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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인 사람들이여 힘을 내시라! - 수전 케인의 노작 <Quiet>


책 제목: Quiet: The Power of Introverts in a World That Can't Stop Talking

지은이: Susan Cain (수전 케인)

낭독자: Kathe Mazur (케이데 메이저)

출판사: Random House, Inc (랜덤 하우스)

형식: 오디오북 (CD 9장)

종이책 분량: 352페이지


올해 나온 책 중에서 아마도 가장 큰 화제와 관심을 모은 책.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내로라 하는 주요 언론이 이 책에 관해 대서 특필했고,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 책과 책에 담긴 내용을 커버 스토리로 다루기까지 했다 (‘The Upside Of Being An Introvert (And Why Extroverts Are Overrated)’ 내성적인 사람의 장점 (왜 외향적인 사람들은 과대 포장되었나)). 


나는 종이 책을 먼저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채 몇 페이지 보지 못하고 돌려주고 말았다. 자주 그렇듯이 감당 못할 분량을 한꺼번에 빌리는 바람에, 하드커버에 어두컴컴한 표지, 두꺼운 분량에 먼저 주눅들어 다음에 다음에 하다가 대출 기간을 탕진하고 만 것이었다. 


그 다음에 오디오북을 빌렸다. 무려 9장의 CD로 구성된 무삭제판. (물론 그보다 더 많은 CD로 구성된 오디오북도 많다. 저스틴 크로닌의 묵시록적 SF 소설 <The Passage>는 요약본인데도 12장이고, 스티브 잡스의 무삭제판 자서전은 무려 20장의 CD로 구성되어 있다. CD 포맷은 서서히 사양길에 접어들고 오버드라이브를 통한 다운로드 형식이 점점 더 늘고 있지만 그래도 CD형 오디오북은 아직 주류의 지위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CD로 직접 듣는 것은 아니고 mp3 파일로 일일이 리핑한 다음 아이팟으로 듣는다.)


출퇴근 버스 안에서, 점심 시간 산보길에 틈틈이 듣기 시작했다. 곧장 그 내용에 빠져들었고, 점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걷거나 버스를 기다리느라 서 있을 때만 듣던 것이 버스 안에 앉아서도 종이책을 꺼내드는 대신 계속 귀를 쫑긋 세우고 오디오북을 듣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졌다. 그렇구나! 그렇지! 아하! 하고 소리내어 맞장구를 치고 싶은 대목이 수도 없이 나왔다. 새로운 배움, 새로운 시각, 새로운 통찰이 내 머리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어주는 케이데 메이저의 나긋나긋하고 선명하면서도 더없이 차분한 목소리도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책의 성격이나 주제와 더없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목소리였다. 


도서관에서 일껏 빌려 읽고 나서도, 혹은 오디오북으로 듣고 나서도, 아예 사야겠다라고 결심하게 만드는 책은 별로 많지 않다. 설령 사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도 값비싼 하드커버보다는 페이퍼백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그 뒤에 잊어버리고 사지 않게 되는 경우도 물론 많다.) 


이 책은 예외였다. 어제 아마존 캐나다를 통해 하드커버 판을 주문했다. 무엇보다 내가 책으로 다시 꼼꼼히 읽어보고 싶었고, 그에 못지않게, 아내더러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었다. 오디오북으로 듣는 동안에도 여러 차례 “이건 당신이 꼭 봐야 할 책”이라고 말해 주었다. 스스로도  내성적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아내는 나보다 더 내성적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묘사하는 내성적인 사람의 특성과 강점, 미덕들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두 아이, 특히 지나치다 싶게 민감하고 내성적인 둘째 생각도 많이 났다. 


당신의 성격은? (출처: 타임)

Introvert의 파워, 그리고 그 감별법 (출처: 에스티마)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이 책 <Quiet>를 쓴 수전 케인 (사진) 자신이 지독히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끔찍히 싫어하고, 사람들 모인 파티나 캠핑에 가기보다는 집안에 혼자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를 훨씬 더 선호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미국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 말 안하고 조용히 있으면 덜 떨어진 사람이나 바보, 소극적이고 부끄러움 잘 타는 반사회적 (antisocial) 인물, 더 나아가 ‘루저’로 여기는 사회 아닌가. 말이 되든 안되든, 졸가리가 있든 없든 씩씩하게 (좀더 정확하게는 개념없이) 손 들고 일어나서 발표하는 사람, 앞에 나서서 대체로 앞뒤 안가리고 “가자!”라고 외치는 사람, 말끔한 옷차림과 외모에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자신의 우월성을 표나게 내세우는 사람을 성공한 사람으로, 리더로 여기는 사회 아닌가. 


외향성을 표나게 우대하고 내성적인 성향을 자신없음, 무능력, 실패 등과 동일시하는 미국 사회의 특성은 데일 카네기, 노먼 빈센트 필, 토니 로빈스, 오프라 윈프리 같은 인물을 떠올리면 더욱 명징한 그림을 보여준다. 내성적인 사람들이 그 같은 외향성 우대 사회에서 살아남는 길 중 하나는 ‘척하는’ 것이다. 외향적인 척. 혹은 외향적인 성격을 피나는 노력을 통해 배양하는 것이다. 이 책의 지은이 수전 케인이 바로 그랬다. 자신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 길을 골라, 하버드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 협상가가 된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케인은 어느 모로 보나 사람들 대하는 데 능숙하고, 자신감에 넘치고,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열띤 논쟁도 서슴지 않는 인물일 것 같다. 하지만 그와 정반대라고 케인은 고백한다. 말하기보다는 듣는 게 더 좋고, 책 읽기와 글 쓰기를 사랑하며, 대규모 그룹보다는 친밀한 소규모 그룹과 진지하게 토론하는 것을 즐긴다. (낮고 부드럽게) 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는 습성이고, 어쩌다 많은 사람 앞에서 연설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늘 긴장과 두려움에 어쩔 줄을 몰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