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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탱고의 아버지’ 피아졸라

탱고, 매음굴 댄스클럽서 콘서트로 부활시켜 | NEWS+ 1997년 9월4일치

    보통 사람들에게 탱고는 영화의 멜로드라마에서 접하는 통속 음악 정도로 여겨진다. 영화 「트루 라이즈」의 한 장면이나, 「여인의 향기」에서 낯선 여인과 멋들어지게 춤추던 알 파치노 를 떠올리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것은 재즈에 대해 케니 G의 음악을 떠올리는 것만큼이나 불완전한 것이다. 재즈가 그러한 것처럼 탱고 또한 불명예스러운 뿌리를 가지고 있다. 19세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매음굴에서, 두 남자 뚜쟁이의 춤에 맞춰 연주되었던 음악이 탱고의 뿌리이기 때문이 다.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 1921~92).

재즈에 듀크 엘링턴이 있었다면, 탱고에는 피아졸라가 있었다. 그는 탱고를 매음굴이나 댄스클럽으로부터 콘서트홀로 끌어들였다. 그는 보컬리스트를 앞세운 대형 오케스트라 대신 스스로 반도네온(커다란 상자 모양의 아코디언)을 켜면 서 자신의 5중주단과 함께 연주하기를 즐겼다.

탱고는 그를 통해 음식찌꺼기와 쓰레기, 오줌 냄새와 땀 냄새 그득한 누추한 뒷골목으로부터 드넓은 광장으로, 마침내 모든 이의 머리와 가 슴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피아졸라는 아르헨티나의 아들이지만 그의 영혼은 세계의 것이다. 프랑스의 나디아 불랑제(아론 코플랜드의 스승이며 스트라빈스키의 친 구인)는 그에게 클래식음악을 수혈했으며 오랜 뉴욕 생활은 그에게 재즈의 감흥을 이식했다.

1940~50년대 그가 일으킨 탱고의 혁명(흔히 그의 탱고를 「신(新) 탱고」(Tango Nuevo)라고 부른다)에서 클래식과 재즈의 징후가 감지되는 것은 따라서 당연한지도 모른다.

아스토르 4중주단 9월29일 내한…‘밀롱가 D장조’등 白眉 선사
 
『내게 탱고는 발보다 머리를 위한 것이다』피아졸라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그의 탱고가 지닌 특성을 이보다 더 잘 요약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탱고는 또한 「가슴」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슬픔과 분노 증오 낭만 감 상(感傷) 따위, 인간의 온갖 감정을 그의 탱고는 자연스럽게 포용했다.

수많은 클래식-재즈 연주가들이 피아졸라의 자장(磁場) 안으로 편입됐다. 라트비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50)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오늘날 가장 개성적인(「뛰어난」이라는 형용사는 논쟁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바이올리니스트로 평가받는 크레머는 스스럼없이 {피아졸라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다.

『피아졸라는 직선적이고 솔직하다. 그는 감상적이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현학적이고 속물적인 사람이라면 반대하겠지만, 나는 확신한다. 그는 당신을 감동시킬 것이다』

지난해 나온 음반 「피아졸라 예찬」(Hommage a Piazzolla, 논서치)은, 이름 그대로 피아졸라와 그의 음악에 대한 크레머의 헌사(獻詞)다. 그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결성한 앙상블의 이름도 「아스토르 4중주단」이다.

「다섯 악기를 위한 콘체르토」 같은 곡에서 전자기타 대신 클라리넷을 썼지만 반도네온 바이올린 피아노 더블베이 스 등 기본적인 악기 구성은 피아졸라에 충실하다.「오블리비온」이 특히 아름다웠던 이 음반은 전세계적인 탱고 열풍에 한몫했고, 일본에서만 10만장 이상 팔릴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크레머의 피아졸라에 대한 열광은 최근 선보인 「엘 탱고」(El Tango, 논서치)로 고스란히 옮겨붙은 듯하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시에서 제목을 따온 크레머의 신보는 세르지오 아사드, 밀바 등 피아졸라와 절친했던 연주인들의 가세로 더욱 「피아졸라적인」 음반이 되었다.

그러나 크레머는 음반으로만 피아졸라를 예찬하지 않는다. 아스토르 4중주단과 함께 직접 세계를 돌며 피아졸라를 「선교」하고 있다. 9월29일(월)의 내한공연은 유럽 순회공연에 뒤이은 아시아 투어의 일환이다(예술의전당 음악당 오후 7시30분).

「위대한 탱고」「밀롱가 D장조」「바르다리토」「디카리시모」 등 피아졸라의 작품 10여곡을 들려줄 예정인데, 단 한 차례밖에 공연하지 않는 것이 아쉽다. 일본의 탱고 열풍을 의식한 것일까. 내한 이틀 전까지 일본에서 무려 7차례나 연주회를 갖는다. 문의: 크레디아 (02-598-8277). 김 상 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