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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선


밴쿠버 선은 '더 프라빈스' (The Province)와 더불어 밴쿠버를 대표하는 양대 지역 일간지이다. 이름에 '선'을 단 다른 황색지들과 달리, 밴쿠버 선은 진보적 정론지다. 오히려 더 프라빈스가 타블로이드 판형인데, 밴쿠버 선보다 논조가 가볍고, 소소한 기사들이 더 많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황색지'로 재단하기에는 수준과 품질이 꽤 높은 신문이다. 둘 다 '포스트미디어'라는 언론 재벌 소유이다. 글로브앤메일과 더불어 2대 전국 일간지인 '내셔널 포스트' (National Post)가 이 회사의 간판 신문이다. 내셔널 포스트는 우편향이 심한 보수 신문이다.


지난 목요일 (12일)부터 '밴쿠버 선' (Vancouver Sun)을 다시 구독하기 시작했다. 종이 판이다. '다시'는 그 동안 두 번인가 세 번, 서너 달 동안 구독하다 끊곤 했기 때문이다. 


웹사이트로 다 볼 수 있는데 왜 굳이 또 종이 신문을 보느냐고 질문하면 딱히 설득력 있는 대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인터넷으로 보는 맛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리적' 매체로 보는 - 아니, 보고 느끼는 - 맛은 다르다, 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미흡하다. 어차피 그 내용물 (메시지)은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또 한 가지 이유를 굳이 댄다면 '느리게 가고 싶어서', 혹은 '마음의 변화와 안정을 얻고 싶어서'라고 할 수 있다. 종이 신문을 보면서 숨을 고르고 싶었다. 느리게 가고 싶어서 종이 신문을 본다고? 언뜻 생각하면 어불성설로 들린다. 하지만 좀더 깊이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특히 '종이' 신문이라는 매체의 정체성과 비중의 변화에 눈길을 주면, 말이 된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일상 생활의 일부가 되기 전까지는 종이 신문이 뉴스의 중심이었고, 때로는 - 라디오와 TV에도 불구하고 - 속보의 원천이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모바일이 그런 뉴스와 속보의 당연한 채널로 떠오르면서, 하여 온갖 뉴스의 쓰나미가 시간이나 분 단위를 넘어 때때로 초 단위로 우리에게 엄습하면서, 종이 신문은 뉴스와 속보와는 멀어지다 못해 멸종 위기의 공룡처럼 속수무책 한 쪽으로 떠밀려 소외되기에 이르렀다 (아래는 밴쿠버 선의 모바일 버전).


그러한 뉴스 '스트리밍' (streaming)의 환경에서 종이 신문을 바라보면, 종이 신문에 인쇄된 활자를 읽어 보면, 뉴스는 꼭 뉴스로만 읽히지 않는다. 이미 뉴스로서의 활력과 시급성이 빠져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도리어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한 발 떨어져, 뉴스의 시급성의 밖에 서서, 좀더 쿨한 머리와 시각으로 기사를 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긴 내용의 기획 기사나 칼럼, 에세이들은, 종이 매체를 통해 더 곡진하게 그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런 면에서 종이 신문은 초고속 (hyper-speed)의 시대에 적절한 브레이크를 걸게 해주는 수단이나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그리고 같은 내용이라도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 같은 전자 매체의 화면을 통해 읽을 때와, 종이 매체의 '활자'로 읽을 때, 사뭇 다른 인상과 느낌을 준다. 후자 쪽이 더 느리고 차분하며 일관된 독서를 부추긴다. 다른 앱이나 하이퍼링크,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알림 메시지들에 한눈이 팔리거나 신경이 분산될 일도 없다. 물론 여기에서도 종이 매체 자체를 붙잡고 있는 - 그렇게 할 수 있는 - 능력이 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해설 기사나 칼럼 하나를 끝까지 다 읽을 때까지 종이 신문을 붙잡고 있을 수 있는가, 아니면 분량의 절반이나 심지어 3분의 1도 채 읽기 전에 옆에서 드르륵 떨리거나 도로롱 소리를 내며 나를 봐달라는 스마트 폰으로 손이 가버릴 것인가...


앞으로 얼마 동안 종이 신문을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자 매체로만 뉴스를 소비하면서, 때때로 뉴스를 제대로 따라잡지 못한다는 조바심과 불안감을 느낄 때가 없지 않았다. 다른 한 편, 독서의 깊이가 날로 더 얕아지고, 뉴스나 시사에 대한 헛 지식에 너무 많은 시간과 주의를 빼앗기고 있다는 회의도 들었다. 종이 신문 '밴쿠버 선'은, 이를테면 그런 흐름에 약간의 변화를 줘보자는 시도인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정말 두고 봐야 알겠다. 


'느리게 가고 싶어서' 종이 신문을 구독하는 시대. 내가 문제인가, 아니면 이 세상의 흐름이 그렇듯 과속과 폭주의 차원으로 접어든 것인가?