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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의 간극 -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의 말러 2번 1968년 대 2009년

지난 주말 캘거리 필하모닉의 말러 2번 '부활' 연주회에 임시로 설치된 음반 판매대에 말러 음반은 달랑 두 장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두 장 모두 하이팅크의 녹음이었다. 혹시 캘거리 필의 상임인 로베르토 민척이 하이팅크에게서 배웠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최근 녹음은 이미 가지고 있는 터라 1968년반을 20달러 주고 샀다. 좀 비쌌지만 기념 삼아, 또 캘거리 필에 1, 2불 기부한다고 치고...^^



이미 지난해 6월에 네덜란드에서 산 하이팅크의 말러 크리스마스 마티니 연주 DVD 박스를 통해 확인했고, 그래서 어떤 연주가 나올지 대략 감은 잡고 있었다. 더욱이 이미 확인한 크리스마스 연주가 1984년이었는데도 그처럼 거칠거칠했다면 1968년은 더 그렇겠지. 그 무렵의 리허설 장면을 보면 연주를 자주 끊으면서 세세하게 지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비디오 장면이 1965년이라면 그가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해로부터 고작 4년이 지났을 때다. 로열 콘서트게바우 오케스트라가 말러와 인연이 깊다고 해도, 하이팅크나 오케스트라 모두 아직 말러에 달통한 상태라고는 보기 어렵다. 시시콜콜하게 지적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내가 구입한 1968년 녹음은 에너지로 약동한다. 특히 1악장 장송 행진곡의 템포가 빠르고, 추진력도 대단하다. 다만 몰아붙이는 힘은 여실히 느껴지는데, 2009년 시카고 심포니와 녹음한 2번에 견주어 다소 여유로움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그가 팔팔한 30대일 때와, 이제 황혼기인 80대의 녹음이라는 선입견 탓일까? 

전체적으로는 템포나 소릿결에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다. 다만 1968년 음반은 녹음 편집 과정에서 그렇게 한 것인지는 몰라도 음의 밸런스에서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 있었다. 오케스트라가 다 함께 연주할 때도 그 소리가 고르게 퍼져 나오기보다는 한두 악기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식이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볼륨이 높게 잡혀 있는 듯했다. 소리의 깊이가 별로 깊지 않았다는 뜻이다. 헤드폰을 끼고 듣기에는 괜찮은 소리다.

그에 견주어 하이팅크가 시카고의 객원 대표 지휘자로 재직하는 동안 오케스트라의 자체 레이블인 CSO리사운드로 녹음한 2009년 반은 소리의 깊이가 좀 지나치다 싶게 깊다. 볼륨을 여간 키워놓고 듣지 않으면 조용한 대목에서는 거의 분별이 안될 정도다. 같은 볼륨으로 두 음반을 비교해 들어보면 2009년 음반의 소리가 한두 단계 더 낮게 들린다. 그래서 그게 분별될 정도로 볼륨을 높이고 나면 오케스트라가 폭발할 때 너무 요란하게 들린다 (물론 내 귀에는 이런 식의 극적인 대조가 더 말러스럽고, 말 그대로 더 극적으로 들리지만, 집안의 다른 식구들도 신경을 써야 하니 그렇게 계속 듣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라모폰의 리뷰어도, 소리를 높여서 들으면 그 감동의 폭이 더 넓다고 한 모양이다. 

MP3나 그와 비슷한 압축형 디지털 음악 파일에서는 소리의 품질이 한없이 떨어진 것을 보충하기 위해 전체 볼륨을 다 높인다고 들었다. 저음이 본래의 저음을 잃고 중음이나 중고음대로 증폭되는 것이다. 고음은 물론 고음대로 증폭되고, 베이스 음은 스피커가 터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쿵쿵댄다. 그렇게 몇몇 가청 대역의 소리들을 키움으로써, 그 큰 소리들에 가려 귀에 미처 들리지는 않지만 음악의 전체적인 '느낌'이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불가청 대역들은 다 죽어버린다. 이를테면 1968년의 말러반은, 역설적이게도 다시 디지털 파일로 리마스터링 하는 과정에서 그런 '과장'의 프로세스를 거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게는 1968년 반이든 2009년 반이든 다 좋게 들렸다. 독창자들도 다 좋았다. 68년의 엘리 아멜링이야 이미 전설이 됐으니 두말 할 나위도 없고, 2009년에 나온 미아 페르손과 크리스티안느 스토틴은 요즘 가장 각광 받는 독창자들 아닌가. 특히 미아 페르손이 부르는 '태초의 빛'은 실로 눈물겹게 아름답고 설득력 있다. 카타르시스의 절정으로 치닫는 결말도 둘다 훌륭하다. 다만 68년 녹음에서는 '댕댕...' 하는 쇠 종 소리가 거의 안들리는 것도 다소 불만스럽다. 악보에 어떻게 적혀 있든 맨 마지막의 종결부 소리가, 1968년 녹음에서는 지나치게 짧고 갑작스럽게 들렸다. 2009년의 마침표는 그보다 더 여유있고 진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