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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사이클링

심장 테스트

에코카디오그램. 심장의 박동 양상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누워서 내 심장 뛰는 모습을 보고, 그 소리를 듣는 기분이 사뭇 묘했다.


달리면서 늘 궁금했다. 특히 속도를 높이거나 언덕을 오르면서 헉헉거릴 때, 혹은 장거리나 마라톤을 뛰고 난 다음에, 내 심장은 어떤 상태일까 궁금했다. 혹시 어딘가 이상이 있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그것은 꼭 뛰는 도중에 심장의 이상을 느꼈다든가 박동이 불규칙하다고 감지했다든가 해서가 아니라, 내 아버지나 할아버지, 또는 그 위로 심장과 관련된 병력이 있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정식으로 진단을 받은 기록이 전혀 없으니 당연했다. 한국의 의료 기술과 시스템이 현대적 틀거지를 갖춘 역사의 얕음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긴 했다.


가정의에게 내 심장 상태를 점검하고 싶다고 했더니 선선히 그러자고 했다. 가슴 부위에 여러 개의 감지기를 붙이고 즉석에서 초음파로 심장 상태를 검사했다. 지진파를 연상시키는 심장의 파형이 인쇄되어 나왔다. 가정의는 그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더니 높은 진폭과 진폭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다며 정밀 진단을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이후 며칠에 걸쳐 초음파 심장 진단 (Echocardiogram) 테스트와 스트레스 테스트, 심기능 검사(Cardiac test) 약속을 잡아주었다.


에코카디오그램 테스트 (옆 그림)는 지난 12월 중순 에드먼튼의 전문 랩에서 받았다. 음파검사자(Sonographer)가 가슴 부위에 전극 여러 개를 꽂고 전기 신호를 변환해주는 '트랜스듀서'에 초음파 젤을 발라 심장 부위 주변을 점검했다. 곧바로 모니터에 내 심장 뛰는 모습이 소리와 함께 나타났는데, 문득 아내가 아이를 임신해 초음파 검사를 받을 때가 생각났다. 한 가지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던 것은 심장 뛰는 소리가 '쿵 쿵 쿵'이 아니라 마치 박수 치듯 '쿵 짝짝 쿵 짝짝' 하는 쪽이었다는 점이다. 실제 화면에 나타나는 그림의 모양도 작은 손 두 개가 박수 치는 듯한 형상이었다. 검사 뒤에 어떠냐고 물으니 음파검사자는 아무것도 대답해줄 수 없다고, 그저 기록된 결과를 의사에게 넘기면 그가 가정의에게 내용을 전달하고, 아마도 가정의가 내게 전화를 해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이상이 없었다는 뜻이다. 전화가 오면 뭔가 이상이 있다는 뜻이고).


다음은 스트레스 테스트였다. 이번에도 가슴께에 전극들을 꽂는 것은 같았는데, 트레드밀 위를 걷거나 뛰는 것이 달랐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뛰기 편한 옷을 가져가지 않았고, 그래서 입고 간 차림새로 그냥 뛰어야 했다. 게다가 테스트 직전에 5마일을 뛴 마당이었다. 하지만 테스트는 그리 길지 않아서 15분쯤 만에 끝났다. 걷거나 달리는 도중에 의사가 이런저런 말을 걸곤 했는데, 그게 테스트의 일부인지, 아니면 그가 좀더 친근한 타입이어서 그랬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결과는 '아주 좋다'였다. 


몸에 줄줄이 단 심기능 검사 기구. 'Event'라고 쓰인 장비가 심장 박동 기록을 저장하는 수신기다. 가슴께에 네 개의 전극을 붙였다. 물이 묻으면 절대 안된다고 해서 하루 동안 샤워도 못했다.


지난 주에는 세 번째, '심기능 검사'를 새알밭의 '스터전 커뮤니티 병원'에서 받았다. 뜻밖에도 병원에서는 달리 할 일이 없었고 - 이번에도 뛰려나 싶어 체육복까지 챙겨갔는데 - 검사 도구를 몸에 달아주면서 하루 동안 계속 붙이고 있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다시 가슴 위와 아래에 전극이 붙었고, 그 전극들은 아이폰만한 휴대용 수신기와 연결되어 있었다. 수신기에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줄이 달려 목에 걸거나 허리띠에 달 수 있었다. 그리고 몇 시에 어떤 일을 했는지, 그리고 그 일을 하는 동안 심장에서 특별한 이상 징후를 느끼지는 않았는지 적는 기록지를 한 장 받았다. 하루종일 달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샤워를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5마일을 뛰었다. 바람이라도 쐬라며 트레일로 아내까지 끌고(?) 갔다. 천천히 뛰는 (easy) 일정이어서 몸의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땀이 나진 않았다. 뛴 다음에는 얼굴과 겨드랑이 같은 부분만 씻고 지나갔다.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별 부담은 없었다.


심기능 검사의 결과는 어떤 내용일까? 뭔가 이상이 있다고 나올까?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연락이 올까? 아니,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을까? 나는 심장 생각만 하면 늘 구스타프 말러가 떠오른다. 그는 본래 굉장한 건강체에 운동을 퍽이나 즐기는 사람이었는데 심장에 심각한 이상이 있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운동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의 사인도 심장의 이상 때문 - 세균성심내막염(細菌性心內膜炎) - 이었다. 물론 나를 말러와 견주는 것은 결코 아니고, 단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가 말러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있고, 안타까워 하는 것뿐이다. 그가 튼튼한 심장을 가져서 더 오래 살았다면...! 어쨌든 달릴 때, 혹은 다른 운동을 할 때 종종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탈없이 건강한 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속으로 되뇌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