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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라이브가 좋아 - 캘거리 필하모닉의 말러 2번 '부활' 감상기

지난 주말을 이용해 캘거리에 다녀왔다. 토요일 저녁 8시로 예정된 캘거리 필하모닉의 말러 2번 '부활' 연주를 보기 위해서였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선배 댁, 그리고 이사 오기 전에 잠시 기숙했던 집에서 알게 된 L군이 동행했다. 연주는 나와 선배, L군이 보게 돼 있었고, 말러에 대해 특별히 열광적이지 않은 여성들은 낮에 캘거리 근처의 크로스아이언(CrossIron)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이번 여행의 명분을 얻었다. 
 

엡코 공연센터.


일곱 시쯤 연주회장인 '엡코 공연 센터'(EPCOR Centre for the Performing Arts)에 도착해 표를 받았다. 하지만 7시30분이 넘을 때까지도 입장은 허용되지 않았다. 겨우 로비로 들어가고 나니 이번에는 연주회장 입장이 허용되지 않았다. 로비의 홀에서 7시30분부터 20분쯤 진행되는 '연주회 전 해설'(Pre-chat)이 끝나야 입장할 수 있다고 했다. 싫든 좋든 그 해설을 들으라는 뜻으로 여겨져서 별로 마뜩찮았다. 뭐든 억지로 하라고 하면 기분이 안나는 법이다. 

연주회장은 만원이었다. 전석 매진이라고 했다. 그런데 오케스트라 뒤의 좌석을 바늘 꽂을 틈 없이 꽉 채운 합창단원들을 보고 손을 흔드는 사람이 눈에 많이 띈 것으로 봐서, 그중 상당수는 합창단원의 가족, 친척, 친구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무려나...

늘 DVD나 음반으로만 보고 듣다가 직접 연주회장에서 말러 2번을 연주하기 위한 진용의 규모를 보니 기부터 딱 막혔다. 오케스트라가 자리잡은 무대는 물론이고, 그 뒤의 합창석 - 평소에는 일반 관람석일 터였다 -까지 정말 꽉꽉 들어차서, 몸 한 번 움직이려도 일단 주위에 걸리는 게 없나 조심해야 할 듯싶었다. 특히 이번 캘거리의 연주에서는 합창단의 규모가 유독 커 보였다. 오케스트라 단원까지 더해서 총 3백 명이 넘는다고 했다. 

지휘자가 등장했다. 캘거리 필하모닉의 상임인 로베르토 민척(Roberto Minczuk)이다. 브로슈어의 사진들로 봐서 쇼맨쉽이 대단할 듯했다. 

생각보다 빨리 연주가 시작됐다. 지휘자가 지휘대 위에 올라 박수 받고 뒤로 돌아서자마자 채 2초도 안돼 강렬한 현의 트레몰로가 터져나왔다. 박수 받고 뒤로 돌아서서, 지휘자가 숨 고르고, 단원들, 악장과 눈짓으로 준비 됐느냐고 묻고, 지휘봉 들고 시작하는, 일반적인 절차가 전혀 없었다. 지휘대로 뛰어오르자마자 소리가 짜르르 나온 형국이었다. 템포가 무척 빠르게 들렸다. 하지만 가볍지는 않았다. 장송 행진곡이라는 부제에 맞게 비장함이 느껴지는 소리를 잘 들려주었다. 

연주회 직후의 박수 시간.


이런 지방 오케스트라들이 공통적으로 드러내는 장단점을, 캘거리 필하모닉도 여지없이 곳곳에서 표출했다. 현은 지극히 안정되고 민활했다. 소리도 고르게 잘 정련돼 있었다. 문제는 관이었다. 민망할 정도의 실수는 없었지만 서정적으로 연주되는 대목에서 종종 소리가 기이하게 들렸다. 시쳇말로 '삑사리'였다. 하지만 크게 울어야 할 대목에서는 실망스럽지 않은 소리로 포효해 주었다. 특히 5악장, 관악 파트가 홀 밖 복도로 나가 불어주는 대목은 참 좋았다. 소릿결도 고르게 느껴졌고, 홀 안에서 연주하는 플루트나 현과 박자도 잘 맞았다. 다른 세상에서 들려오는 듯한(otherworldly) 느낌이 기막히게 잘 연출되었다. 지휘자는 복도에서만 연주될 때도 열심히 손을 흔들었는데, 어디 문틈으로 연주자들이 보면서 하는 걸까 문득 궁금했다. 그만큼 안팎의 타이밍이 잘 맞았다.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 두 솔로이스트도 수준급이었다. 특히 메조 소프라노인 수전 플라츠(Susan Platts)의 Urlicht (태초의 빛)은 대단히 설득력 있었다. 처음에는 긴장한 듯 목소리가 약간 심하게 떨렸지만 곧 안정감 있고, 감성 풍부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소프라노인 조니 헨슨(Joni Henson)도 괜찮았지만 중저음과 고음 간의 이동이 다소 어색했고, 특히 고음은 소리를 질러대는 것처럼 들려서 힘은 느껴졌지만 정련된 맛은 다소 떨어졌다.

이번 연주회의 초점은 합창단이었다. 캘거리 남성 합창단, 센트럴 메모리얼 고등학교 합창단, 마운트 로열 칸토레이(Kantorei, 독일어로 '합창단'이라는 뜻) 등이 참여해 200명이 넘는 대군이 오케스트라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앉아서, 속삭이듯 합창을 시작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마지막 7분여를 남길 때까지 계속 앉아서 노래를 부른다는 점이었다. 음악이 절정에 다다라, 휘날레를 향해 치닫는 대목에서야 일제히 기립해 굉음을 내기 시작했는데, 그 극적 효과가 그럴듯했지만, 그 기립 타이밍이 너무 늦은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말러의 악보에 그런 지시가 돼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영상을 보면 대체로 오케스트라의 폭발적인 총주로 문을 여는 5악장 중반, 합창이 시작되기 직전에 일어난다. 이번 캘거리의 연주처럼 낮게 속삭이는 듯한 합창을 앉아서 부르지는 않는다. 

또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합창의 템포가 반이나 반의 반 박자 정도 느렸다는 점이다. 그 드라마틱한 효과가 반감된다고 느껴질 정도로 느리게 끌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다 함께 울부짖는 휘날레의 충격은 눈물샘을 자극하고, 몸에서 소름이 돋는다고 느껴질 정도로 강력했다. 

박수, 환호, 기립, 환호성, 휘파람... 청중의 반응은 물론 '예상대로' 열광적이었다.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실황으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L군의 촌평: "연주 자체의 완성도는 음반으로 듣는 베를린 필이나 로열콘서트헤보보다는 못하지만, 정말 재미있었어요. 11월에 한다는 말러 3번도 꼭 와서 보고 싶어요." 나도 물론. (특히 말러 음악이 실황에서 더욱 돋보이는 이유중 하나로, 나는 그의 음악이 가진 극단적 볼륨감을 꼽고 싶다. 귀에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게 속삭이는 독주나 현의 피아니시모로부터, 홀이 떠나가라 포효해 대는 포르티시모 간의 거리는 멀고도 깊다. 집에서는 그런 깊고 먼 볼륨감을 온전히 즐길 수가 없다. 포르티시모가 너무 요란하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 홀에서만 그것을 원없이 즐길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움: 청중들이 악장 끝날 때마다 박수를 쳤다. 심지어 1악장에서는 강렬한 총주와 속삭이는 듯한 독주 사이의 짧은 휴지기에도 잠깐 박수가 나왔다. 미리 다 듣고 와서 어떤 구성인지 확실히 알아야 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해도, 악장 사이의 박수는 삼가야 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왔더라면 좋았겠다. 특히 2악장과 3악장 사이의 박수는 흥을 깨기에 충분했다. 지휘자가 손을 내려서 악장이 끝났다고 신호하지 말고, 두 악장 사이가 짧으니까 팀파니의 두둥 소리로 3악장을 시작할 때까지 손을 들고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연주회의 후원사중 하나인 캘거리의 대표 일간지 '캘거리 헤럴드'의 리뷰. (아래 비디오는 말러 2번 연주에 대한 캘거리 필하모닉의 짤막한 비디오 예고편; 그리고 아마도 현존하는 지휘자들중 말러 2번의 최고 권위자라고 할 수 있는 사이먼 래틀 경의 짤막한 해설과 휘날레 장면. 그리고 맨 아래는, 래틀 경이 베를린필의 상임 자리를 얻어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을 떠나면서 한 고별 공연의 휘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