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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의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

[김상현 기자의 클래식 산책]42세로 삶 마감…평생 음악적 정열로 불태워 | NEWS+ 1997년 10월23일치.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1987년 10월19일 한 위대한 음악가가 세상을 떠났다. 자클린 뒤 프레. 42세라는, 결코 길지 않은 삶을 마감한 이 여류 첼리스트는 그 중에서도 14년을 병마와 싸우는 데 탕진해야 했다.

그녀가 첼로를 연주한 기간은 겨우 10년 남짓. 그러나 뒤 프레는 『그토록 헌신적인 남편을 만난 것과 음악적 재능을 일 찍 계발하여 아프기 전에 연주하고 싶던 곡을 모두 녹음할 수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는 스스로의 말처럼 그 짧은 기간을 온전히 음 악적 정열로 불살랐다.

예술-문화 전문 케이블TV인 A&C코오롱은 뒤 프레의 10주기를 맞아 생전의 연주 장면과 인 터뷰, 사생활 등을 방송했다(10월18일과 25일 「토요스페셜」 시간에 재방송될 예정).

비디오라는 타임머신으로 찾아가 만난 30여년 전의 뒤프레는 건강하고 생기발랄하다. 흑백화면과 모노 음질도 그녀의 「거장성」을 드러내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녀의 연주 장면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들려 주는 모습이다.

17세때 엘가의 첼로협주곡으로 스타덤… 병마와 싸우다 1987년 타계

해맑은 표정의 뒤 프레는 놀라울 만큼 고요하다. 
때로는 격정적으로, 또 때로는 더없이 나긋나긋하고 부드럽게 활을 그어대지만, 그녀 자신은 마치 일상적인 삶을 즐기는 듯 고즈넉하다. 그 정적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어서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다.

비디오를 보니 알겠다. 그녀를 「영국의 장미」라고 말할 때 그것은 장미의 화려함이 아니라 장미의 정열과 기품에 견준 것임을. 뒤 프레의 소리는 그처럼 우아하면서도 격렬하고,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하며, 엄격하면서도 풍부하다. 「인생에 대한 인간 본연의 자세」를 작품에 담고자 했다는 엘가의 음악적 지향은 뒤 프레에게서 비로소 안식을 찾은 듯하다.

뒤 프레와 엘가의 첼로협주곡은 마치 살과 뼈, 혹은 뒤 프레와 그녀의 애기(愛器) 다비도프 첼로의 관계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엘가의 첼로협주곡은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그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뛰어난 작품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17세 때인 1962년 3월21일 런던의 로열페스티벌홀에서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처음 연주했다. 그리고 65년 그녀가 존 바비롤리경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와 엘가를 녹음했을 때 그녀는 이미 빛나는 스타였다.

뉴욕타임스는 그녀의 엘가 연주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뒤 프레와 이 협주곡은 서로를 위해 태어난 것 같다. 그녀의 연주에는 구석구석까지 낭만적인 심상이 넘쳐 흐른다. 그녀의 음색은 풍부하 며 농염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테크닉도 실로 완벽하다.(…)한번의 연주로 연주가의 역량을 운위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엘가의 첼로협 주곡에 관한 한 이 첼리스트는 최고임에 틀림없다」.

뒤 프레는 1945년 1월26일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났다(그녀의 프랑스식 이름은 아버지의 가계에서 비롯한 것이다). 음대 출신인 어머니는 훌륭한 피아니스트이자 교사였다. 벌써 세살 때 BBC 방송에서 들려오는 첼로 소리를 듣고 『엄마, 저런 소리를 내고 싶어』라며 관심을 보인 딸에게 그녀는 4분의 3 크기의 첼로를 사주었고, 다섯살 때 런던의 길드홀 음악학교에서 공부하게 했다.

경이로운 암보력과 테크닉, 천재적인 해석력을 고루 갖춘 뒤 프레는 61년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공식 데뷔한 후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난 치병에 걸려 73년 은퇴할 때까지 정력적인 연주 활동을 펼쳤고, 그만큼이나 다채로운 녹음을 남겼다.

그 녹음들은, 그녀에게는 이후 14년 동안 병마와 맞서 싸울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고,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는 비길 데 없는 예술 적 감동을 안기는 선물이 되었다.

그녀는 아직도 살아 있다.

10년 전에 끝난 것은 그녀의 육체적인 삶뿐이다. 다니엘 바렌보임과 함께한 베토벤 첼로소나타에서, 존 바비롤리와 협연한 엘가의 첼로협주곡에서, 그리고 그녀가 완성한 EMI의 모든 녹음들에서 그녀는 여전히 생동하고 있다. 그녀의 음악 생애는 불멸이다. 김 상 현 기자

아래 비디오는 자클린 뒤 프레의 엘가 첼로 협주곡 1악장 연주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