 1마일씩 몸 풀기용, 숨 고르기용 느린 달리기 (easy run)가 포함되어 총 8마일쯤 됐다. 인터벌 트레이닝보다는 덜 힘들지만 그래도 녹록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낮에는 너무 더울 것 같아 새벽 4시50분에 집을 나섰는데, 마치고 돌아오니 막 6시가 넘고 있었다. 오줌 마려워 일어났다가, 에이 그냥 뛰어버리자는 기분으로 더 자고 싶은 유혹을 뿌리쳤었다. 다시 뿌듯한, 스스로 대견해지는 마음.  그저 나 혼자 맛보는 기분이다. 꼭 이런 느낌 때문에만 뛰는 것은 아니지만 작지 않은 자극제 구실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과연 보스턴 마라톤 출전 자격을 따낼 수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과연 책에 적힌 훈련법을 제대로 소화해 낼 수나 있을까? 흔히 마라톤을 '보통 사람들의 에베레스트'라고 부른다는데, 그래도 에베레스트는 에베레스트 아닌가.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는 뜻 아닌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안되면 할 수 없는 거고... 담담한 마음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이번 주 토요일에 뛸 장거리 달리기는 20마일 (약 32km)이다. 페이스는 마일당 8분34초. 


(업데이트) 토욜 아침에 뛰려고 금욜 밤 늦게까지 놀고 싶은 유혹을 뿌리쳤다. 그런데 막상 잠을 설쳐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미친 척하고 이 시간에 뛰어봐?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을 듯했다. 뜻하지 않은 부상의 위험만 잘 관리할 수 있다면...


나가사키 우동 컵라면 한 개 후딱 말아먹고, 남은 밥 반그릇 게눈 감추듯 해치우고, 씨리얼 반 그릇 후루룩 마시고, 30분쯤 소화시킨 다음, 게토레이 700ml 정도를 채운 물배낭 (hydration system)을 등에 지고 집을 나섰다. 사위가 깜깜한지라 평소 뛰던 트레일은 피하고 가로등이 켜진 곳만 찾아 동네 반 정도를 이리저리 돌았다. 그래도 가로수 밑은 그늘 때문에 노면 상태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 때는 보폭을 줄이면서 나름대로 조심을 했다. 책의 요구 사항은 마일당 8분34초였지만 20마일을 한 번도 뛰어본 적이 없어서 속도보다 지구력 (endurance)에 초점을 맞추기로 하고 가능한 한 편안한 속도로 뛰었다. 1마일당 평균 9분10초 안팎으로 걸린 듯했다. 


그렇게 장거리를 뛰면서, 왜 오버페이스 하지 말라고 하는지, 왜 출발할 때는 '느리다'라고 여겨지는 속도보다도 오히려 더 느리게 뛰라고 하는지, 새삼 그 이유를 깨달았다. 체력 안배가 가장 큰 이유였다. 천천히 뛰어 보니, 20마일을 뛸 때까지도 체력이 고갈된다는 느낌이 별로 없었다. 다리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발바닥과 발가락 어느 부위에 물집이 잡히는 듯한 느낌도 없었다. 몸이 더없이 가벼웠다. 달리는 내내 일정한 리듬감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뿌듯한 쾌감이었다. 


난생 처음 뛰어본 20마일. 집을 나섰던 게 새벽 3시38분이었는데, '할당량'을 채우고 나니 어느새 7시였다. 앞뒤 몸 풀고 추스르느라 걸은 시간을 빼면 3시간 조금 넘게, '쉬지 않고' - 지구력을 기르는 게 목표인 만큼 이게 정말 중요하다! - 뛴 셈이다. 깜깜했던 세상은 어느새 붉은 해를 내놓으며 환해졌다. 하지만 비가 오리라는 예보대로 해는 구름 밖으로 나왔다 다시 뒤로 숨기를 되풀이했다. 하늘 한쪽이 비구름으로 어둑어둑했다. 미친 척 일찍 뛰길 잘했지... 스스로 너무나 기뻐서 신새벽에 난데없는 고함을 질렀다. 예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