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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커트 왈란더!


글자가 주먹만한 'Large Print'로 읽었다. 그래서 여느 종이책 분량은 450쪽 정도인데, 이 책은 600페이지쯤 한다.

외곬수 하드코어 형사 커트 왈란더(Kurt Wallander, 쿠르트 발란더)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헤닝 만켈 (Henning Mankell)의 범죄 소설 시리즈가 <The Troubled Man>(곤경에 처한 사나이)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시리즈로는 열 번째, 왈란더의 초년 경찰 시절을 그린 외전(外傳) 단편집인 <피라미드> (Pyramid)까지 더하면 열한 번째다. 


줄거리: 왈란더도 나이를 먹었다. 정년을 앞둔 예순이다. 그도 예전 같지 않다. 자주 피곤해 하고, 자주 잊어먹고, 자주 죽음을 생각한다. 앞날보다는 지나온 날을 더 자주 떠올리고, 혹은 후회하고, 혹은 아쉬워하면서, 은퇴 뒤에 견뎌야 할 외로운 삶에 종종 진저리를 친다. 가장 큰 문제는 자꾸 잊어버린다는 점이다. 막 바삐 돌아치다가도 문득 도대체 내가 무슨 일로 이러는 거지, 하고 자문한다. 도무지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아, 나도 마침내 노망이 드는 건가? 알츠하이머는 아닐까? 그러던 어느 날, 왈란더는 충동적으로 집을 나서 혼자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신 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곯아 떨어진다. 다음날 직장에 출근해 보니 사단이 난 상태. 레스토랑 종업원이 그가 자리에 놓고 간 권총을 들고 온 것이었다. 게다가 권총은 장전된 상태였다. 그러나 왈란더는 아무런 기억도 없다. 언제 총을 휴대했는지, 레스토랑에 왜 가져갔는지 기억조차 없다. 대체 이건 뭐지? 왈란더는 점점 더 불안해진다. 


그런 왈란더의 가장 큰 희망이자 행복은 그를 좇아 경찰관이 된 외동딸 린다다. 한때 방황도 하고 심지어 자살까지 기도했던 그 딸이 이제는 어엿한 민완 경찰이다. 여간 대견하고 뿌듯하지 않다. 그런 린다가 또 하나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왈란더가 곧 할아버지가 될 거라는 소식. 손주를 품에 안아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먹구름 덮힌 하늘의 한줄기 햇빛처럼 왈란더를 들뜨게 한다. 


왈란더의 사위 후보 - 결혼 하지 않고 자식 낳아 기르는 일이 워낙 흔한 나라가 스웨덴임을 고려하자 - 한스는 잘 나가는 재무관리사다. 그의 아버지 호칸 폰 엥케(Håkan von Enke)는 잠수함 함장을 지낸 전직 해군으로, 나이는 왈란더보다 열다섯 살이나 더 많지만 서로 죽이 잘 맞는다. 왈란더 가족과 사돈 사이가 된 데 대해 "훌륭한 인수" (Excellen acquisition)이라고 표현했을 정도.


왈란더는 린다의 부탁으로 호칸의 75세 생일 파티에 마지 못해 참석한다. 그 자리에서 호칸은 창문이 없는 밀실로 왈란더를 불러 단둘만의 대화를 나눈다. 호칸은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털어놓는다. 소련 국적으로 추정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잠수함들이 스웨덴 영해로 불법 침입한 것을 호칸의 잠수함 부대가 극적으로 차단해 그들을 나포하기 직전이었다. 잠수함들을 강제로 부상시키기 위해 위협 사격을 가하기 직전 최고 명령권자의 전용 라인을 통해 작전을 취소하라는 명령이 내려온다. 납득할 수 없는 지시였지만 명령은 명령, 호칸은 그들을 풀어주고 만다. 이후 호칸은 그 명령이 어떤 경로로, 누구로부터, 그리고 왜 내려졌는지 캐내기 위해 집착에 가까운 조사를 계속하고, 그 때문에 신변의 위협까지 느끼는 상황에 이른다. 왈란더와 만난 날도 호칸은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로부터 얼마뒤 호칸이 실종된다. 매일 산보하던 길에서 증발해버린 것. 누가 납치한 것인지, 스스로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불한당에게 살해되어 어딘가로 유기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사건 발생지가 스톡홀름이어서 왈란더에게는 아무런 수사권도 없지만 린다를 통한 특별한 관계 때문에 그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마침 스톡홀름의 담당 수사관이 왈란더 또래로 성격이나 수사 스타일까지 비슷해서 왈란더의 개입에 별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 도리어 수사 진척 상황을 상세히 알려주면서 도움을 요청할 정도다. 


하지만 수사는 도무지 진척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무런 증거도 없는 데다, 호칸에 대해 중요한 증언이나 단서를 제공해줄 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그 와중에서 호칸의 아내인 루이즈마저 실종된다. 호칸처럼 아무런 흔적이나 단서도 남기지 않았기는 마찬가지. 도대체 왜? 왈란더는 점점 더 미궁에 빠져든다. 


헤닝 만켈의 '왈란더' 시리즈. 방금 읽은 책 <곤경에 처한 사나이>와 외전 <피라미드>가 빠져 있다. 우리집 큰 애가 이 책의 원색 표지에 끌려 하도 책을 만지작거려서 이중 몇 권은 너덜너덜해졌다.


독후감: 만켈의 전작들이 그랬듯이 여기에서도 왈란더는 '인간다운, 너무나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사소하기 그지 없어 보이는 단서에서도 사안의 핵심을 찾아내는 놀라운 추리력과 끈기, 게다가 불독 같은 저돌성을 보여주는 왈란더의 민완 형사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이혼하고 혼자 사는 노년기 남자의 외롭고 정리되지 않은 일상, 전부인과의 불편한 관계, 때로는 서로 염려해주고 보듬어주지만 종종 언성을 높여 다투기도 하는 딸 린다와의 굴곡 많은 관계, 사람 많은 데 가길 싫어하고 쇼핑이라면 질색하는 까탈스러운 성격 등을 적절하게 버무려, 스웨덴 어느 지역을 담당한 흠집 많은 실제 경찰의 일상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혹은 리얼리티 쇼 형식으로 표현한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소설 속의 평면적 인물, 가상의 캐릭터가 아니라, 피와 살이 있는 진짜 인물을 보는 것 같다. (나는 왈란더가 만켈을 닮았을 것이라고 늘 상상한다. 케네스 브래너는,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또 그의 뛰어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상상하는 왈란더와는 거리가 좀 많이 멀다.)


마이클 코넬리가 그렇듯 만켈의 왈란더 소설도 사소하지만 리얼리티 효과를 한껏 높여주는 장치를 능수능란하게 채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왈란더가 어느 찻집에서 증인을 만나는데, 바로 옆 테이블에서 취객이 넘어지는 바람에 컵이 깨지고 소란이 벌어지는 바람에 이야기가 잠시 중단되는 식이다. 그 상황이 전체 수사 상황에 무슨 변화를 주는 단서나 복선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슬쩍 끼워넣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이들이 정말로 어디 노천 카페에 앉아 있구나, 하고 확실히 믿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죽은 동창의 부인 집에 자료를 찾으러 갔는데, 그 여자가 온 집안을 향수로 범벅을 해놓아서 왈란더가 괴로워하며 대화를 나누는 상황도 정말 그럴듯하다. 요컨대, 사건의 핵심 상황만을 묘사하는 대신 그 중간중간에 일상의 사소한 현상을 끼워넣어 그 상황을 더욱 현실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사소한 소음이나 행인들의 대화, 찻집이나 레스토랑의 풍경 등을, 이야기의 현실성을 높이는 소품으로 활용하는 만켈의 능력은 실로 감탄할 만하다. 


로리 톰슨의 번역을 거친 만켈의 문체는 직설적이고 단순하다. (몇몇 대목에 오자도 있고, 어색한 표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충실하게 번역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화려하지 않고 담백하고 소박하다. 왈란더의 거칠지만 단순하고 순수한 삶의 양상과 그보다 더 잘 어울릴 수가 없다. 그런 쉬운 영어 표현으로 나오는 왈란더의 모습, 그의 생각은 외롭고 쓸쓸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He lay awake until four o’clock. Fear came and went in waves. When he finally fell asleep, his heart was full of sorrow at the thought that so much of his life was now over and could never be relived.


만켈의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왈란더의 소소한 일상이 장황하게 그려졌다고, 그래서 소설의 초점이 흐려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런 느낌을 갖지 못했다. 도리어 그런 점들이, '범죄 소설', 혹은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 소설에서 '범죄'와 '추리'를 빼고 그냥 (문학적) '소설'이라고 불러도 크게 흠이 되지 않을 만한 작품으로 승격시키는 데 한몫 하는 대목들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후반으로 가면서 소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반전의 묘미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묘미는 그 뒤에 이어지는 '에필로그' 때문에 한없이 슬프다. 그 슬픈 결말이, 또 다른 반전이라면 반전이겠다. 그 결말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만켈에게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 또한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맺음말: 캐나다로 이민 와서 접한 영어 소설 중에서 가장 좋아한 게 헤닝 만켈의 왈란더 시리즈였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스웨덴어 소설이지만 내가 접한 건 영역본이었으므로.) 그래서 페이퍼백을 꼬박꼬박 사서 읽었다. 아내도 왈란더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내가 헤닝 만켈에 푹 빠진 이유). 


이제 이 소설 <곤경에 처한 사나이>를 끝으로 왈란더와 영영 작별이다. 숱한 책 제목이 그렇듯이 이 제목도 중의적, 아니 다의적이다. 곤경에 처한 것은 왈란더가 수사하고 추적하는 대상들만이 아니라, 결국은 왈란더 자신이기도 하다.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쓸쓸하고 슬프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런 게 또 인생 아닌가. 늘 곤경에 처했고, 그 곤경을 헤쳐나왔던 왈란더가, 그의 인생에 놓인 또다른 곤경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궁금해진다. 


어쨌든 안녕히, 왈란더. 당신의 세상, 만켈이 꾸며준 소설의 세상에서 언제나 행복하시길!


* (업데이트: 2012년 6월23일/토) 왈란더 시리즈를 드라마로 만들고 직접 왈란더 역을 맡은 영국의 명배우 케네스 브래너가 얼마전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에 때맞춰 인디펜던트가 브래너와 헤닝 만켈을 인터뷰했다. 흥미롭다. 기사는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