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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옅게 하는 ‘짜깁기 음반’ 활개

김상현기자의 클래식 산책 | NEWS+ 1997년 9월11일치

참을 수 없는 「짜깁기」의 가벼움.

이즈음 음반 매장의 진열대가 보여주는 풍경을 요약한다면 이런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귀에 익은, 혹은 눈에 익은 곡들이 이 음반 저 음반 에 겹치기 출연하는 현상은 실로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예컨대 엘가의 「사랑의 인사」, 그리그의 페르귄트 조곡 중 「아침」, 푸치니의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 곡 제21번 일명 「엘비라 마디간」 중 2악장, 비발디의 「사계」 따위는 하도 닳고닳아서 아무런 생각없이 듣는 배경음악과 구별할 수조차 없게 되어버렸다. 언제 청소차의 상징 음악으로 전락한 「엘리제를 위하여」의 운명이 될지 모를 판이다.

짜깁기, 혹은 편집 앨범은 대략 다섯 종류로 구분된다.

첫번째는 아무런 맥락없이 말랑말랑한 곡들을 마구 버무려놓은, 시쳇말로 「개념없는」 음반들이다. EMI의「베스트 오프 클래식스 96」, 소니의 「클래시컬 히츠」 Ⅰ Ⅱ, 「맥스 클래식스」 등이 그런 경우.

두번째는 인기있는 특정 아티스트를 내세운 경우다. 정경화 조수미 장영주 등은 국내에서 흥행의 보증수표로 통하며 안네-소피 무터, 길 샤 함, 막심 벵게로프, 미샤 마이스키, 요요 마, 파바로티 카레라스 도밍고 등 소위 「3대 테너」 등도 그에 못지않은 편집앨범의 단골손님들이다. 이들은 음반을 말랑말랑한 곡들로 채우면서 한국 작곡가의 작품 한두 곡을 슬쩍 끼우는 상업적 배려도 잊지 않는다.

클래식 저변확대 불구 깊은 감동-영감은 기대 못해

「EQ」(감성지수) 바람은 어김없이 클래식음반 시장에도 불어서, 모차르트의 작품들이 때아닌 호황을 누렸다. 분유도 아닌 음반에 아기들이 모델로 등장했고 아인슈타인까지 깜짝 출연했다. 
요즘은 EQ높이기에서 수능 대비용으로 자가 발전했다. 바로 음악외적 주제를 짜깁기 음반의 기준으로 삼은 세번째 유형이다.

다음은 광고나 영화를 통해 익숙해진 음악들을 발빠르게 모아 내놓는 경우다. 꽤 오래된 방식이지만 약효는 여전히 믿을 만해서, 최근에도 [시네마 클래식](황금가지) 「시네마 아리아」(EMI) 등이 시중에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음악과 해당 영화 장면간의 맥락을 친절히 설명해준다거나(시네마 클래식), 좀더 장르를 특화해서 믿을 만한 연주를 들려준다는(시네마 아리아) 점이다.

예컨대 도니제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 「광란의 아리아」는 영화 「제5원소」에서 처절함보다 신비감을 더 강 하게 풍기는데, 시네마 아리아는 소프라노 에디타 그루베로바의 목소리로 그 신비감에 근접하고 있다.

카탈라니의 오페라 「라 왈리」 중 「나는 멀리 떠나야 해」(영화 「디바」 중)와 조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중 「내 어머니 는 돌아가셨소」(영화 [필라델피아]중)를 열창하는 칼라스의 목소리도 인상적이다.

편집앨범 중에는 그런대로 의미를 둘 만한 시도도 없지않다. 최근 선보인 길 샤함의 「오페라의 바이올린」(DG)은 오페라의 유명한 아리아들 을 바이올린으로 「노래한」 음반이다.

무대 위의 한바탕 드라마를 악기 하나로 표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도전이거니와, 음악애호가들도 한번쯤은 호기심을 보일 법한 착안이다. 슈베르 트의 가곡을 첼로로 옮긴 미샤 마이스키, 오페라 아리아들을 클라리넷으로 옮긴 자비네 마이어도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미덕에도 불구하고, 편집 앨범은 깊은 감동이나 영감을 줄 수 없다는 점에서 숙명과도 같은 한계를 안고 있다. 가벼움은 부담스럽지 않다. 골치를 썩히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로부터 깊고 긴 여운이나 영혼을 뒤흔드는 감동은 기대할 수 없다. 편집앨범은 다만 클래식의 대해(大海) 저 가장자리까지만 데려가 줄 수 있을 뿐이다. 편집앨범은 클래식의 대해, 그 장려한 수평선을 언뜻 보여주는 것으로 그 임무를 다해야 한다.

음반사의 상업적 이해와 음악 초보자들의 수요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은 전자로 지나치게 무게중심이 가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가벼움에 손쉽게 타협하려는 이즈음의 세태도 그 책임을 피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김 상 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