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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을 예술로 승화한 ‘바이올린의 神’

[김상현기자의 클래식 산책]방황 끝 5년만에 컴백 | NEWS+ 1997년 10월2일치

돌아온 탕자(蕩子).

바이올리니스트 나이젤 케네디(40)의 5년만의 귀환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어떨까?

캐주얼한 옷차림, 면도하지 않아 까칠한 턱수염, 부러 꾸민 듯한 런던 빈민가풍의 액센트, 히피족을 연상케하는 행동거지 등 그의 전체적 인 패션은, 잘 다듬어져서 오히려 위선이 느껴지는 클래식 음악계의 「에티켓」에 대한 잘 계산된 카운터블로처럼 여겨졌다.

지난 7월 케네디는 영국 런던의 로열 페스티벌 홀과 버밍엄의 심포니홀에서 화려한 귀환 공연을 펼쳤다.

『내 음악적 경력의 정점에 다다른 지금이야말로 클래식음악계를 떠날 때』라며 팝과 록의 품으로 망명한지 5년만이었다. 그는 자신의 우상인 지미 헨드릭스를 연주했고, 지난해에는 「카프카」라는 음반으로 그에 대한 여전한 경모를 과시했다.

그러나 그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클래식이었다. 지난 7월의 연주가 그것을 여실히 증명했다. 그는 프로그램에 들어 있지 않은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타 E장조 전주곡」으로 몸을 푼 뒤 그의 최대 장기인 엘가를 연주했다.

84년 그의 데뷔 레코딩이기도 한 엘가의 바이올린협주곡은 그를 일약 거장의 반열에 올려 놓았고, 영국 최고 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솟구치게 했던 작품이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독특한 패션-언행과 파격적 연주로 인기
 
그가 다시 들려주는 엘가는 한층 숙성된 것이었다. 그가 지어보이는 표정은 실로 넉넉하고 따뜻해서, 그가 여전히 「절정기의 거장」임을 느 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사이먼 래틀경(卿)이 이끄는 버밍엄시립오케스트라도 긴밀한 호흡과 풍성하고 다채로운 표정으로 그의 연주를 받쳐 주었다.

케네디의 복귀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볼 때 긴 가뭄 끝의 단비와 다르지 않다. 현역 연주자들 가운데 그만한 흥행성을 지닌 이가 드물기 때 문이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린 흔치 않은 클래식 연주자다. 그가 89년 녹음한 비발디의 사계 음반이 무려 200만장이나 팔려나간 것이다.

판매량이 채 1000장을 넘지 못하는 경우도 수두룩한 클래식 음반시장이고 보면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 대충 가늠이 된다(그밖에 기 네스북을 장식한 경우로는 가장 많은 레코딩을 기록한 지휘자 고(故)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그 기록을 다시 넘어선 현역 지휘자 네빌 매리 너 정도다).

케네디는 {클래식 음반은 사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이른바 「클래식의 문외한」들까지 끌어들이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물론 그의 독특한 패션과 언행, 파격적인 연주스타일도 그 매력에 한몫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천재적」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탁월한 연주기량에 있다. 펑크로커를 연상시키 는 외모와 언행은, 그의 천재적 음악성과는 별도로 그의 자유로운 정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예후디 메뉴인 스쿨과 줄리어드음대를 다닐 때부터 그 싹을 보였던 그의 음악적 「끼」는 마법에 가깝다. 그가 무대에서 보여주는 집중력과 흥취, 그리고 그것들로 빚어내는 카리스마는 객석을 무아지경으로 몰아가기에 충분한 것이다.

비발디의 사계 음반을 200만장이나 팔아치우고 엘가의 소품집, 브루흐와 멘델스존의 협주곡 등 연주하는 작품마다 대중들로부터 비상한 관심 을 끌어모은 것도 그처럼 케네디만의 음악적 영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개성 만점인 그의 연주는 국내에서도 어렵잖게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소리」만을 통해서, 곧 귀만으로 그의 독특한 음악 영역을 들여다보기 란 쉽지 않다. 다만 선율미가 도드라지고 다소 빠르며, 대단히 테크니컬하다는 느낌만은 금방 얻을 수 있다.

케네디는 EMI 레이블로 엘가의 바이올린협주곡을 다시 녹음한다. 본 윌리엄스의 「날아 오르는 종달새」를 커플링할 예정이니 두 곡의 조화도 그리 나쁘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그가 다시 엘가로 돌아가는 까닭이 궁금해진다. 그에게서, 스스로 『완고하고 경직되어 있다』고 비판했던 클래식의 고답성과는 다 른, 자유로움의 출구를 발견한 것일까? 아니면 찬란한 성공을 안겼던 엘가로부터 또 한번의 광휘를 기대하는 것일까? 김 상 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